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를 내려놓고 쓰자. 그렇게 마음먹고 40일 글쓰기 몰입을 시작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자, 어느새 익숙한 목소리가 돌아와 있었다. "이번에는 꼭 완성해야 해." 키보드 위에서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하지만 한 문단을 쓰면서도 마음은 이미 다음 장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몸은 책상 앞에 있는데, 마음은 늘 미래에 가 있었다.
많이 써도 마음은 부족했다. "더 쓸 수 있었는데." 적게 쓰면 당연히 불만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만족이 없었다.
그제야 보였다.
아, 내가 지금 여기 없구나.
마감을 내려놓다
"언제까지 끝내야 한다"는 압박을 내려놓으니, 지금 쓰고 있는 이 문장에 온전히 머물 수 있게 되었다. 미래로 달려가던 마음이 현재로 돌아왔다.
그러자 글이 달라졌다. 급할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문장 사이의 미묘한 연결, 독자가 멈칫할 지점, 더 정확한 단어. 천천히 머물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마감을 내려놓으니 오히려 흐름이 더 자연스러워졌다. 한 권을 마치고, 다른 책 수정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쫓길 때는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다.
센터링 침묵기도에서 떠오르는 생각을 붙잡지 않고 거룩한 단어로 돌아간다. 글도 그랬다. 집착이 올라올 때마다 알아차리고, 지금 이 문장으로 돌아왔다.
한 문단만의 지혜
40일을 시작할 때 조건이 완벽하지 않았다. 감기가 계속 낫지 않았고, 해야 할 일들은 여전히 쌓여 있었다. 가족 모임과 방문도 있었다. 잘못 시작한 건가? 욕심이었나? 에고는 속삭였다. "조건이 갖춰지면 그때 제대로 하자."
그 소리를 들으며 기다렸다면, 아마 영원히 시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냥 시작했다. "한 문단만 쓰자. 다 못 마쳐도 된다"는 마음으로.
한 문단이 두 문단이 되었다. 두 문단이 한 페이지가 되었다. 어느새 몰입해 있었다. 완벽한 조건이 아니었는데도. "책 한 권 완성"이라는 목표 앞에서는 마음이 움츠러들지만, "한 문단"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완된 집중
처음에는 힘을 주었다. "집중해야 해. 더 열심히." 그런데 힘을 줄수록 글은 뻣뻣해졌다.
어느 날 너무 피곤해서 힘을 뺐다. 기대 없이, 압박 없이, 그냥 썼다. 그날 글이 가장 잘 흘렀다.
몸은 이완되어 있는데, 의식은 깨어 있다. 센터링 침묵기도의 "부드러운 주의"와 같았다. 긴장하지 않고, 그저 부드럽게 함께 있는 것.
힘을 주는 날은 금방 지쳤다. 하지만 이완된 상태에서는 몇 시간이고 계속할 수 있었다. 오히려 에너지가 났다.
참자기에서 흘러나오다
가장 놀라운 발견이 있었다.
어느 저녁, 오래 머물던 장을 수정하고 있었다. 마감 생각을 내려놓고, 에고의 소리를 알아차리고, 이 문장에만 머물렀다. 이완된 상태에서, 부드럽게.
어느 순간, 내면의 수다가 멈추었다. "이게 맞나?", "독자가 어떻게 생각할까?" 이런 소리들이 조용해졌다. 그러자 생각지 못한 통찰이 떠올랐다. 막혔던 부분의 실마리가 풀렸다. 깊은 우물에서 무언가를 길어올리듯, 전에 보지 못했던 것들이 올라왔다. 그때, 더 깊은 곳에서 오는 것을 받을 수 있었다.
명료해질 때 오는 눈물
40일 중간쯤, 쓰고 있던 내용으로 6일 리트릿을 안내했다. 그리고 리트릿이 끝난 후, 거기서 나온 경험과 통찰을 더해 다시 글을 수정했다. 나누려고 정리했던 것이, 나눔을 통해 더 깊어져서 돌아왔다.
수정을 거듭하던 어느 날, 오랫동안 왜 그토록 조심스럽게 고치고 또 고쳤는지, 그 이유가 비로소 보였다. 눈물이 났다. 슬퍼서가 아니었다. 손등으로 조용히 훔치며 계속 썼다.
글이 명료해진다는 것은 내가 명료해진다는 것이었다. 글을 다듬는 것이 아니라, 글이 나를 다듬고 있었다.
모든 것이 기도가 될 수 있다
글쓰기가 기도와 같은 영역이라는 것은 머리로 알고 있었다. 수련의 일부로 여기기도 했다. 하지만 40일 동안, 그것을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설거지도, 대화도, 산책도. 에고를 내려놓고, 지금 여기에 머물고, 하나님의 현존 안에서 할 때—글쓰기도 결국 그와 다르지 않았다.
감사
사실 이 40일은 내가 만들어낸 성과라기보다, 잠깐 열렸다가 다시 닫힐 틈에 가까웠다. 한가해서 쓴 게 아니었다. 잠깐 열린 틈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썼다. 솔직히 "이래도 되나?" 하는 마음이 들 때도 있었다.
그리고 이건 어떤 경지의 이야기가 아니다. 자꾸 흩어지는 내가, 다시 돌아오는 이야기다.
40일의 마지막이 다가올 무렵, 몸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무언가를 증명해야 한다는 긴장이 풀려 있었다. 그냥 좋았다. 그 좋음이 한 주쯤 잔잔하게 머물렀다. 오래 기다려온 자리에 와 있는 느낌이었다.
깊은 우물에서 진리를 길어올리고, 그것을 마시고, 그것을 나눌 수 있는 기회—이것이 내가 정말 원했던 삶의 맛이었다. 누구에게나 이런 시간이 주어지지는 않는다. 나도 대부분은 그러지 못한다.
40일이 끝났다. 하지만 끝이 아니다.
매 순간이 내려놓음의 순간이 될 수 있다. 매 행위가 기도가 될 수 있다.
지금, 내 어깨는 어디에 힘이 들어가 있지? 그 힘을 조금만 풀면, 내 하루에서 무엇이 다시 흐르기 시작할까.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