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와 깊이

몰입과 안식 사이에서

2025.11.30 | 조회 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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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stening Heart

관상적 기도, 경청, 그리고 삶 (contemplative prayer, listening, and life)을 위한 글

세 가지 목소리

아침에 눈을 뜨면 세 개의 목소리가 동시에 말을 건넨다.

첫 번째 목소리는 차갑고 단호하다. "너는 이것을 해야 해. 시간이 없어." 이것이 Should의 목소리다.

두 번째 목소리는 부드럽고 유혹적이다. "이것을 하면 기분이 좋을 거야." 이것이 Want의 목소리다.

세 번째 목소리는 가장 조용하다.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하지만 이 목소리만이 우리의 이름을 부른다. "너는 이것을 위해 태어났어." 이것이 Calling의 목소리다.

문제는 이렇게 시작된다. 처음 두 목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서 세 번째 목소리를 듣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

하지만 진실은 이것이다. Calling은 멀리 있지 않다. 단지 우리의 내면이 그것을 들을 수 있을 만큼 고요하지 않을 뿐이다.

그리고 Calling은 내가 만든 목표가 아니라, 내 안에서 이미 자라고 있는 생명의 방향성이다. 내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응답하는 것이다.

그 고요함, 그 응답은 하나의 리듬 속에서만 만들어진다.

 

몰입의 발견

"1초도 쉬지 말고 몰입하라."

황농문 교수님의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깊이 마음에 와닿았다. 몰입 자체가 쉼이 될 수 있다는 통찰. 집중 속에서 오히려 평화를 발견한다는 역설.

지난 여름, 나는 한 달 동안 이 원칙을 따라 살았다. 다른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회의도, 모임도, 일상적인 의무도 없었다. 오직 글만 썼다. 새벽에 쓰기 시작하면 시간이 사라졌다. 생각이 샐 때마다 1초 안에 "다시"라고 말하며 돌아왔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피곤하지 않았다. 오히려 에너지가 넘쳤다. 아이디어가 폭발적으로 솟아났다. 시간 감각이 사라졌다.

한 달이 끝났을 때, 나는 한 권의 책 분량을 쓰고, 삶이 완전히 새로운 차원으로 열리는 것을 경험했다.

강렬한 몰입은 기적이었다.

 

지속의 질문

그 후 나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회의가 재개되었다. 영성지도 세션이 오후를 채웠다. 공동체 모임, 이메일, 일상적인 책임들—평범한 삶의 모든 질감이 돌아왔다.

그리고 나는 이 복잡함을 헤쳐나가면서도 같은 강도의 몰입을 유지하려 했다.

그때 미묘한 변화가 시작되었다.

유튜브(YouTube)로 도망가고 싶은 충동이 강해졌다. 주일에도 자꾸 일을 준비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센터링 침묵기도를 인도하면서도 깊은 침묵의 깊이를 경험하기 힘들었다.

영성지도를 할 때, 어느 순간 상대의 말이 예전만큼 깊이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현존(Presence)이 흐려졌다. 어깨가 긴장되어 있었다. 호흡이 얕아졌다.

강렬한 몰입은 기적이었지만, 나는 그 상태를 영원히 유지할 수 없었다—일상의 요구들과 인간적 관계들이 있는 평범한 삶을 살면서는. 나의 몸, 나의 마음, 나의 영혼이 다른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제야 나는 질문하기 시작했다.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던 한 달간의 강렬한 몰입과 일상 속에서의 지속 가능한 몰입은 다른 문제가 아닐까?"

답은 분명했다. 그렇다. 세상 속에서 사는 것은 안식을 요구한다.

 

과학이 말하는 것

그때 알렉스 수정-김 팡(Alex Soojung-Kim Pang)의 『쉼: 일을 멈추지 않고도 휴식하는 법(Rest)』을 읽었다.

그는 찰스 다윈(Charles Darwin),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 C.S. 루이스(C.S. Lewis) 같은 위대한 창조자들의 일과를 연구했다. 놀라운 패턴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하루 3-4시간만 깊이 집중했다.

나머지 시간은? 산책했다. 정원을 가꿨다. 낮잠을 잤다. 오후에는 일하지 않았다.

팡은 이렇게 설명한다:

"창조성은 일-쉼의 리듬 속에서만 발현된다. 뇌의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는 집중할 때가 아니라 쉴 때 작동한다. 아이디어의 결합, 통찰의 생산 — 이 모든 것은 휴식 중에 일어난다."

