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에피소드에서는 현재 서울에 있는 한 국제학교에서 영어 선생님으로 일하고 있는 제 친구 테빈과 함께합니다! 테빈이 한국에서 영어 원어민 선생님으로 일을 시작한 지 벌써 4년이 넘었는데요. 충청도 진천에서 처음 영어 선생님으로 시작해 지금은 서울 강남에 있는 국제학교에서 일하는 여정과 도전에 대해 들어보려 합니다. 또한 테빈이 지금껏 경험하고 관찰한 한국의 특징, 문화 그리고 학생들에 대한 그의 깊이 있는 생각을 같이 들어보시죠!
Q1) 안녕하세요 Tevin! 청취자분들을 위해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Tevin이에요. 미국 텍사스 출신이고, 현재 서울에 살고 있습니다. 서울로 이사한 건 약 6개월 전이고, 그전까지는 충청북도 진천에서 지냈어요. 지금은 강남에 있는 국제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고요. 한국에 온 지는 어느덧 4년반이 됐네요. 이제 곧 30대가 된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아요. 한국에서 20대 후반을 거의 다 보내고 어쨌든 지금은 마지막 남은 제 젊음을 마음껏 즐기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웃음)
Part 1 - 한국에 대해 1도 몰랐던 미국인의 한국 적응기
Q2) 한국에 온 지 벌써 4년이 넘었군요. 시간 빠르네요. 그런데 어떻게 처음 한국에 오게 된 거예요?
처음부터 한국에서 살아봐야겠다. 영어 선생님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어요. 사실 저는 일본에 가는 게 목표였어요. 저는 애니메이션을 정말 좋아해요. 그래서 일본에서 영어를 가르치면서 일본어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히라가나와 가타카나까지 열심히 공부했는데 한자(칸지)에서 완전히 막혀 버렸어요. 그때 우연히도 유튜브에서 한국 생활 브이로그를 보게 됐는데, "한글은 하루 만에 배울 수 있다"는 영상이 눈에 띄었어요. 보자마자 따라 해 봤더니 정말 금방 읽히는 거예요. 그게 계기가 되었어요.
그렇게 한글을 하루 만에 떼고 한국 관련 영상을 계속 보다 보니 어느덧 한국에 짐을 싸서 와 있는 저를 발견했죠. 처음 목표는 딱 1년만 있다가 다시 돌아가는 거였는데, 지금 돌아보니 4년반이 지났네요. 사실, 한국에 오기 전에는 한국에 대해서 지리 시간에 지도에서 봤던 것, 역사 수업에서 전쟁 이야기를 들었던 것 말고는 한국에 대해 아는 게 없었어요. 아는 한국인 친구도 없었고요. 그냥 와서 살아남으면서 배워온 셈이죠.
반면 요즘 미국 젊은 세대는 케이팝이나 한국 드라마 덕분에 한국을 훨씬 잘 알아요. 제 다섯 살짜리 조카도 K-pop Demon Hunters 노래를 줄줄 외우고, 제 '바비'가 사우스 코리아에 있다고 말한대요. 북한에 대해 아는지 모르겠는데, 그냥 Korea가 있는 줄만 안다고 하더라고요.
Q3) 4년 반 동안 지내면서 아직도 불편하거나 어려운 점이 있나요?
아무래도 언어가 제일 커요. 지방에서 일할 때는 주변이 온통 한국어 환경이라 억지로라도 노출이 됐어요. 그런데 지금 학교는 한국어 사용 금지 방침이 있어요. 근무 시간 내내 영어만 쓰다 보니 한국어를 연습할 기회가 확 줄었어요. 듣기와 읽기는 꽤 돼요. 그런데 말하기는 요즘 오히려 늘지 않는 것 같아요.
특히, 은행 같은 중요한 행정 업무를 할 때가 특히 어려워요. 그리고 제 이름 문제도 꽤 골칫거리예요. 한국 시스템은 이름을 대부분 20자 이내로만 입력할 수 있는데, 제 이름은 Tevin Rashan Williams로 공백 포함 21자예요. 그래서 여권이나 외국인등록증 기준 이름과 시스템에 등록된 이름이 달라서 홈택스 같은 곳에서 세금 신고할 때 본인 인증이 안 되는 경우가 생겨요. 이름 마지막 글자 하나가 잘리거든요. 여권을 바꿀 수도 없고, 이 상황이 매우 답답해요. 그리고 쇼핑도 힘들었어요. 저는 덩치가 크고 키도 큰 편이라 한국 옷 매장에서 맞는 사이즈를 찾기가 어렵거든요.
