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 자신에게 이런 넘치는 사랑을 주지 못하고 있었다.
고요한 새벽, 창문으로 스며드는 빛처럼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찾아옵니다.
그러나 우리는 때로 그 빛을 보지 못합니다.
머리로는 알지만, 온 몸과 가슴으로는 모르기에.
판단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우리는 사랑의 흐름을 막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 받을 만하고, 누가 받을 만하지 않은지
그 판단이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순간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무조건적 사랑에서 멀어집니다.
깊은 기도 가운데 거할 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평화를 누립니다.
이것이 진짜 준비입니다.
글을 쓰거나 읽을 때에도,
일상의 일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나 자신에게 이런 넘치는 사랑을 주지 못하고 있었다.”
이 고백이 변화의 시작입니다.
자신을 판단하고, 정죄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음.
그것이 다른 사람을 향한 우리의 시선이 됩니다.
머리와 자아에 머물러서는
이 사랑을 알 수 없습니다.
모든 생각을 내려놓을 때만 가능합니다.
그저 깊이 머물 때만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닿고,
우리를 통해 흘러넘칠 수 있습니다.
나는 오늘도 길을 걷습니다
판단의 돌들이 깔린 길을.
그 돌들을 하나씩 집어
내 주머니에서 꺼내놓습니다.
나의 눈이 맑아질 때
비로소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그 사랑의 시선을.
그 '사랑의 시선'에 머물 때
우리는 진정한 자아를 발견합니다.
자아의 목소리와 판단을 넘어선 참된 나.
그 시선은 관계적이며, 소속감을 줍니다.
우리의 인간됨, 우리의 존재 자체를 확인시켜 줍니다.
그리고 우리가 '붙들림'의 의미를 알게 될 때
그것이 얼마나 순수한 선물인지,
조건이나 거래가 아님을 깨닫습니다.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것이 은혜입니다.
흙으로 빚어진 우리 몸은
사랑이라는 물을 담는 그릇입니다.
그 물이 흘러넘쳐야
메마른 세상이 촉촉해집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을 때
나눔과 사랑이 주어집니다.
은혜를 경험합니다.
해결되지 않은 내면의 괴로움은
그대로 타인에게 옮겨집니다.
이것이 우리가 사랑에 머물러야 하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 깊이 머물러야만
이 사랑이 흘러넘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고백입니다.
“긍휼히 여겨주시옵소서!”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논리가 아닌 침묵으로,
판단이 아닌
받아들임으로
우리는 이 사랑을 알아갑니다.
그리고 그때, 우리는 사랑의 흐름이 됩니다.
사랑을 받고, 사랑을 흘려보내는
끝없는 은혜의 순환 속에 머물게 됩니다.
나는 오늘도 기도합니다
그 무한한 사랑에 닿을 수 있기를
그 사랑으로 채워져
세상에 흘려보낼 수 있기를.
하나님의 사랑은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우리 안에 흐르고 있습니다.
그 사랑에 머물 때
판단의 무게는 스러지고
가슴은 따스한 빛으로 채워집니다.
어린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사랑에 머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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