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내 직업이 사라진다면? AI 시대, PM 대신 ‘빌더’를 택한 이유」

凝 4회차 - 이도헌

2026.08.03 | 조회 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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凝 004

 

내 직업이 사라진다면? AI 시대, PM 대신 '빌더'를 택한 이유

이도헌

AI 스타트업 에스크잇모어 PO 인턴, Onlydecks/Snapdeck, 획득 스쿼드(이글루)


이도헌님은 현재 스타트업 에스크잇모어에서 인턴으로 일하며, Onlydeck의 그로스와 유저 획득 업무를 맡고 있다.
이도헌님은 현재 스타트업 에스크잇모어에서 인턴으로 일하며, Onlydeck의 그로스와 유저 획득 업무를 맡고 있다.

Q.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AI 스타트업 에스크잇모어에서 PO 인턴으로 일하고 있는 이도헌입니다.

처음에는 사진에서 출발해 디지털미디어디자인과 기획, AI 서비스 기획을 경험하며 자연스럽게 '프로덕트를 만드는 일'로 제 역할을 넓혀왔습니다. 지금은 획득 스쿼드에서 Onlydecks와 Snapdeck의 유저 획득을 맡으며, 더 많은 사람들이 저희 제품을 만날 수 있도록 다양한 경로를 설계하고 있습니다.

저는 저를 특정 직함보다는 '빌더'에 더 가깝다고 생각해요. 빌더는 하나의 직무명이 아니라, 문제를 발견하고 직접 해결하는 태도에 가깝다고 믿거든요. 최근에는 AI를 활용해 제 역할을 확장하고, 반복되는 일은 아예 '스킬'로 만들어 자동화하고 있어요. 단순히 일을 더 빨리 처리하기 위해서라기보다, 실행 비용이 줄어든 만큼 문제를 푸는 과정에서 '판단'에 더 집중하기 위해서입니다. 궁극적으로는 빌더라는 마인드셋을 바탕으로, AI 기술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PM이라는 잡(job)이 사라진다면, 어떤 일을 하고 싶으세요?"

면접장에서 받은 그 질문을 이도헌님은 오래 기억하고 있었다.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고 했다. PM이라는 직무를 준비해왔지만, 그 질문은 직함 너머의 자신을 묻고 있었다.

기획자, 디자이너, 개발자라는 이름이 조금씩 흐려지는 시대. AI가 직군 간 경계를 허물고, 한 사람이 더 많은 역할을 넘나들게 되는 시대에 우리는 무엇으로 자신을 설명할 수 있을까.

도헌님은 그 답을 'PM'이라는 이름보다 먼저, '만드는 사람'에서 찾고 있었다. 아직 스스로를 완성된 빌더라고 부르지는 않았지만, 그는 오래전부터 무언가를 설계하고, 기록하고, 사람을 움직이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그가 무엇을 만들고 싶어 하는지, 그리고 왜 직함보다 만드는 행위에 자신을 걸게 되었는지 묻기 위해 마주 앉았다.

 

"지금의 직무는 하나의 형태일 뿐, 결국 저는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 이도헌

01

첫 번째, 출발

만드는 사람의 원형

 

그는 어릴 때부터 남들과 다른 것을 추구했다. 흔한 신발이 싫어 하루에 백화점 네 곳을 돌기도 하고, 분해한 샤프를 조합해 자기만의 필기구를 만들어 쓰기도 했다. 자기 의도대로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어내는 것. 그의 원형은 처음부터 거기 있었다.

여덟 살 무렵, 그 원형은 '자동차 디자이너'라는 꿈으로 구체화되었다. 미술은 그에게 목적이 아니라 자기 의도를 표현하는 수단이었고, 거기에 어릴 때부터 좋아한 자동차가 더해진 꿈이었다. 그는 고등학교 때까지 줄곧 그 꿈을 품었다고 한다. 하지만 자동차 디자이너가 되기는 쉽지 않았다. 실기력이 중요한 미대 입시에서 "보는 눈은 있는데 손이 따라오지 않아" 뜻대로 되지 않았고, 그는 손보다 '보는 눈'이 강점인 사진으로 방향을 틀었다.

