[편지글] 예술은 내 삶을 나답게 살아내기 위한, 세상이 나에게 던지는 물음표를 풀어내기 위해 내가 택한 수단

2021.09.01 | 조회 4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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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전보

예술하며 살아가는 창작자들의 생각과 과정을 기록합니다.

안녕하세요, 어느새 마지막 전보를 보내게 된 예술가의 전보입니다. 여름날을 맞이하며 시작한 프로젝트가 마칠 때가 되니 이젠 가을이네요. 이번 여름은 예술에 대해 실컷 대화할 수 있어서, 그리고 그 이야기를 읽어주시고 전보로 화답해 주신 구독자님들이 있어서 정말 행복했습니다. 마지막 전보는 혜수의 편지입니다.

 


예술가의 전보, 가을을 맞이하며

해리*비치*독자님들께.

7월 한여름에 야심차게 시작한 예술가의 전보가 벌써 끝에 다다랐네요. 독자 여러분들께 우리의 전보가 어떻게 전해졌을지 지금도 끊임없이 궁금한데요. 몇몇 분들이 용기 내어 보내주신 리뷰에 힘을 얻어 감사한 마음으로 여기까지 왔네요. 저는 평소 말주변과 글주변이 아예 없는지라 비치*해리 없이 전보 한 편을 다 쓰려니 정말 막막하고 두렵습ㄴ.. 그래서 제 마음 속 두려움을 비우고 자신감을 불어넣기 위해 현재 학교 작업실에 앉아 트와이스의 알코올프리를 틀어두었답니다. (나는 알콜 프리인데 취해~~)

<트와이스 짱!>

자신이 하는 작업, , 비전, 방향성에 대해 오목조목 이야기할 수 있는 능력자분들과는 달리, 저는 제가 하는 생각들이 언어로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가 되지 않는 편이라서 항상 말이나 글을 이용한 소통을 조금 어려워하는 편이에요. 사실 제가 주변 작업자들에게 흔하게 들어왔던 말 중 하나가, 참 말을 추상적으로 한다는 거였어요. 이런 말을 들으면 왜 나는 더 명확한 언어로 소통하지 못하는 걸까’, 제 자신을 나무랐는데요. 요새는 그러니까 내가 글이나 말이 아닌 사운드로 작업을 하는 거지!’ 라고 스스로 위안을 삼고 있답니다. <예술가의 전보>도 비치와 해리의 가이드 없이는 엄두도 못 냈을 거예요. 인내심과 사랑의 눈빛으로 저에게 진솔한 질문들을 던져주고 제가 내놓는 두서없는 대답들을 이해해주고, 그것과 소통해주어 정말 고맙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이번 여름 <예술가의 전보>를 통해서, 저는 제가 하고 있는 일 뿐만 아니라 제 삶, 그리고 그 주변을 더 구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걸음마를 떼었어요. 많은 분들이 예상하시듯 예술이라는 수단으로 삶을 꾸린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일정한 (금전적) 보상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내 작업이 어떤 체계 안에서 정확히 어떤 가치를 갖는지도 가늠할 수가 없고요. 사실 불안한 요소들 투성이에요. 그래서일까요. 저는 제 작업이나 작업에 관련한 것들 외에는 거의 아는 것도 없고 관심도 잘 갖지 않아요. 제가 그어놓은 경계 밖을 둘러보다가 혹시나 내 삶은 도대체 어떻게 굴러가는거지? 난 제대로 나잇값을 하면서 살고 있나?’ 등의 현타가 올까봐 그런 것 같아요. 주변과 나를 비교하거나, 사회의 전반적인 기준에 내가 크게 벗어나있으면 그런 것들 때문에 흔들릴까봐요. 일종의 현실 도피일 수도 있고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언제든지 그만둬도 괜찮아라는 마음으로 지낸지 좀 오래되었는데요. ‘언제든지 그만둬도 괜찮아마인드는 저에게 있어- 다른 누가 뭐라고 해도, 세상의 기준이 어떠해도, 내가 내 작업에 흥미를 잃으면 그만하면 된다는- 내 삶의 주도권을 내가 쥐고 살겠다는 일종의 선언이기도 하답니다. 내가 내 삶을 주도한다는 이유로 그만큼 주변을 보지 않고 살았던 것은, 그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는 상태였기 때문이기도 해요. 소리를 다루는 사람이, 몇몇 소리들에는 적극적으로 귀를 닫으며 살았다는게 제가 생각해도 참 어이가 없어요. (그럼에도 우리는, 각자의 마음을 지키는 수단이 필요할 때에는 적당히 가드를 올리며 살아도 되는거겠죠?)

<예술가의 전보>를 처음 시작하면서, 저는 많이 두려웠어요. 앞서 말씀드렸듯 저는 언어적 소통 능력이 많이 부족한 사람이고, 또 타인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에요. 제 자신과 자꾸 비교할까봐요. 난 아직 내 자신을 예술가라고 부를 준비가 되지 않았고, 아직 내 작업이 부끄럽고, 그에 비해 해리와 비치는 제 기준에 너무도 대단한 친구들이기 때문에요. 비치와는 처음 만나 이야기하는건데 혹시 내가 말실수를 하면, 해리에게 누가 되면, 독자 여러분들에게 내가 이상하게 보이거나 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들이 멈추지 않았어요. 그런데 막상 전보를 시작하고 보니, 우리는 모두 비슷한 희망과 비슷한 두려움, 비슷한 행복감을 공유하고 있었고 저는 그것들에 정말 말로는 다 형용할 수 없는 위로를 받았어요. 그런데 나아가 독자님들의 리뷰를 받아보니, 내가 안고있던 두려움은 사실 예술과는 별개로 이 세상이 우리에게 공통으로 던지는 큰 물음표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 개개인은 그 물음표를 지우고 느낌표, 혹은 마침표, 혹은 별표.. 하트?를 달기 위해 노력하며 사는 것 같아요. 그 수단이 각기 다를 뿐. 그래서 점점 더 예술이 어떤 위대하거나 거창한 것이 아닌- 내 삶을 나답게 살아내기 위한, 세상이 나에게 던지는 물음표를 풀어내기 위해 내가 택한 수단이라는 것이 명확해졌어요.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려나요. 예술 작품의 공개 활동을 하지 않더라도 모두 일상 속에서 음식을 만들고, 사진을 찍고, 노래를 부르고, 글을 쓰고, 타인과 대화를 하고.. 세상이 주는 물음표에 대해 어떤 창작 활동을 하고 계시지 않으신가요? 그런 것들이 우리가 늘상 이야기하는 예술이 아닐까요? 그래서인지, 저는 이제 주변의 이야기가 너무 궁금하고, 주변에 더 귀 기울이고 싶어졌어요. 여러분들과 언젠가 다시 만나서, 여러분의 이야기를 전부 듣고 싶어요. 이번 여름은 제 두려움이 호기심으로 대체되는 아주 진귀한 시간이 되어버린 것 같아요. 따로 또 같이, 2021년 여름 우리의 여정을 함께해 주어서 고맙습니다.

우리 다시 만나야 해요!

가을이 훌쩍 와버린 베를린에서, 정혜수 드림.

:0)

 


작별 인사를 드리려니 정말 아쉽네요. 예술가의 전보는 또 다른 방식으로 다음을 기약하려 합니다. 다음 행보가 정해지면 꼭 소식 전하겠습니다. 예술가의 전보와 함께한 시간, 어떠셨나요? 여기를 눌러 여러분의 마지막 전보를 보내주세요.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 주어서 정말, 고마웠습니다. 우리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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