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업계 출신 이민자가 커피의 판도를 뒤집다

홀로 마드리드의 입맛을 바꾼 토마 카페 이야기

2026.06.24 | 조회 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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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티 커피의 도시를 꼽아보시겠어요?

 

아마 호주 멜버른, 덴마크 코펜하겐, 독일 베를린이 먼저 떠오르실 거예요. 그 목록에 스페인 마드리드를 올리는 사람은 거의 없죠. 그럴 만도 합니다. 마드리드는 2010년대까지만 해도 '제3의 물결'은커녕 제대로 내린 커피 한 잔조차 찾기 어려운 도시였으니까요. 그런 도시에서, 스페인 사람들의 커피 입맛을 통째로 바꿔놓은 카페가 있습니다. 그것도 홀로 말이에요.

 

오늘의 주인공은 토마 카페의 공동 창립자이자, 15년이 지난 지금도 직접 커피를 내리는 산티아고 리고니(Santiago Rigoni)입니다.

토마 카페 (Toma Café) 전경
토마 카페 (Toma Café) 전경

 

아르헨티나 출신의 아트 디렉터

여러분은 같은 스페인의 또 다른 대도시 바르셀로나가 유럽에서 손꼽히는 커피 문화를 가진 도시라는 걸 아셨나요?

런던에서 실력을 갈고닦은 바리스타 챔피언이 고향에 돌아와 차린 노마드 커피(Nomad Coffee), 차(茶)도 와이파이도 두지 않는 고집스러운 사탄스 커피 코너(Satan's Coffee Corner), 1919년부터 스페인 내전과 독재를 모두 겪어내며 대를 이어온 로스터 엘 마그니피코(El Magnífico) 등등 — 유명한 곳만 꼽아도 끝이 없습니다.

 

당연히, 스페인의 수도인 마드리드의 카페 문화도 무르익었어야 했지만, 현실은 달랐어요. 마드리드 사람들은 제대로 된 커피 한 잔을 마시려면 다른 도시로 떠나야 했었습니다.

그 점에 지친 두 사람이 있었으니, 산티아고 리고니와 그의 아내 파트리샤 알다입니다. 뉴욕 여행 중 길거리의 작은 커피 스탠드에서 커피를 마시던 두 사람에게 스파크가 튀었어요. "이런 공간이 마드리드에도 있어야 한다." F&B 경험이 전혀 없던 두 사람이었지만, 두 달 만에 이름과 로고와 자리를 정했죠.

 

그리고 2011년, 아르헨티나 출신 이민자 남편과 스페인인 아내는 말라사냐의 작은 코너에서, 그렇게 커피 혁명을 위한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torrefacto! (토레팍토!)

대체 마드리드의 커피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산티아고가 '진짜 커피 맛'을 알리기 전, 마드리드 사람들이 마시던 커피는 대개 토레팍토 원두를 섞은 것이었습니다.

어떤 관광객은 토레팍토를 집까지 싸 들고 가 주변에 알리고 싶을 만큼 훌륭하다고 칭찬합니다. 반면 어떤 커피 애호가는 이렇게 평가하죠.

입술에 닿는 순간 스페인의 낭만은 끝이다. 이 검은 액체는 너무 쓰고 거칠어서, 마치 뜨거운 산성액에 타이어가 타는 연기가 섞인 것 같다.

 

토레팍토가 대체 뭘까요? 간단히 말하면, 로스팅 과정에서 원두에 설탕을 입힌 것입니다. 약 15~20%의 설탕을 200도가 넘는 고온에서 원두와 함께 볶으면, 캐러멜화를 넘어 원두에 까맣고 반짝이는 코팅 막을 형성하죠.

좌측의 일반적인 원두와 우측의 토레팍토. 설탕 코팅 막이 입혀져, 까맣고 반짝인다.
좌측의 일반적인 원두와 우측의 토레팍토. 설탕 코팅 막이 입혀져, 까맣고 반짝인다.

