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같은 사자, 사자 같은 양

두 물결이 스치는 자리

2025.11.22 | 조회 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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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stening Heart

관상적 기도, 경청, 그리고 삶 (contemplative prayer, listening, and life)을 위한 글

사람에게 말을 건넬 때마다, 내 가슴 안에서는 두 물결이 부딪힌다.

한 물결은 따뜻하다— 사람을 안아주고 싶고, 상처 없이 지나가게 하고 싶은 마음.

다른 물결은 단단하다— 진실을 말하지 않으면 숨이 막히는 나, 내 안에서 조용히 불을 켜는 나.

나는 늘 그 사이 한가운데 서 있었다. 사랑하고 싶은데, 진실을 말해야 했고 진실하고 싶은데, 누군가를 다치게 할까 두려웠다.

양 같은 사자. 사자 같은 양. 그 두 얼굴이 내 안에서 하나가 되기를 바라면서도 나는 여전히 그 둘 사이에 서 있었다.

물속에 잠기는 순간들

일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누군가 와서 계속 말을 할 때, "지금은 일을 해야 합니다"라는 한 문장을 꺼내지 못해 나는 물속으로 천천히 가라앉는다.

모임에서 그룹으로 발표할 때, 내가 잘 알고 잘 할 수 있는 내용인데도 내가 한다고 하면 잘난 체 한다고 할까 봐 손을 들지 못하고—물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가르침을 받다가 잘못된 부분을 보아도, 전체에 큰 영향은 없으니까, 말하면 아는 체한다고 할까 봐 그저 입을 다문다.

관상적 경청 모임에서 "좀 더 짧게 하는 것이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를 위해 더 좋습니다"라고 피드백을 주고 나면, 상대가 상처받거나 오해하면 어쩌나 마음 한쪽이 젖어 무거워진다.

일의 균형이 맞지 않아 합당한 대가를 요구해야 하는데, 목소리 높이는 사람, 자기만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손가락질당할까 봐 입에서 말이 나오지 않는다.

부탁해야 할 일이 있어도 상대에게 부담을 주거나 안 된다고 거절할까 봐 두려워 며칠씩 연락을 하지 못한다.

상대가 먼저 알아서 해주기를 바라면서, 정작 나는 원한다고 말을 못한다.

이 모든 순간, 나는 내 감정의 물에 잠겨 세상을 뿌연 유리 너머로 본다.

감정의 중심이 젖으면

사람 안에는 누구나 바람이 스치면 움직이고, 햇빛이 닿으면 맑아지는 내면의 '감응하는 자리'(感應, sensing center)가 있다.

하지만 그 자리가 물에 잠기면 모든 신호가 흐릿해진다.

흐린 물결 사이로 이런 목소리들이 떠오른다.

"그들이 상처받았을 거야." "마음을 닫게 될 거야." "사람들은 너를 불편해할 거야." "입을 열면 관계가 깨질 거야."

그것들은 사실이 아니지만— 물속에서는 모든 거짓이 진실처럼 울려 퍼진다.

물결 속에서, 사자의 용기와 어린 양의 부드러움이 하나로 숨쉰다. (Image generated with ChatGPT.)
물결 속에서, 사자의 용기와 어린 양의 부드러움이 하나로 숨쉰다. (Image generated with ChatGPT.)

예와 아니오가 만나는 자리

사랑은 '예'만 말하는 얼굴이 아니다. 때로는 '아니오'라는 문장을 품고 있어야 그 사랑이 비로소 온전해진다.

누군가에게 진실을 말해야 하는데 나는 그 문장 앞에서 오래 떨었다.

그러나 그 떨림 자체가 내가 성장하는 바로 그 자리라는 걸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예만 말하는 것은 쉽다. 아니오만 말하는 것도 쉽다.

하지만 예와 아니오를 함께 품는 마음— 부드러우면서 단단한 그 자리는 나의 가장 깊은 중심에서만 열린다.