다행히 사진은 적성에 잘 맞았고, 비실기로 입학해 최우수로 졸업할 만큼 재능도 있었다. 그런데 그는 그 매체에 머물 생각이 없었다. 스토리보다 비주얼이 중요한 상업 사진을 지향했던 만큼 항상 새로운 매체에 목말라했고, 사진에 디지털 아트와 3D를 접목해보며 계속 새로운 시도를 이어나갔다. 무엇보다, 미술이 그랬듯 사진 역시 그에게는 목적이 아니라 하나의 수단이었다.

새로운 매체를 향한 그의 시도는 졸업작품에서 정점을 찍었다. 사진을 액자로 걸어 전시하는 게 보통인 학과에서, 그는 학과장을 설득해 최초로 영상 작품을 전시했다.

Velocitá6 · 다이캐스트 자동차로 만든 가상 레이싱 게임 홍보 영상.
Velocitá6 · 다이캐스트 자동차로 만든 가상 레이싱 게임 홍보 영상.

작품 "Velocitá6"는 정밀한 다이캐스트 자동차 모델을 찍어, 세상에 없는 가상의 레이싱 게임을 기획하고 홍보 영상까지 만든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한 교수님의 조언으로 게임의 소구점을 조사하고, 사용자가 게임을 하며 겪는 플로우에 따라 콘텐츠를 설계하면서, 그는 처음으로 '기획'을 제대로 경험했다.

"제가 의도한 대로 사람들이 콘텐츠를 소비하는 거요. 저는 그게 즐거웠어요."

Velocitá6 · 다이캐스트 자동차로 만든 가상 레이싱 게임 프로모션
Velocitá6 · 다이캐스트 자동차로 만든 가상 레이싱 게임 프로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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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두 번째, 탐색

유연한 시도 끝에 남은 것

02-01. 직무를 지워가며 남은 것, 기획

사진과를 졸업할 무렵, 그는 기획이 재밌다는 건 알았지만 어떤 직무를 택하는 것이 좋을지, 더 나아가 어떤 삶을 살아갈지 고민되었다고 한다. 그 해답을 본격적으로 파고든 건 군대에서였다. 개인에 대한 탐구와 앞으로 학습할 매체 선정.

두 가지 목표를 세운 그는, 자기 성향을 이해해 가는 동시에 채용 플랫폼을 보며 본인과 맞지 않을 것 같은 직무를 하나씩 지워나갔다. 그렇게 지우고 남은 자리에는 "서비스 기획"과 "콘텐츠 기획"이 있었다는 것이다.

복무 기간 동안 취업과 유학, 편입이라는 세 갈래 선택을 두루 고민한 끝에 택한 것이 편입이었다. 기획을 세부전공으로, 서비스와 콘텐츠 더 나아가 VR이나 AR 같은 새로운 기술을 접할 수 있는 디지털미디어디자인과로 진학했다. 그런데 막상 들어가서 실감미디어를 배워보니 새로운 폼팩터 개발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느꼈고, 이와 별개로 새로 마주한 UX 분야는 너무나도 거대했다. 그래서 그는 계획을 변경했다. 실감미디어는 잠시 미뤄두고, UX 분야에 집중하기로. 그렇게 보낸 1년을 그는 "끌려다닌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취업을 준비해야 하는 4학년 진학을 앞두고, 그는 돌연 휴학을 결정했다. 뚜렷한 직무 방향성 없이 취업을 준비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1년간 챗GPT의 출시가 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몸소 체감한 뒤였다. 지금 졸업하면 끝물이지만, 잠시 1년 숨을 고르면 오히려 시작점에 설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휴학 계획서에는 이렇게 적어두었다고 한다.

"AI라는 파도를 타기 위한 서퍼가 되기 위해 잠시 멈춘다."

그는 1년 중 4개월 동안 다양한 강의와 영상, 글을 접하며 "프로덕트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방향과 방법을 찾아 실현하는 일"을 업으로 삼기로 결정했다. 그때부터 서비스 기획자, 더 나아가 PM/PO를 꿈꾸기 시작했다. 그해 9월, 기획부터 배포까지 직접 경험해보고 싶었던 그는 사이드 프로젝트 팀원을 직접 구했다. 그렇게 모인 여덟 명과 함께 만든 것이 커피 커뮤니티 앱 브루버즈다.

