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의 옷자락을 만지기까지

떨림 속의 믿음과 센터링 침묵기도

2025.10.18 | 조회 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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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stening Heart

관상적 기도, 경청, 그리고 삶 (contemplative prayer, listening, and life)을 위한 글

 
  "믿음은 떨리는 손 내밈에서 시작된다." Generated by ChatGPT  

자정이 넘은 시간이었다. 전자 서명란 위로 커서를 옮기다 멈추었다.

12년 전 한 여인은 군중 속에서 떨리는 손을 뻗어 예수의 옷자락을 만졌다. 나는 지금 책상 앞에서 떨리는 손가락으로 질문 하나를 쓰려 한다.

“혹시… 여쭤봐도 될까요?”

확신은 없었다. 하지만 그날 밤, 나는 배웠다. 믿음은 완벽한 확신이 아니라, 떨림 속에서도 손을 내미는 것이라는 것을.

자정이 넘은 시간이었다. 전자 서명란 위로 커서를 옮기다 멈추었다.

열두 해 동안 한 여인은 멈추지 않는 출혈로 고통받고 있었다. 그날, 그녀는 군중 속에서 떨리는 손을 내밀어 예수의 옷자락을 살짝 만졌다.

지금 나는 책상 앞에서 떨리는 손가락으로 질문 하나를 쓰려 한다.

“혹시… 여쭤봐도 될까요?”

확신은 없었다. 하지만 그날 밤, 나는 배웠다. 믿음은 완벽한 확신이 아니라, 떨림 속에서도 손을 내미는 것이라는 것을.


계약서 앞의 밤

센터링 침묵기도(Centering Prayer) 책의 한국어 출판 계약서가 눈앞에 있었다. 이 기도를 통해 깊은 변화를 경험해 왔기에, 그 가르침을 나누는 일을 나는 사명으로 여겼다.

이것은 하이브리드 출판이었다. 제작비는 내가 부담하고, 유통은 출판사가 맡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계약서를 자세히 읽으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책이 팔릴수록 오히려 저자에게 남는 것이 거의 없는 구조였다. 그때 내면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속삭였다.

“그래도 괜찮아. 그냥 사인해. 목회자가 이런 걸 따지면 사람들이 뭐라고 할까? 센터링 침묵기도 같은 영적인 책을 내면서 돈 이야기를 하다니.”

“그래도 괜찮아. 그냥 사인해. 목회자가 이런 걸 따지면 사람들이 뭐라고 할까? 센터링 침묵기도 같은 영적인 책을 내면서 돈 이야기를 하다니.”

하지만 또 다른 작은 목소리도 들렸다. “이번에는 다르게 해보면 어떨까?”

그날 밤, 나는 사인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 내 안의 새로운 여정의 시작이었다.


나의 12년

혈루병 여인은 12년 동안 출혈로 고통받았다. 의사에게 가진 것을 다 허비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부정하다는 낙인 아래, 그녀는 사회와 신앙 공동체에서 밀려났다.

12년의 세월이 그녀에게 남긴 것은 단 하나였다.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는 자유.

나의 12년도 그랬다. 한국에서 영성지도 사역을 시작하려 할 때, 정당한 사례를 이야기하는 순간 돌아온 것은 판단이었다. “목사가 돈을 밝혀?”

그 후 나는 침묵을 배웠다. 손해를 감수하는 것이 거룩한 일이라고 믿었다. 나의 필요를 말하지 않는 것이 믿음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그 침묵은 내면의 출혈이었다. 억눌린 진실, 인정받지 못한 노동, 존중받지 못한 전문성. 그것들은 내 안에서 천천히 피를 흘리듯 나를 약화시켰다.


손을 뻗기까지

계약서의 조항을 보았을 때, 내 첫 충동은 이메일을 쓰는 것이 아니라 포기하는 것이었다. “그냥 넘어가자. 불편하니까.”

하지만 센터링 침묵기도가 나를 멈추게 했다.