이 방식의 기원은 한 세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지금도 건재한 스페인의 커피 대기업, 카페 라 에스트렐라(Cafés La Estrella)에서 찾아볼 수 있어요. 창업자는 원두를 구하러 떠난 출장길에서, 현지 광부들이 설탕과 함께 커피를 볶는 광경을 우연히 목격합니다. 이렇게 설탕 막을 입힌 커피콩은 광부들이 지하에서 수개월간 작업하는 동안에도 상하지 않을 만큼 보존력이 뛰어났어요. 달달한 맛은 덤이었고요. 그는 스페인으로 돌아와 곧장 토레팍토 공정에 대한 특허를 냅니다.

그리고 1940년대, 스페인 내전 이후 나라가 궁핍하던 시기에 토레팍토는 전국으로 빠르게 퍼졌습니다. 커피 원두 자체가 귀하던 시절이었어요. 값싼 원두에 치커리나 잡곡을 섞은 형편없는 맛을, 설탕으로 덮어버릴 수 있었던 거죠. 게다가 설탕이 원두의 무게까지 불려주니 비용은 줄고, 보관은 오래갔죠.

 

스페인 사람들이 여전히 토레팍토를 찾는 이유는 두 가지예요. 하나는 쓰고 진한 맛이 '진짜 커피' 맛으로 각인될 만큼 오래된 미각 습관이고, 다른 하나는 값싼 원두의 낮은 품질을 감추면서 비용을 아끼려는 기업의 이해관계입니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산티아고와 파트리샤의 생각은 분명했습니다. 누군가 행동하지 않으면, 대형 커피 회사들은 관행을 바꿀 이유가 없다는 것. 토레팍토는 커피 가격에 설탕을 얹어 파는, 원가를 낮추는 훌륭한 방법이니까요.

 

하지만 토마 카페에게 진짜 장벽은 따로 있었어요. 거의 백 년간 지역 문화에 뿌리내린, 눈에 보이지 않는 벽이었죠. 스페인 사람들은 탄 설탕의 강렬한 맛에 익숙했고, 게다가 커피를 제대로 내리는 법조차 몰랐으니까요. 

커피의 산미와 자연스러운 단맛이 사실은 지극히 정상적이고, 심지어 바람직한 요소라는 걸 설득하는 건 외롭고 어려운 길이었어요. 사람들은 그 산미를 두고 커피가 시큼하다고, 상한 게 아니냐며 거부감을 보였거든요.

 

토마 카페는 300만 인구가 밀집한 지역에 말 그대로 유일한, 단 하나의 스페셜티 커피 바였습니다. 그래도 산티아고는 끝까지 자신만의 길을 갔어요. 컵이 가득 찰 때까지 과다 추출하는 방식의 스페인식 커피(café solo), 혹은 미리 데운 우유를 다시 스팀해 두 번 데우는 등의 잘못된 관행을 하나씩 타파해 나갔죠. 그리고 원산지 고유의 개성을 살린 싱글 오리진과 신선한 우유로 갓 스팀한 플랫 화이트로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제3의 물결이 마드리드에 닿다

정성껏 내린 한 잔, 한 잔이 쌓여 점차 입소문을 타자, 사람들이 몰려든 말라사냐 거리도 토마 카페와 함께 들썩이며 새롭게 부상하기 시작했습니다. 토마의 성공 이후 이 거리를 중심으로 수많은 스페셜티 커피숍이 몰려들었거든요. 홀로 일으킨 수제 커피 열풍이, 결국 오늘날 말라사냐를 스페인의 서드 웨이브와 힙스터 문화의 중심지로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한 도시의 문화를 바꾼 산티아고의 핵심 무기는 전문성이에요. 그는 전 세계 소규모 수집상과 협동조합에서 엄선한 원두를 다루고, 로스팅을 직접 감독해요. 그리고 그 일의 바탕에는 산지 생산자에 대한 책임감이 있죠. 점점 고급화되는 커피의 가장 큰 수혜자는, 결국 재배자여야 한다는 분명한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산티아고 리고니와 토마 카페
산티아고 리고니와 토마 카페

 

산티아고가 꼽는 좋은 커피의 조건은 세 가지입니다. 직접 꼼꼼히 살핀 산지, 커피콩을 농작물로 여겨 제철에 맞게 다루는 감각, 그리고 한 잔의 커피에 담기는 아름다움을 위한 디테일이죠.