Q4) 최근에 직장을 지방에서 서울로 이사하면서 또 다른 적응이 필요했을 것 같은데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일자리가 지방에 있었어요. 솔직히 첫해에 이미 이직을 생각했는데, 학교가 새 건물로 이사 예정이라는 소식을 듣고 조금 더 기다렸어요. 혁신도시 개발 계획으로 서울의 공공기관들이 이전해 오는 지역이었거든요. 새로운 환경이 기대됐죠. 그리고 그즈음에 여자친구도 만났어요.
그렇게 몇 년이 지나니 일이 점점 같은 패턴의 반복이 되었어요. 외국인 영어 교사들이 1년마다 왔다가 떠났는데, 저는 계속 있다 보니 신입 선생님 케어, 질문 응대, 여러 잡무까지 다 제 몫이 돼버렸어요. 부담이 꽤 컸죠. 무엇보다 여자친구가 경기도에 있어서 자주 오가는 것도 지쳤고요. 마침 지금 학교 채용 공고가 났고, 리크루터의 도움으로 자리를 잡게 됐어요.
지방 생활은 정말 좋았어요. 지금도 가끔 그리워요. 밤하늘에 별이 보이던 풍경이 특히요. 서울은 워낙 건물이 높고 빛이 많아서 별을 보기가 거의 불가능하거든요. 하지만 서울에는 지방에 없던 것들이 많으니까요. 이마트도 있고, 갈 곳도 훨씬 많고요. 장단점이 있는 것 같아요.
Part 2 — 미국인이 본 한국 영어교육과 학생들
Q5) 지방 학교와 서울 국제학교, 상반되는 두 지역에서 한국 학생들을 가르쳐본 경험이 있는데 교육 환경이나 학생들이 많이 다른가요?
정말 달라요. 지방 학교 학생들은 영어를 배우긴 하지만 실제로 쓸 기회가 별로 없잖아요. 처음 왔을 때 저는 학생들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언어 수준 차이가 꽤 컸어요. 반면 지금 국제학교 학생들은 이 인터뷰처럼 자연스러운 대화가 가능한 아이들이에요. 미국, 캐나다, 영국 등 영어권 나라로 유학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이고, 부모 중 한 명이 외국인이거나 호주에 조부모가 있는 경우도 있어요.
흥미로운 건, 제 미국인 여동생보다 영어를 더 잘하는 학생들이 있다는 거예요. (웃음) 첫 수업 시간에 학생들이 저한테 최신 슬랭을 설명해 주더라고요. 덕분에 요즘 중학생들이 무슨 말을 쓰는지 알게 됐어요. 제 여동생도 중학생이거든요. 우리 여동생보다 얘네가 더 유창한 게 신기하면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Q6) 한국 학생들이 미국의 학생들과는 다른 특징이 있다면 뭐가 있을까요?
한국 학생들은 정말 예의가 바르다는 게 제일 먼저 느껴진 점이에요. 미국에서는 친구들이 교사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학생이 소리를 지르거나 교실을 나가버리는 얘기를 종종 들었거든요. 한국에서는 그런 경험이 없어요.
특히 처음에 놀랐던 건 물건을 두 손으로 건네는 문화였어요. 학생들이 제게 뭔가를 줄 때 하던 일을 다 멈추고 두 손으로 전해 주는 거예요. 작은 행동이지만 그 안에 담긴 예의와 배려가 느껴졌어요. 성적에 대한 책임감도 굉장히 강해요. 숙제를 많이 내주면 당연히 불평하지만, 좋은 성적을 받고 싶다는 의지가 분명히 있고 학부모님들도 그걸 중요하게 생각해요.