양 같은 사자. 사자 같은 양. 그 두 마음이 하나로 만나는 그곳— 거기서 나는 천천히 나 자신이 된다.

젖은 마음이 마르는 시간

피한다고 마르는 것이 아니다.

내 감정의 젖은 자리를 그대로 바라보고, 그대로 느끼는 동안 조금씩 물이 빠져나간다.

피드백을 주고 불편했던 날, 나는 그 감정을 피해 다니지 않았다. 명치 끝의 무거움을, 목의 조임을 있는 그대로 마주했다.

한참을 지나자 파도는 여전히 있었지만 나는 더 이상 그 안에 빠져 있지 않았다.

나는 파도 위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사라진 것은 고통이 아니라, 고통을 감당할 수 없는 내 좁은 의식이었다.

그날 나는 조금 넓어졌다.

관상의 자리로 되돌아가기

집에 돌아와 조용히 앉았다.

오늘 나를 젖게 했던 감정들을 하나씩 꺼내어 하나님 앞에 올려놓았다.

호흡을 따라 지금으로 돌아오고, 거룩한 단어 하나를 고요히 되뇌며 흩어지는 생각을 부드럽게 되가져온다.

그리고 몸의 감각에 귀를 기울인다. 가슴의 돌덩이, 목의 좁아지는 길, 배에 걸린 말하지 못한 말들.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빛 안으로 들어간다.

침묵 속에서 문득 작은 속삭임이 들린다.

"너는 사랑하려 했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그때 미세하게 열리는 자유의 공간을 알아차린다. 오래 짓눌렸던 가슴이 조금 가벼워진다.

무엇인가 변했다기보다, 내가 조금 넓어졌다.

이것이 마르기의 시작이다.

침묵이 마음을 말리는 법

침묵은 회피가 아니라 내면의 불빛을 다시 켜는 행위다.

고요 속에서 감정은 물에서 공기로 바뀌고 명치를 짓누르던 무거움에서 떠오르는 빛으로 변화한다.

아침의 침묵기도는 하루의 가장 어려운 순간을 넘게 하는 보이지 않는 힘이 된다.

피드백을 건넬 때, 부탁을 할 때, '아니오'를 말해야 할 때— 더 이상 물속에 잠기지 않고 물 위에서 말을 건넨다.

양의 부드러움과 사자의 단호함을 함께 품고 나는 비로소 나로 말한다.

내일을 위한 작은 연습

내일도 나를 젖게 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때 나는 이렇게 해보려 한다.

한 번, 깊게 호흡한다. 그리고 속으로 말한다.

"나는 여기 있다. 하나님과 함께 있다."

거룩한 단어로 중심을 붙들고, 예와 아니오를 함께 품은 마음으로 말한다. 그리고 결과는 하나님께 놓아드린다.

저녁이 오면 오늘의 모든 물기를 하나님의 빛 속에서 말린다.

온유함과 담대함이 내 안에서 하나가 되는 그 자리로 조용히 돌아간다.

 

오늘의 묵상

오늘 나는 어디에서 물에 젖었는가?
그 순간, 나를 바라볼 수 있었는가?
호흡과 단어로 돌아오는 길을 걸어보았는가?
내 몸 어디에 두려움이 머물렀는가?
내일은 어떤 순간을 햇빛 속에 말릴 수 있을까?
나는 양 같은 사자, 사자 같은 양의 마음을 함께 품고 있는가?

 

오늘의 기도

오, 하나님, 오늘 저는 물속에 잠겼습니다.

말해야 할 말을 하지 못했고, 사랑해야 할 때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침묵 속에서 저의 젖은 마음을 당신의 빛에 내어드립니다.

내일 다시 흔들릴 때, 호흡으로, 현존으로, 사랑으로 당신께 돌아오게 하소서.

예와 아니오가 함께 있는 자리에서 진실하게, 그리고 부드럽게 살아가게 하소서.

양의 온유함과 사자의 담대함이 제 안에서 하나 되게 하시고,
그 온전한 모습으로 오늘을 살아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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