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커피(Prolog Coffee)는 덴마크 코펜하겐에 위치한 카페예요. 개업 2년 만에 덴마크 바리스타 챔피언십을 2번 연속 우승했고, 작년에는 1,020만 크로네(우리 돈으로 약 24억 원)의 매출이익을 기록했죠.
그런데 그들은 매출보다도 '스페셜티 씬(scene)에 새로운 지평을 연 곳'으로 업계에서 인정을 받아요. 단지 임시 팝업 매장에 불과했던 작은 공간에서 시작한 그들이 어떻게 그런 평가를 받게 됐을까요?
오늘은 프롤로그 커피의 공동 창립자이자 브랜드 디렉터, 세바스찬 퀴스토프(Sebastian Quistorff)의 이야기입니다.
서드웨이브에 반기를 든 브랜드 디렉터
세바스찬은 원래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했어요. 그러던 중 2011년에 에머리스 베이커리에서 처음으로 커피를 담당하고, 결국 26개 베이커리 매장을 총괄하는 브랜드 디렉터가 됐죠.
그런 그의 눈에 2010년대 스페셜티 업계는 어딘가 이상해 보였습니다. 미국과 독일 베를린이 이끌던 서드웨이브 (커피의 제3의 물결)는 원두 본연의 풍미와 산지 농부들의 가치를 끌어올렸지만, 정작 손님을 소외시키고 있었거든요. 손님의 취향보다 메뉴마다 지켜야 할 규칙을 앞세웠고, 바리스타 중심의 엄격한 분위기가 굳어 있었죠.
하지만 세바스찬에게 카페는 손님의 일상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공간이어야만 했어요. 커피는 그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고요. 그가 동업자 요나스 겔과 프롤로그를 시작한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쾨드뷔엔(Kødbyen)의 작고 길쭉한 잡지 가게
당시 코펜하겐의 스페셜티를 주도하던 다른 브랜드들은 주거 지역이나 차분한 골목에서 학구적인 분위기를 이끌어갔어요. 반면, 세바스찬은 정반대의 장소 쾨드뷔엔(Kødbyen)을 택했습니다. 번역하면 '고기 도시'라는 뜻으로, 한때 유럽에서 정육점 밀도가 가장 높았다가 업체들이 떠나며 쇠락한 옛 도축 단지였죠.
서울에 비유하면 성수동과 문래동의 매력을 섞어놓은 듯한 곳이에요. 과거 도축장과 육가공 공장이 있던 거친 공간에 지금은 레스토랑, 갤러리, 클럽이 들어서 활기가 넘치죠. 낮과 밤의 모습이 완전히 달라서, 세바스찬이 그리던 권위를 뺀 가식 없는 커피를 실천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장소였습니다.
세바스찬과 요나스에게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어요. 2016년, 코펜하겐의 스타 셰프 듀오가 이끄는 푸드 디자인 스튜디오 <I'm a KOMBO>가 자신들의 공간 일부에 팝업 매장을 열어보지 않겠냐고 제안한 겁니다. 창의적인 로컬 F&B 전문가들과의 실험적 시도로 시작된 운명적인 만남이었죠. 그렇게 원래는 오래된 잡지 가게였던 작고 길쭉한 공간에서 프롤로그가 시작되었습니다.
카페를 콘서트 무대로 여기다, 프롤로그 커피
프롤로그는 24시간 끊임없이 변하는 동네의 흐름 속에서, 누구든 편안히 앉아 즐기고 대화할 수 있는 커뮤니티 허브를 자처했습니다. 특이하게도 세바스찬은 카페를 라이브 콘서트 무대처럼 여겼어요. 손님이 문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따뜻하게 맞이하고, 커피 한 잔을 마시는 경험이 완벽하고 특별하게 느껴지도록 분위기와 인테리어를 설계했죠.
프롤로그는 하루 20배치, 매주 약 1,000kg에 달하는 스페셜티 원두를 로스팅해 전 세계 각지로 납품할 만큼 커피 품질에 대한 신뢰가 단단해요. 매 교대마다 헤드 바리스타를 배정하여 맛을 영점 조절하고, 최고급 산지의 원두만 고집하는 등 스페셜티 커피 씬의 가장 엄격한 기준을 따릅니다. 하지만 정작 동네에서는 그 분주함과 정밀함을 앞세우기보다, 편하게 다가가는 커피로 온기와 환대를 불어넣은 것이죠.