다만 학원을 많이 다니는 학생들을 보면 번아웃된 모습이 보일 때도 있어요. 특히 수능을 준비하는 고등학생들이요. 그 나이에 그런 압박을 견디는 게 대단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해요. 제 입장에서는 교사로서 스트레스의 근원은 학생들이 아니에요. 아이들은 저를 보면 항상 반갑게 인사해 주고, 편지도 써 주고, 사탕 하나에도 눈을 반짝여요. 그 순간들이 이 일을 계속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Part 3 — 한국인 관찰기 (세 글자 이름과 콩글리쉬)
Q7) 조금 전 한국 생활의 불편함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긴 이름으로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한국인 이름의 특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대부분 3음절이잖아요.
굉장히 신기하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발음 자체는 어렵지 않아요. 두 음절 정도라 금방 따라 할 수 있어요. 근데 외우는 건 좀 어려워요. 성씨 종류도 많지 않고 이름 변형도 상대적으로 적다 보니, 처음 만나는 학생이 많을 때 헷갈릴 수 있어요.
국제학교 학생들은 영어 이름을 쓰는 경우가 많아서 저는 사실 학생들의 한국 이름은 거의 몰라요. 영어 이름으로만 알고 있죠. 가끔 할아버지 세대 이름 같은 걸 쓰는 학생이 있으면 살짝 낯설긴 해요. 마치 미국에서 8살짜리가 "저는 Harold예요"라고 하는 느낌이랄까요. (웃음)
반면 미국도 이름에 세대와 문화적 배경이 담겨 있어요. 이름만 들어도 히스패닉계인지, 아프리카계인지, 코카시안(백인)인지 대략 짐작이 되는 경우가 있어요. 물론 항상 맞는 건 아니지만요. 제 이름 Tevin은 꽤 독특한 편이에요. 살면서 동명이인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어요. Kevin, Devin처럼 '-evin' 계열은 있는데, Tevin은 그중에서도 좀 특별한 케이스예요.
그리고 한국에서는 이름으로 그 사람이 몇 대생인지 느껴진다는 이야기도 재미있었어요. 미국도 마찬가지예요. 부모님 세대 이름과 우리 세대 이름이 확실히 다르고, 트렌디한 이름들은 각 시대를 반영하거든요. 이름 하나에 이렇게 문화와 역사가 담겨 있다는 점에서 한국이나 미국이나 비슷한 것 같아요.
Q8) 한국의 콩글리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요? 재미있거나 인상적인 사례가 있나요?
콩글리시는 진짜 재미있어요. 코스트코를 '코스트코'가 아니라 '코스트코'라고 발음하는 거, 처음에 진짜 못 알아들었어요. 크루아상이 '크루아상'이 아닌 다른 발음으로 들렸을 때도 한참 생각했고요. 그나마 제일 재미있었던 건 '뚜레쥬르' 같은 경우예요. 처음에는 영어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프랑스어예요. 근데 프랑스어도 아닌 발음으로 쓰고 있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한국식 발음도, 영어식 발음도, 원어인 프랑스어 발음도 아닌 독자적인 무언가가 된 거예요. 코리안도 틀리고, 아메리칸도 틀리고, 다 같이 틀리는 상황인 거죠. (웃음) 그 공평한 틀림이 참 재미있어요.
Part 4 — 한국의 다양성에 대한 생각
Q9) 다양성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고 싶어요. 특히 미국, 그중에서도 텍사스는 다양성이 풍부한 곳으로 알려져 있잖아요. 실제로 어떤 편인가요?
텍사스는 워낙 크다 보니 지역마다 다양성의 수준이 달라요. 오스틴 같은 대도시는 다양하고, 제 고향 같은 소도시는 상대적으로 덜 다양해요. 히스패닉계가 제일 많고, 그다음이 코카시안, 흑인 순이었어요. 텍사스가 과거에 멕시코 영토였던 역사가 있어서 히스패닉계가 많은 게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덕분에 좋은 타코와 멕시칸 푸드는 진짜 맛있게 먹을 수 있어요. 대학 때는 히스패닉계가 압도적으로 많았어요.