코로나 이후 커져가는 스페셜티 커피 시장과 '커린이'라는 커피 입문자의 시음 기록을 중심으로, 커피 취향 탐색을 돕는 커뮤니티였다. 배포까지 걸린 기간은 거의 1년. 중간에 팀원이 이탈하기도 했지만 어찌저찌 끝까지 팀과 배포를 해냈다. 그 후 팀을 재정비해 네 명의 팀원과 6개월간 서비스를 운영했다. 누적 앱 다운로드는 약 900회. 프로덕트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팀과 함께 나아가는 법을 배웠다고 한다. 무언가를 팀과 함께,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어본 경험이었다.

커피 입문자의 취향 탐색을 돕는 커뮤니티 앱 '브루버즈' 
커피 입문자의 취향 탐색을 돕는 커뮤니티 앱 '브루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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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 운영을 앞두고 브루버즈의 한계를 짚어본 손글씨 기록 (2025.07.05)
서비스 운영을 앞두고 브루버즈의 한계를 짚어본 손글씨 기록 (2025.07.05)

 

02-02. 행동으로 AI 시대의 흐름을 읽다

한편 휴학 기간 동안 그는 AI 기술의 발전에 따라 바뀌는 산업의 흐름을 주목하고 있었다. 특히 AI가 가져올 컴퓨팅의 변화, 그리고 그에 따른 UX의 변화에. 그 관심은 CIT가 운영하는 HCIC 6기 활동으로 이어졌고, 약 4개월간 HCI 개론을 학습하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 그가 주목한 건 사용자와 능동적인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상호작용하는 '컴패니언 AI'라는 키워드였다.

브루버즈로 PM으로서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어본 그는, 이번엔 AI 서비스 기획에 직접 뛰어들었다. 2025년 8월, 네이버클라우드 AI 해커톤에서 다섯 명의 팀원과 함께 만든 '딱 10분만'은 외출 준비 과정에서 개인화된 피드백으로 지각 습관 개선을 돕는 AI 에이전트 기반 서비스였다. 해커톤 도중 개발자 한 명의 연락이 두절되자, 그는 어떻게든 끝내보겠다며 Cursor와 Figma MCP로 직접 UI 구현을 시도했다. 배포까지는 해냈지만 일부 기능은 끝내 완성하지 못했다. 이 경험을 통해 그는 두 가지를 체감했다. AI 서비스 기획은 기술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어렵다는 것, 그리고 비개발자도 직접 서비스를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딱 10분만 지각 습관 개선을 돕는 AI 에이전트 서비스 '딱 10분만' 네이버클라우드 AI 해커톤 출품작 
딱 10분만 지각 습관 개선을 돕는 AI 에이전트 서비스 '딱 10분만' 네이버클라우드 AI 해커톤 출품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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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경험들이 하나의 방향으로 모인 것이 2025년 3월부터 약 1년간 준비한 졸업작품 Flowy다. 1년 전과 달리 사람들이 생성형 AI를 정서적 지원에 많이 활용한다는 HBR의 분석에서 힌트를 얻었다. 현행 서비스를 분석하고 사용자 조사를 해보니, ChatGPT 같은 상용 AI 서비스를 정서적 지원에 활용할 때는 '감정 해소'에만 그치는 일시적 관리에 머문다는 문제가 있었다. 특히 학계에서는 AI와의 대화에 의존하는 감정 관리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그는 이 지점을 출발점으로 삼았다. AI와의 대화가 일시적인 해소에서 끝나지 않고, 사용자가 주체적으로 감정을 관리하는 경험으로 이어지게 하자는 것이었다.

팀은 AI와의 대화를 시작으로 감정 인지, 조절, 회고로 이어지는 감정 관리 플로우를 설계했다. 특히 대화를 설계하는 과정에서 AI가 공감하면 사용자가 더 깊은 얘기를 꺼낸다는 'self-disclosure' 원칙을 근거로, 감정 파트너 역할을 하는 AI 에이전트 'Foi'를 설계했다. 공감적 반응 여덟 개를 설계해 대화를 이어나가고, 궁극적으로 사용자가 포이를 '감정 파트너'로 수용하도록 했다.