아침과 저녁, 침묵 속에 앉았다.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부드럽게 중심으로 돌아왔다. “이것도 하나님의 자리 안에서 볼 수 있을까?”

하루가 지나자, 마음의 긴장이 풀리기 시작했다. 두려움은 여전히 있었지만, 그것이 나를 지배하지는 못했다.

그때 헨리 나우웬의 말이 떠올랐다. “영성은 완벽해지는 것이 아니라 취약해지는 것이다. 가면을 벗고, 상처를 드러내며, 하나님 앞에서 사랑받는 자녀로 서는 것이다.”

나는 깨달았다. ‘좋은 목회자’의 가면은 나를 가두고 있었다. 하나님이 원하신 것은 내 희생이 아니라 나의 진실함이었다.

그날 밤, 나는 기도했다. “결과가 어떻든, 나의 평화는 당신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상할 정도로 마음이 가벼워졌다.


“만일”의 믿음

“만일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 마가복음 5장 28절

그 여인은 확신이 없었다. ‘반드시’가 아니라 ‘만일.’ 그런데 예수님은 그 믿음을 칭찬하셨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믿음은 확신이 아니라 떨림 속에서 손을 내미는 용기다.

나도 그렇게 했다. “혹시 유통부수는 어떻게 되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작은 질문 하나. 하지만 내겐 큰 믿음의 행위였다.

손가락이 떨렸지만, 나는 이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즉시 무언가가 바뀌었다. 몸의 긴장이 풀리고, 내면에 깊은 평화가 스며들었다.


진실이 드러날 때

며칠 후, 출판사로부터 구체적인 설명의 답변이 왔다. 상황이 명료해졌다. 나는 정중히 다시 물었다.

“감사합니다.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이 조건으로는 계약하기 어렵습니다. 혹시 다른 방법이 가능할까요?”

그들은 놀랍게도 들어주었다. “물론입니다. 서로에게 더 좋은 방향으로 조율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존중하며,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새로운 계약을 만들었다.

무엇보다, 나는 처음으로 평안 속에서 나의 진실을 표현할 수 있었다. 그것이 이번 여정의 가장 큰 결실이었다.


“사랑받는 자녀”로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그분은 정죄하지 않으셨다. “이 여자야”가 아니라, “딸아.”

그 순간, 여인은 사회적·정서적·영적 회복을 모두 얻었다.

나도 그랬다. 이 일은 단순히 계약의 조율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회복시키는 과정이었다. 희생이 아닌 진실로, 침묵이 아닌 정직한 소통으로.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는 것도 나에게 그런 고백의 행위다. 숨기지 않고 나누는 자리에서, 내면뿐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치유된다.

나는 이 메일리(Maily)라는 공간이 이런 고백과 치유의 자리임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오늘, 당신의 손 뻗음

믿음은 확신이 아니라, 떨림 속에서도 손을 내미는 용기입니다.

오늘 당신의 작은 “만일”은 무엇입니까?

  • “만일 내가 이 진실을 말한다면…”
  • “만일 내가 이 도움을 요청한다면…”
  • “만일 내가 한 걸음 나아간다면…”

그 작음이 바로 시작입니다. 그 작은 손 내밈 안에 이미 하나님이 계십니다.


마침 기도

하나님, 12년의 출혈처럼 오래된 두려움과 억울함을 드립니다. 가면 뒤의 나를 드러내게 하소서. 결과가 아니라 평화 속에서 머물게 하소서. 떨리는 믿음으로 손을 내밀게 하소서.

당신이 원하신 것은 나의 희생이 아니라 나의 진실이었음을, 나의 침묵이 아니라 나의 목소리였음을, 이제 압니다.

당신의 음성을 듣습니다. “사랑하는 이여,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라.”

저는 이제 평안히 갑니다. 두려움 없이, 가면 없이, 사랑받는 자로, 자유로운 자로.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모든 이에게도 당신의 그 음성이 들리게 하소서. 그들이 누구이든, 어떤 이름으로 불리든, 모두 당신의 사랑 안에서 “사랑받는 이들”로 불리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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