완벽한 커피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여러 요소가 어우러져 훌륭한 커피가 될 뿐이죠.
Creemos que el café perfecto no existe, pero sí una suma de coincidencias que hacen que tu café sea excelente.
— 산티아고 리고니 (Santiago Rigoni)

En busca del café perfecto <Vogue Spain>

완벽이라는 허상을 좇는 대신, 자신이 영향을 미치는 매 요소 하나하나에 그저 최선을 다하겠다는 장인의 태도입니다.

 

영향력 사슬

토마 카페에는 스페인 특유의, 조금은 절제되지 않은 분위기가 있어요. 그 안에 자유롭고 따뜻한 감정이 흐르죠. 칼 각으로 짜 맞춘 원목과 흰 타일의 북유럽, 차갑고 거친 베를린의 미감과는 사뭇 다른 결입니다. 이런 카페의 모습에는 산티아고가 추구하는 시끌벅적하고 따뜻한 스페인식 환대가 스며 있는 것 같습니다.

 

그는 인터뷰에서 늘 '수많은 손들의 사슬'을 이야기합니다. 한 잔의 커피 뒤에는 땅을 일구고, 묘목을 심고, 열매를 따고, 말리고, 수입하고, 볶고, 포장하는 여러 손들의 연결이 있다고 말이죠. 기후 변화나 병충해로 생산량이 급감한 해에도 생산자와 거래를 끊지 않고 신뢰를 이어가는 이유가 거기 있습니다. 사슬의 한 고리가 무너지면, 전부가 무너지니까요.

연대의 마음은 동네에서도 이어집니다. 산티아고는 로스팅한 원두를 마드리드 전역의 개인 소비자와 B2B 파트너(다른 카페와 레스토랑)에게 직접 배달하는 로컬 물류 시스템을 자체적으로 꾸렸어요. 또 아카데미를 열어 에스프레소 추출, 브루잉(필터), 라떼 아트, 센서리(테이스팅)를 정기적으로 가르칩니다.

 

결국 토마는, 마드리드 스페셜티 커피의 신호탄이자 일종의 사관학교가 되었습니다. 현지 커피 업계에서 토마 카페를 평가할 때 빼놓지 않는 가장 중요한 업적이죠. 토마를 거쳐 간 수많은 바리스타와 전문가가 독립해, 스페인 곳곳에 자신만의 스페셜티 커피숍을 차렸기 때문입니다. 지역 사회를 커피로 연결하려는 마음이, 그의 모든 실천에 배어 있어요.

 

에필로그

광고업계에서 사무직으로 일하던 아르헨티나 출신 남편과 스페인 아내. 이 부부는 개업 이후 수많은 편견과 고정관념에 홀로 맞서며, 결국 스페인 커피의 혁명을 이끈 인물들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들의 연대기를 보며, 옳다고 믿는 길 위에서 외롭더라도 끝까지 걸어가는 뚝심을 배웠습니다. 언젠가 말라사냐의 골목을 걸으며, 토마의 한 잔과 토마가 길러낸 제자들의 한 잔을 차례로 맛보고 싶어요. 불가능해 보였던 도전이 그 작은 골목에서 시작되어 어떻게 이어졌는지, 그 연대를 저도 느껴보려고요.

로컬 리터러시는 동네의 유니크한 카페와 바를 매주 읽어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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