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치지 않고, 한 걸음 더 머문 날

혼란 속에서 나를 지키는 가장 단순한 방법에 대하여

2025.04.22 | 조회 47 |
0
|
Listening Heart의 프로필 이미지

Listening Heart

관상적 기도, 경청, 그리고 삶 (contemplative prayer, listening, and life)을 위한 글

조용한 숲길 한가운데, 나아가기도 돌아서기도 전에 멈춰 선 한 사람의 순간. by  Jonathan Lampel (@jonlampel)
조용한 숲길 한가운데, 나아가기도 돌아서기도 전에 멈춰 선 한 사람의 순간. by  Jonathan Lampel (@jonlampel)

회의 중, 문득 마음이 쪼그라드는 순간이 있었다.

누군가의 표정, 말끝의 어정쩡함, 설명되지 않은 오해의 공기.

그 안에서 나는 조용히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예전부터 익숙했던 반응이었다.

눈치를 보고, 나를 감추고, 말 대신 침묵으로 버티는 방식.

 

하지만 이번엔 그 익숙함이 전처럼 편하지 않았다.

마음 어딘가에서 작은 저항이 올라왔다.

‘이번에도 이렇게 물러날 건가?

아니면 한 번쯤은 다르게 반응해 볼 수 없을까?’

 

그 물음에 정답은 없었지만,

나는 그 질문 자체에 오래 머물러 있었다.

 

예전의 나는 불편한 감정이 올라오면

그 감정을 통째로 눌러두고 애써 무시했다.

상대의 오해나 불편함보다

그 감정을 느끼는 나 자신이 더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젠 조금 다르게 살아보고 싶었다.

내 감정을 무시하지 않고,

그 안에 담긴 나의 바람을 솔직하게 들여다보는 방식으로.

 

그래서 잠시 그 자리에 머물러 보았다.

회의가 끝나고도 자리를 떠나지 않고,

말을 아낀 상대의 눈빛을 다시 떠올려 보며

내 안에서 올라온 감정들을 하나씩 꺼내어 놓아보았다.

 

불편함.

섭섭함.

그리고 그 감정들을 숨기고 싶은 내 안의 습관.

 

이 감정들은 나를 힘들게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사실은 이 관계가, 이 자리가

나에게 그만큼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벗어나는 게 진짜 원하는 걸까?

아니면, 이 관계 속에서도 나를 잃지 않고 살아보려는 걸까?’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 것이 오랜만이었다.

그저 반사적으로 반응하는 대신,

내 안의 반응을 바라보며

한 박자 늦춰 생각해 보는 것.

 

결국 나는 회피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선택은 생각보다 나를 가볍게 했다.

그 상황이 마법처럼 바뀌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나는 나를 숨기지 않았고,

불편한 감정을 흘려보내지 않았다.

 

그날 저녁, 조용한 방 안에 앉아

내게 작은 고백 하나를 남겼다.

 

"오늘, 너는 도망치지 않았다.

조금 더 나로 살았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

이번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Listening Heart 님에게 ☕️ 커피와 ✉️ 쪽지를 보내보세요!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의견이 있으신가요? 제일 먼저 댓글을 달아보세요 !
© 2026 Listening Heart

관상적 기도, 경청, 그리고 삶 (contemplative prayer, listening, and life)을 위한 글

메일리 로고

도움말 자주 묻는 질문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메일리 사업자 정보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특별시 성동구 왕십리로10길 6, 11층 1109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 | 라이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