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셋째 주 - 죽음을 준비하라

가까워진 천국을 향해 나아가는 기쁨의 여정에 대하여

2026.04.19 | 조회 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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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준비하라

 

중세 미술 작품을 감상한 경험이 있다면 아마 어두운 정물화 배경에 뜬금없이 해골이 놓여져 있는 그림을 한 번쯤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죽음을 기억하라'는 의미의 라틴어 문장인 'Memento Mori'를 주제로 한 그림들이다. 당시 이 문장이 예술의 주제로 다루어졌던 이유는 모든 사람은 죽을 것이기 때문에 유한한 삶을 소중하게 받아들이고 현재를 가치 있게 살아가라는 의미였다고 한다.

해석이 그럴 듯하게 들리는 것과는 어울리지 않게 이 그림들은 다소 섬뜩한 분위기를 풍긴다. 하나님을 믿지 않았을 때는 이것이 역설적인 화풍으로 주제를 환기시키는 예술성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지금 보면 이것은 주제를 잘못 해석함으로 인해서 나타난 현상인 것 같다.

피할 수 없는 죽음이라는 한 가지 사실에 대해서 사람들은 두 가지 상반된 반응을 보인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은 죽음 이후를 소망한다. 그러나 그 화풍을 보건대 메멘토 모리 그림을 남긴 화가들은 죽음 이후에 대한 소망은 전혀 없었던 것 같다. 어떤 게 있을지 몰라서였을까? 혹은 반대로 어떤 게 있을지 알아서였을까? 확실한 것은 그들에게 죽음이 주는 인상은 피하고 싶지만 피할 수 없는 것이라는 공포에 지나지 않았다. 그 두려움이 죽음이라는 주제를 환기시킨다는 해골 그림의 본질이다.

 


 

죽음을 기억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두려운 마음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복음이 기쁜 소식인 이유는 죽음 뒤 부활의 소망을 전해주기 때문이다. 죽어서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우리를 위해 예수님이 대신 죄값을 치르시고 천국으로 가는 길을 인도해 주신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사망 권세를 완벽하게 깨뜨리고 승리하셨기 때문에 이 약속은 확실하고 분명하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름으로 유대인을 핍박하고 예루살렘 정복 전쟁을 합리화할 정도로 종교가 모든 것의 중심이었던 중세 시대에 오히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만연해 있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예수님께서는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사람들은 전혀 자유롭지 않았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유대인들을 강제로 물에 집어넣어 세례 의식을 강요하던 중세 기독교의 야만은 또 어떠한가? 진리가 아닌 종교의 열매는, 나에게도 남에게도 두려움만을 남긴다.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한복음 8:32

 


 

오늘날의 기독교에서도 가끔씩 본질보다 의식에 집중하는 것 같아 보이는 세례를 볼 때가 있다. 종교 의식으로서가 아닌 거듭남을 상징하는 의미로서 세례를 되새겨 보았다. 예수님의 오실 길을 예비하는 자였던 세례 요한은 사람들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다. 예수님께서도 요단강에서 바로 이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 물로 세례를 받는 행위는 종교 의식이라 할지라도 중요한 의미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람들 앞에서 이 의식을 통해 거듭남을 선포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진짜 본질이 있다.

세례 요한이 이르러 광야에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마가복음 1:4-5

말씀을 통해서 보면 세례 요한이 베풀었던 것은 그냥 세례가 아니라 '회개의 세례'였음을 알 수 있다. 순서상으로 보면 먼저 자기 죄를 자복하는 회개가 이루어지고 그 다음에 세례를 받는다. 거듭나서 이미 내면이 변화된 사람이 상징적으로 세례를 받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구속사를 이루시고 난 후에 사도들을 통해 전파되는 성령 세례도 동일한 본질을 나타낸다. 세례 요한도 예언했던 이 성령 세례는 먼저 회개하고 죄 사함을 얻은 자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다.

그가 전파하여 가로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거니와 그는 성령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시리라

마가복음 1:7-8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찌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사도행전 2:36-38

선물은 어떤 행위를 해서 받는 대가도, 어떤 노력을 해서 받는 증명서도 아니다. 회개의 뜻은 방향을 돌이키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진정한 회개는 1초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하나 보다. 이렇게 방향을 돌이켜 하나님의 품으로 들어온 자녀들에게 값 없이 주시는 사랑의 선물이 바로 성령 세례다. 바로 이 성령님께서 우리를 천국 길로 인도해 주신다는 것은 설레는 약속이다. 세례 요한도, 그리고 예수님도 회개하라는 메시지를 전파하실 때 덧붙이신 것은 다름 아닌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말씀이었다. 가까워진 천국을 향해 나아가는 길은 두려움이 틈탈 일 없는 기쁨의 여정이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였으니

마태복음 3:2

 


 

얼마 전 읽은 인상적인 책의 제목이 기억난다. 『당신은 죽어요, 그런데 안 죽어요』. 책의 저자인 안이숙 사모님은 만나는 사람들에게 종종 이 사실을 상기시키는데, 그것은 그들이 죽음 뒤의 영원한 삶을 기쁨으로 준비하기 원해서라고 한다. 감사하게도 이 말을 듣고 돌이키는 경우도 있는가 하면, 심각한 기분이 들고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그냥 외면해 버리는 경우도 있다. 죽음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이다.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 해야 할 일은 하나다. 회개, 즉 하나님께로 방향을 돌이키는 것이다.

죽음 뒤의 영원한 삶을 사랑하는 예수님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소망이다. 이 소망을 가지고 죽음을 준비하며 살고 싶다. 내 힘으로가 아니라 예수님의 보혈을 힘 입어서 말이다. 두려워할 필요도 없고 그저 기쁨과 감사로 나아가면 되는 그 길이 주어졌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책임질 테니 너는 나를 기뻐하기만 하라고 말씀하신다. 그 음성을 들을 때면 마음이 밝아진다.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끝까지 이긴 자, 남은 자 될 수 있도록 보호하고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께 모두 맡기면 좋겠다.

내가 너의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
너희는 무지한 말이나 노새 같이 되지 말찌어다 그것들은 자갈과 굴레로 단속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가까이 오지 아니하리로다
악인에게는 많은 슬픔이 있으나 여호와를 신뢰하는 자에게는 인자하심이 두르리로다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기뻐하며 즐거워할찌어다 마음이 정직한 너희들아 다 즐거이 외칠찌어다

시편 32: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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