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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상적 기도, 경청, 그리고 삶 (contemplative prayer, listening, and life)을 위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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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무 많은 방향으로 살아왔다
나뉜 의지에서 하나의 존재로. 영성 수련이 끝난 자리에서 한 번은 영성 수련을 마쳤다. 참여자들이 침묵 속에 머물렀고, 무언가가 일어났다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피드백에 이런 말이 있었다. 좀 더 자세하게 설명
허용한다는 것
흐름을 따라가는 법에 대하여. 책상 위에 목록이 있다. 녹음 파일 하나. 평가서. 기획안 초안. 또 다른 수련에 대한 메모들. 이것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 내가 이것들을 기다리게 하
부름받은 사람
증명하기 전에 이미 선택된 삶에 대하여. 이메일 하나가 왔다 같은 지역의 관상기도 공동체가 수련회를 연다는 안내였다. 읽으면서 가고 싶다는 마음이 올라왔다. 내가 배운 전통 안에서 함께 걸어온 사람들이었다. 연결되고 싶었
작은 상자 밖으로
증명하는 삶에서 접촉하는 삶으로. 나는 탁구를 즐긴다. 빠르다. 몸이 먼저 반응한다. 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다. 공이 오는 방향, 회전, 속도 — 그것을 온몸으로 읽는다. 과거도 미래도 없다. 오직 지금 이 공,
이미 받은 것
프랭크 로바크의 일기에서. 나는 지금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 더 깊은 통찰, 더 많은 인정, 더 영향력 있는 일. 아니면 그냥 — 내가 하는 이 작은 일이 아무 증명 없이도 괜찮다는 자유. 그 자체로 충분하
쌓는 자에서 머무는 자로
— 깊이는 채움이 아니라 발효에서 자란다. 채움의 습관 새벽에 문득 깼다. 기도 때문이 아니라, "뭔가 해야 한다"는 조용한 불안 때문이었다. 꽤 오래, 그런 새벽들이었다. 깊이를 쌓으면 될 줄 알았다. 더 읽고, 더 정리
아무도 박수치지 않아도
인정 이전에 이미. 나는 오랫동안 인정받는 눈빛 속에서 내가 누구인지 알았다. 사람들이 마음을 열고, 눈이 빛날 때—나는 살아 있었다. 어린 시절 할머니, 어머니, 누나의 친구들—그 눈빛들 속에서 나
감은 눈
관상 언어 뒤에 숨었던 두려움. 멈추는 법을 배웠다. 머무는 법을 배웠다. 열리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주 불편한 질문이 왔다. 세상은? 나는 뉴스를 보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멀리하기 시작했다
잃을 것이 없는 자
완성되지 않은 채로, 매이지 않은 채로. 새벽에 꿈을 꾸었다. 한 목사님이 추천서를 부탁했다. 자신이 어떤 자리에 나가는데 필요한 추천서. 내가 물었다. "어떤 사람이어야 합니까?" "잃을 것이 없는 자." 그 자리는 죽
눈물이 기도입니다
유행가요를 듣고 하루 종일 울었던 날. 꿈의 온기 새벽 꿈에서 누나의 품에 안겼다. 아무 이유 없이, 아무 조건 없이, 그냥 안겨 있었다. 매형은 옆에서 아무 말 없이 허락하고 있었다. 그 품의 따뜻함이 너무 선명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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