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기 위해 배운 것들

'더 빨리, 더 많이'에서 돌아오는 10초

2025.12.28 | 조회 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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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stening Heart

관상적 기도, 경청, 그리고 삶 (contemplative prayer, listening, and life)을 위한 글

어제 글을 쓰다가 멈췄다. 손이 키보드 위에 그대로 있었다. 가슴이 조여왔다.

나는 『참 자기로 돌아오는 길』을 쓰고 있다. 정념—자동으로 굳어진 반응—에 대해 쓰다가 멈췄다.

"정념은 죄가 아니라 상처다."

그 문장이 갑자기 나를 향해 돌아왔다.

나는 왜 이렇게 자꾸 멀어지려 하는가. 조금만 상처를 받으면 문을 닫고, 가까워지면 도망가고, 열리려 하면 다시 움츠러드는가.


몸이 먼저 배운 것

어렸을 때의 일들이 떠올랐다. 그때 나는 아주 어렸고, 세상은 예측할 수 없었다.

나는 조용히 사라지는 법을 배웠다.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하면 숨을 멈췄다. 누군가의 얼굴이 굳어지면, 나는 의자에 등을 더 붙이고 손을 무릎 위에 얹었다. 아무도 나를 부르지 않기를 바라면서.

눈에 띄지 않으면 안전했다. 요구하지 않으면 실망하지 않았다. 얼어붙으면, 적어도 더 다치지는 않았다.

그것은 선택이 아니었다. 살아남기 위해, 몸이 먼저 배운 지혜였다.

그걸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슬펐다. 미안함과 안도감이 동시에 올라왔다. 목이 뜨거워지고, 눈시울이 젖어왔다.

그 어린아이가 혼자서 그렇게 버텨왔다는 것. 아무도 괜찮다고 말해주지 않았던 시간들.


증명하려는 목소리

나는 "참 자기"에 대해 썼다. 역할 뒤에, 두려움 뒤에, 증명하려는 애씀 뒤에— "거기 누가 있다"고.

그런데 그 문장을 쓰면서도, 나는 여전히 거짓 자기의 연료로 살고 있었다.

"오늘은 이만하면 됐어"라는 생각이 스치면, 바로 다른 말이 따라왔다.

"아니, 이 정도로는 부족해." "이건 아직 보여줄 수 없어." "이렇게 느슨하면 누가 읽겠어." "이게 출판할 가치가 있어?" 

그 밑에는 더 오래된 목소리가 있었다.

"네가 무엇을 증명해야 여기 있어도 돼."


느림의 비용

오늘도 그랬다. 글을 고치고 있었다.

문장은 맞는데 호흡이 얕아졌다. 어깨가 올라가고, 턱에 힘이 들어갔다.

그 순간, 몸이 먼저 말해주었다. 내가 지금 '쓰고' 있는 게 아니라, '버티고' 있다는 걸.

잠깐 멈추고 소리 내어 읽었다. 그러자 무엇인가 달라졌다.

글이 내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 써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느림은 실패가 아니었다. 느림은 내가 거기 있기 위해 치르는 작은 값이었다.

그 값은 '부족해'로 쓰인 문장을 지우고, 오늘은 여기까지라고 노트북을 덮는 것이었다.


"있는 그대로 사랑받는다"는 말

"하나님은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신다." 이 문장을 수없이 썼다. 다른 사람들에게 전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 자신에게 물었다.

"너는 지금, 있는 그대로 사랑받고 있다고 믿니?"

잠시 멈췄다. 대답은 "아니"였다. 머리는 알았지만, 몸은 아직 그 자리에 가보지 못했다.


혼자가 아니었다

그 슬픔 한가운데서, 한 가지가 일어났다. 갑자기 평안해진 것은 아니었다.

다만 혼자라는 느낌이 사라졌다.

숨이 다시 들어왔다. 목의 힘이 조금 풀렸다. 더 이상 나를 몰아붙이고 싶지 않았다.

내가 평안해졌을 때만이 아니라, 불안해서 도망치던 그 순간에도. 멀어지고, 닫고, 얼어붙던 그 자리에도.

"너는 여기 있어도 된다."


돌아옴

나는 이렇게 썼다.

"중요한 것은 완벽이 아니다. 돌아옴이다."

돌아옴은 거창한 결심이 아니다. 지금의 몸과 숨과 하나님 앞에 다시 서는 작은 복귀다.

그 말이 이제는 나에게도 해당된다. 몇 번을 멀어져도, 다시 돌아올 수 있다. 그것이 수련이고, 그것이 은혜다.

덕(德, virtue)은 내가 나아져서 받는 보상이 아니다. 덕은 이미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씩 스며든 흔적이다.

여기서 말하는 덕은 성취가 아니라 방향이다. 자동반응이 켜질 때에도, 아주 조금 다른 선택을 할 수 있게 되는 힘이다.

그래서 예전 같으면 밀어붙였을 순간에, 오늘은 10초 멈출 수 있었다.

화면에서 눈을 떼고, 숨을 한 번 내쉬었다. 그리고 한 문장을 지웠다. '부족해'라는 목소리로 쓴 문장이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여기까지라고 저장하고, 노트북을 덮었다.

10초는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다. 다만, 내가 나를 몰아붙이지 않게 한다.

더 많이 하는 법이 아니라, 더 자주 돌아오는 법을 배우고 있다.


오늘의 10초

  • 화면에서 눈을 뗀다.
  • 숨을 한 번 길게 내쉰다.
  • 몸에서 조이는 곳 한 군데를 알아차린다.
  • 속으로 말한다: "지금은 더 하는 것으로 나를 구하지 않는다."

오늘을 위한 질문

  • "나는 있는 그대로 사랑받고 있다"는 말이, 지금 내 몸에서 어떻게 느껴지는가?
  • 나는 무엇을 증명해야 존재가 허락된다고 믿어왔는가?
  • 오늘 나는 어디서 사라지려 했는가? 어디서 눈에 띄지 않으려 했는가?

짧은 기도

주님,

멀어지고, 도망가고, 닫으려는 저와도 이미 함께 계셔서 감사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나를 지켜온 그 몸의 습관들, 이제는 감사와 애도로 내려놓을 수 있게 하소서.

완벽하지 않아도 돌아올 수 있다는 것, 오늘 다시 경험하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은 여기까지로 충분합니다. 그 충분함을 받아들입니다. 이 자리에서 당신을 만났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멈춤은 삶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우리를 붙들고 있던 자리로 돌아옴입니다." Generated by ChatGPT. 

 

메일리 공지

제목: 몰입의 시간, 잠시 멈춥니다

1월 25일까지는 강한 몰입으로 책을 쓰는 일에 집중합니다. 요즘 저는 더 많이 쓰기보다, 더 자주 돌아오는 문장을 배우고 있습니다.

1월 초에는 센터링 침묵기도: 거짓 자기(Eclipse)에서 참 자기(Essence)로 수련을 안내하는 일에 마음을 모읍니다.

뉴스레터는 잠시 쉬고, 1월 31일자 글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조용히 구독해 주시고 함께 이 공간을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동안 여러분도, 애쓰지 않아도 이미 사랑받고 있음을 각자의 속도로 경험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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