그리고 결정적인 문장:

"깊은 휴식은 깊은 몰입의 조건이다."

신경과학자들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몰입할 때 뇌는 '과제 긍정 네트워크(Task Positive Network)'를 활성화한다. 집중, 목표 지향, 문제 해결. 쉴 때는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가 작동한다. 통합, 재구성, 의미 형성. 뇌는 이 두 모드를 번갈아 켜야 한다.

나는 멈춰 섰다.

“높이와 깊이가 만나는 자리에서, 영혼은 비로소 부르심(calling)을 듣기 시작한다.” Generated by ChatGPT
“높이와 깊이가 만나는 자리에서, 영혼은 비로소 부르심(calling)을 듣기 시작한다.” Generated by ChatGPT

두가지 고요

그때 나는 차이를 발견했다.

몰입의 고요: 집중 속의 평화. 상승의 기쁨. 창조의 흐름. 의도의 힘이 정렬되었을 때 오는 고요함. 이것은 '높이의 고요'다.

안식의 고요: 내려놓음 속의 평화. 하강의 기쁨. 존재의 회복. 의도의 힘을 완전히 풀었을 때 오는 고요함. 이것은 '깊이의 고요'다.

둘 다 고요했다. 둘 다 좋았다. 하지만 성질이 완전히 달랐다.

몰입은 '높이'를 만든다. 의식을 상승시킨다. 집중시킨다. 창조한다.

안식은 '깊이'를 만든다. 존재를 회복시킨다. 뿌리를 내리게 한다.

높이만 있고 깊이가 없으면 — 나무는 쓰러진다.

 

시간이 아니라 질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발견이 하나 더 있었다.

어느 날, 어린 아이 셋을 키우며 풀타임으로 일하는 한 엄마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목사님, 저는 하루에 혼자 있는 시간이 화장실 갈 때 3분이 전부예요. 몰입이고 안식이고, 그런 건 제 인생에 없어요."

그 말을 듣고 질문이 바뀌었다.

"몇 시간의 몰입이 필요한가?"가 아니라 "단 10초라도, 어떻게 다르게 살 수 있는가?"

몰입과 안식은 시간의 양이 아니라 의식의 질이다.

왜 이것이 작동하는가? 신경과학은 뇌가 시간을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주의(attention)를 측정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완전한 현존(presence)의 단 한 순간이 더 긴 명상 시간과 동일한 신경 네트워크를 활성화시킨다. 중요한 것은 지속 시간이 아니라 깊이다. 10초의 완전한 자각(awareness)이 신경계를 스트레스 모드에서 현존 모드로 전환시킬 수 있다. 뇌는 양이 아니라 질을 기억한다.

 

10초의 몰입

출근길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을 꺼내려다가 10초만 멈춘다.

눈을 감는다. 호흡을 느낀다. "지금 여기."

이것이 몰입의 씨앗이다.

회의 시작 전, 말을 시작하기 전에 3초만 멈춘다. "현존(Presence)."

점심을 먹으며, 음식을 입에 넣기 전 5초. "감사합니다."

황농문 교수의 1초 원칙은 이것을 말한다: "생각이 흩어질 때마다, 1초 안에 다시 돌아온다."

하루 4시간 몰입하는 것이 아니다. 하루 종일, 흩어질 때마다, 1초씩 돌아오는 것이다.

설거지를 하면서도 할 수 있다. 지하철을 타면서도 할 수 있다. 아이를 재우면서도 할 수 있다.

 

10초의 안식

밤에 침대에 눕기 전, 10초.

몸이 침대와 닿는 감각을 느낀다. 호흡이 저절로 깊어지는 것을 느낀다. "여기 있습니다."

이것이 안식의 씨앗이다.

한 엄마가 내게 말했다. "아침에 아이들 깨우러 가기 전, 침대 끝에 앉아서 10초만 숨을 쉬어요. 그게 제 기도 시간이에요."

한 직장인은 이렇게 했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한 정거장만 눈을 감고 숨을 쉬어요. 그러면 집에 들어갈 때 다른 사람이 되어 있어요."

뇌는 2-7초 사이의 미세한 멈춤만 있어도 '모드 전환'이 일어난다. 10초도 깊어질 수 있다.

 

나의 리듬

나에게는 조금 더 긴 시간이 허락되었다. 그래서 나는 이런 리듬을 찾았다:

오전 (5-6시~12시): 깊은 몰입. 글쓰기, 기획, 창조, 운동.