저는 어릴 때부터 히스패닉, 코카시안, 흑인, 독일이나 슬로바키아에서 온 교환학생들 등 정말 다양한 친구들과 어울렸어요. 인종을 먼저 보는 게 아니라 그냥 같은 팀 동료, 같은 밴드 멤버, 같은 반 친구로 봤어요. 식당에서 비슷한 배경을 가진 사람끼리 모이는 경향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건 인종 때문이 아니라 공유하는 경험과 문화가 비슷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이렇게 동질적인 사회는 처음이었어요. 저는 오히려 제가 눈에 띄는 쪽이 된 거잖아요. 근데 신기하게도 "내가 이상하게 보이나?" 하는 느낌은 없었어요. 오히려 길을 걷다가 제 학생을 마주쳐도 제가 못 알아보는 경우가 더 많았어요. 특히 겨울에는 다들 검은색이나 흰색 롱패딩을 입고 있으니까요. (웃음)
Q10) 한국이 더 다양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패션이나 헤어스타일에서 더 많은 개성이 표현되면 재미있을 것 같기도 해요. 서울 거리를 걷다 보면 사람들이 정말 비슷한 옷을 입고 있거든요. 특히 요즘 겨울엔 흰색이나 검은색 롱패딩이 대부분이에요. 트렌드를 따르는 게 나쁜 건 아니지만, 너무 비슷하다 보니 오히려 트렌디해 보이지 않는 아이러니가 있어요. "Copy and paste 스타일"이랄까요. 근데 사실 저도 한국 오고 나서 스타일이 생겼어요. 미국 있을 때는 스타일이 없었거든요. (웃음) 한국 오니까 기본 컬러 위주로 깔끔하게 입는 게 자연스럽게 익혀졌어요.
진짜 스타일이 있으신 분들은 어르신들이에요. 꽃무늬 모자에 알록달록한 조끼를 입고 다니시는 할머니들, 그분들이 제일 화려하고 개성 있으시더라고요. 하지만 다양성은 겉모습보다 사고방식에서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누군가 하라고 해서 무조건 따르는 게 아니라, 자기 생각과 의견을 말할 수 있는 것처럼요. 한국은 경쟁이 정말 치열한 사회잖아요. 좋은 대학, 좋은 회사라는 정해진 루트를 따르려는 경향이 강한 것도 이해가 가요. 부모님 입장에서 자녀에게 최선을 바라는 마음은 어느 나라나 같으니까요. 다만 그 압박이 때때로 개인의 다양한 선택지를 좁히는 것 같기도 해요.
한편으로는 요즘 한국 사람들이 해외여행을 정말 많이 한다는 게 인상적이에요. 제 고향에서는 마을을 벗어나지 않고 평생 사는 사람들도 많아요. 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다른 나라를 경험하려 하더라고요. 그 자체가 사고의 다양성을 키우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한국에서 배운 것들을 크리스마스 때 고향에 돌아가서 가족들한테 전해 주려고 했는데, "이렇게 하면 더 빠른데, 한국에서 배웠어"라고 말하는 제 자신을 발견했어요. 다른 나라에서의 경험이 자기도 모르게 사고방식을 바꾸더라고요.
Q11) 마지막으로, 한국에서의 삶을 통해 갖게 된 인생 모토가 있다면 나눠주세요.
제 옆구리에 문신이 하나 있어요. 할머니가 늘 하시던 말씀이에요.
"There's more to seeing than sight itself"
보이는 것 너머에 더 많은 것이 있다는 뜻이에요. 표면만 보고 판단하지 말라는 거죠. 제가 한국에 간다고 했을 때 가족들은 처음엔 그냥 1년 다녀오겠지 했어요. 지금도 언제 돌아오냐고 묻고요. 하지만 그분들의 눈에는 "Tevin이 한국에 있다"는 사실만 보여요. 제가 여기서 쌓은 우정, 다녀온 여행들, 두바이며 일본이며 경험한 것들, 그 안에 담긴 이야기들은 보이지 않잖아요. 그러니까 어떤 상황이든 겉모습만으로 다 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할머니는 시각장애가 있으세요. 그래서 얼굴을 보지 못하고 목소리와 성격, 그 사람이 가져오는 에너지로 상대를 판단하세요. 어쩌면 그게 더 본질에 가까운 방식일 수도 있어요. 그 가르침이 저를 여기까지 이끈 것 같아요. 18살 때 충동적으로 새긴 문신인데, 지금 돌아보면 제 인생과 딱 맞아떨어지는 의미가 된 것 같아서 뿌듯해요.
이 인터뷰의 모든 의견은 개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며, 특정 국가나 문화를 일반화하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그 점을 감안하여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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