우리는 손님 없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손님이 가장 중요하고, 그들의 경험이 무엇보다 중요하죠. 커피를 향한 우리의 사랑을 기리기 위해, 우리는 당신을 기립니다.
We don't exist without our guests. So the guest is the most important thing and their experiences are the most important thing. To celebrate our love for coffee we celebrate you.
— 세바스찬 퀴스토프 (Sebastian Quistorff)Behind the Scenes at Prolog: Copenhagen's Amazing Coffee Gem
Quiet Luxury
세바스찬이 추구하는 '조용한 럭셔리(Quiet Luxury)'의 디테일을 몇 가지 소개해드릴게요. 세바스찬은 로컬 협업을 무척 중요하게 여겨요. 엄선된 덴마크 현지 도예가가 빚은 맞춤형 커피 컵과 지역 목공예가가 만든 서빙 트레이를 쓰고, 함께한 아티스트들을 꾸준히 태그하고 조명해 왔죠.
덴마크 보른홀름 섬 출신의 도예가 사라 오크만과 협업한 컵을 예로 들어볼게요. 표면의 독특한 기포 무늬 유약은 사라의 고향인 보른홀름 섬 해안 절벽에 자라는 이끼에서 영감을 받았다는데, 뜨거운 커피를 들 때 손이 직접 닿지 않도록 보호하는 기능도 하죠.
코펜하겐의 디자인 스튜디오 스탠다드 프랙티스와는 '스탠다드 트레이'를 함께 디자인했어요. 손님이 커피를 받을 때 처음 마주하게 되는 이 트레이는 디자인적으로 훌륭하면서도, 튼튼하여 여러 개를 쌓아 올릴 수 있는 (Stackable) 제품으로 만들었죠. 스칸디나비아산 더글러스 전나무를 현지에서 가공해 로컬리티까지 살렸고요.
에스프레소나 커피를 젓는 막대와 스푼도 덴마크 은세공 브랜드 조지 젠슨(Georg Jensen)의 '베르나도트' 라인을 써요. 쾨드뷔엔의 투박한 콘크리트 인테리어와 대비를 이루는 은식기가 예기치 못한 우아함을 더한다는 점이, 프롤로그만의 독특한 접객 포인트가 되기도 하죠.
심지어는 음악마저 디테일이 숨어있습니다. 스포티파이의 카페 플레이리스트 대신에 ‘FIP’ 프랑스 라디오 방송을 그대로 틀어 예상 밖의 경험을 선사하거든요. 프랑스 라디오 특유의 예측 불가능한 장르 믹스 덕분에, 손님들은 편한 분위기에서도 새로운 감각적 자극을 받게 됩니다.
이런 디테일은 결국 비콥(B Corp) 인증으로 이어졌어요. 비콥은 단순히 돈을 버는 것을 넘어, 기업이 환경과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을 엄격히 측정해 일정 점수를 넘긴 곳에만 주어지는 인증이죠. 실제로 프롤로그는 기후테크 기업 클리마테(Klimate)와 협업해 바이오차 기술이나 직접공기포집 기술 등 탄소 제거 솔루션에 투자하며 환경적 책임을 수치로 증명해냈습니다.
에필로그
이런 세바스찬에게 궁극적인 목표는 '커피를 통한 삶의 질 향상'이라고 해요. 놀라운 건 손님들뿐만 아니라 자신과 일하는 직원들의 삶의 질까지 함께 고민한다고 합니다.
맛있는 커피와 손님, 직원, 심지어 로컬 협업자까지 카페를 위해 노력하는 이들의 삶을 개선하고자 노력하는 그가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노르딕 로컬 카페지만 커피를 즐기고 사랑하는 이들이 스페셜티 커피를 대하는 '태도의 혁신'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해요.
올해 2월, 세바스찬은 10년의 대장정에 마침표를 찍고 프롤로그라는 챕터를 닫았습니다. 잘되는 카페를 두고 퇴사를 결정하는 이런 용감한 추진력이야말로 프롤로그 커피를 키운 비결이 아닐까 싶어요.
다행히 우리는 커피계의 구루를 잃어 아쉬워할 새도 없이, 그가 새 디렉터로 합류한 런던의 스페셜티 커피 그룹 Hagen에서 다시 그를 만날 수 있게 됐습니다. 저도 기회가 된다면 꼭 런던에서 그의 커피를 즐겨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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