오후 (12시-6시): 다양한 영성수련 모임과 영성지도. 현존(Presence) 속에서.

저녁 (6시-9시): 고요한 마무리. 목욕, 관상적 독서, 침묵.

주일: 완전한 안식. 일도, 준비도, 기획도 내려놓기.

이것은 나의 이상이지, 항상 실현되는 현실은 아니다. 많은 주에 모임이 늘어나 새벽부터 저녁까지 이어진다. 공동체의 필요가 생긴다. 삶이 계획을 방해한다. 내가 배운 것은 이것을 요구가 아니라 방향으로 붙잡는 것이다. 어떤 주에는 이 리듬을 온전히 산다. 다른 주에는 조각으로 돌아온다—여기서 10초, 저기서 한 번의 호흡.

리듬은 완벽에 관한 것이 아니다. 방향성에 관한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풀타임으로 일하는 이들에게서도, 나는 희망을 보았다.

 

각자의 리듬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는 매일 오전에만 글을 썼다. 오후에는 긴 산책을 했다.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은 하루 3시간만 연구했다. 나머지는 정원을 가꾸고 쉬었다.

어린 아이들을 키우는 그 엄마는 하루에 10초씩 다섯 번 멈춘다. 이것이 리듬이다.

지치는 일정을 소화하는 한 고등학교 교사는 "문지방 현존"을 실천한다. 문지방을 넘을 때마다(교실 문, 차 문, 집 문) 의식적으로 한 번 호흡한다. "이게 제가 중심으로 돌아오는 방법이에요"라고 그가 말했다. "3초 정도, 하루에 아마 50번쯤요. 하지만 그 3초가 저를 사람답게 지켜줘요."

원리는 하나다.

높이를 위해서는 몰입이 필요하다. 깊이를 위해서는 안식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은 시간의 양이 아니라 현재의 질이다.

중요한 것은 문지방을, 멈춤을, 삶이 다시 숨 쉴 수 있는 작은 틈을 발견하는 것이다.

 

통합 — 몰입과 안식이 만나는 곳

강렬한 몰입을 경험한 후 일상으로 돌아와 생활하면서 이것을 발견했다.

한 달간의 집중적 몰입은 혁명적이다. 삶이 완전히 새롭게 열린다.

하지만 일상 속에서의 장기 지속을 위해서는 몰입과 안식의 균형이 필요하다.

몰입은 Being을 활성화시키고 상승시킨다. 안식은 Being을 회복시키고 깊게 만든다.

둘 다 필요하다. 그리고 둘은 교대로 작동한다.

 

실천 — 오늘부터 시작하는 것

시간이 많든 적든, 이것은 할 수 있다:

아침에 일어날 때, 10초. "감사합니다. 오늘도 살아 있습니다."

일하는 중, 생각이 샐 때마다 1초. "다시."

점심 먹기 전, 5초. "지금 여기."

저녁에 집에 들어가기 전, 10초. 일을 내려놓고 집으로 돌아오는 마음.

침대에 눕기 전, 10초. "여기 있습니다."

폴 틸리히(Paul Tillich)는 말했다: "영원은 시간의 끝이 아니라 시간의 깊이다."

10초도 깊어질 수 있다. 그리고 그 깊이가 당신의 하루 전체를 바꾼다.

 

Calling은 리듬 속에서 자라난다

예전에 나는 이렇게 물었다. "내 Calling이 뭐지? 내가 무엇을 해야 하지?"

하지만 이제 질문이 바뀌었다.

Calling은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다.

완성된 답이 아니라 살아 있는 리듬이다.

몰입할 때, 나는 무엇이 진짜 내 일인지 알게 된다. 흐름이 있는 일이 내 일이다.

안식할 때, 말라붙었던 샘이 다시 차오른다. 잊고 있던 Calling의 속삭임이 다시 들린다.

이 둘 사이를 오가며, 천천히, Calling이 자라난다.

높이와 깊이가 만나는 지점이 Calling의 자리다. 그곳에서, 비로소 우리는 부름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질문

나의 삶은 지금 '높이'를 향해 올라가고 있는가, 아니면 '깊이'를 향해 내려가고 있는가?

오늘 하루 중 단 10초라도 온전히 현존했던 순간이 있었는가?

나만의 지속 가능한 리듬은 무엇인가?

 

"몰입은 그 심장을 높이 들어올리고, 안식은 그 심장을 깊이 뿌리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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