이러한 설계는 대외적으로도 인정받아 국제 공모전 K-Design Award에서 Gold Winner를 수상했다. 이후 졸업 전시에서는 '공감적 반응'을 관람객이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Cursor로 'Foi'를 구현했다. Vision, STT, LLM, TTS 등의 기술로 로컬에서 멀티모달로 돌아가게 만들었고, 3일 만에 키오스크에 최적화된 MVP를 완성했다. "이거 출시해주시면 안 돼요?"라는 말을 여러 번 들을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고 한다.

AI와의 대화를 '주체적 감정 관리'로 잇는 서비스 'Flowy',  감정 파트너 AI 'Foi'로 K-Design Award Gold 수상
AI와의 대화를 '주체적 감정 관리'로 잇는 서비스 'Flowy',  감정 파트너 AI 'Foi'로 K-Design Award Gold 수상

03

세 번째, 재정의

직함 너머, '업'

 

여러 프로젝트를 지나며 그는 자신이 어디로 가고 싶은지 조금씩 빚어나갔다고 한다. 그 방향이 한 문장으로 정리된 건, 한 면접장에서였다. "PM이라는 직무가 없어진다면 무엇을 하겠냐"는 물음 앞에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고 했다. 그리고 답을 정리했다고 한다. 기획이라는 일의 본질은 변하지 않지만, 자신은 거기서 더 나아가 "만드는 사람", 곧 빌더가 되고 싶다는 것이었다.

"직무는 직무 명일 뿐, 저는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은 거예요."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건 시대가 바뀌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했다. AI가 직군 간의 경계를 허물면서, 개발자든 디자이너든 기획자든 결국 빌더로 수렴하고, 다양한 일을 깊고 빠르게 혼자 해내는 사람에게 더 큰 몫이 돌아간다는 것이다. 어떤 스타트업은 이미 1인 스쿼드로 움직인다고도 했다. 그가 보기에 만든다는 건 산출물의 종류가 다를 뿐이었다. 사진에서 익힌 스토리텔링으로는 콘텐츠를 만들고, 지금 하는 일은 서비스를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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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만드는 일의 한가운데 있는 기획이란, 본질적으로 무엇일까. 그에게 묻자, 그도 쉽게 답하지 못하고 잠시 뜸을 들였다. 그러다 꺼낸 답은 이랬다.

"사용자가, 만드는 사람의 설계 의도에 따라 행동하도록 만드는 거. 그게 핵심인 것 같아요."

결국 그가 자신을 거는 자리는 직함이 아니라 그 행위라는 이야기였다. 전공이 바뀌고 진로가 흔들리는 동안에도 그를 지킨 건 한 우물이 아니라 유연함이었다고, 그렇게 정리해도 좋을 것 같았다.

 

凝 ― 오래 본 자리

직함보다 오래 남는 것

도헌님에게 직함은 자신을 설명하는 최종 언어가 아니었다.

사진과 디지털미디어디자인, AI 서비스 기획과 AI 스타트업의 일을 지나오는 동안 그는 계속 다른 이름의 자리로 이동해왔다. 하지만 그 안에서 반복된 것은 하나였다. 무언가를 설계하고, 그 설계대로 사람이 움직이게 만드는 일.

PM이라는 직무가 사라진다면 무엇을 하겠냐는 질문은, 결국 그에게 직함 너머의 자신을 묻는 질문이었다. 그리고 그가 붙잡은 답은 '만드는 사람'이었다.

어쩌면 직함이 흔들리는 시대에 남는 것은 이름이 아니라, 자신이 계속 반복해온 행위일지도 모른다.


04

네 번째, 현재

빌더로 향하는 길

빌더를 꿈꾸는 그가 지금 서 있는 자리는 어디일까. 그는 AI 스타트업 에스크잇모어에서 PO 인턴으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제품은 Onlydecks와 Snapdeck, 그는 획득 스쿼드에서 유저 획득을 맡고 있다. 인턴이지만 워크스페이스조차 없던 스쿼드에 하나씩 체계를 들여놓고, 조직을 정의하는 문서까지 직접 만드는 게 요즘 그의 일이다. 체계화가 자신의 강점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의 일하는 방식엔 이미 AI가 깊숙이 들어와 있다. 눈에 띄는 건, AI가 그의 역할을 넓혔다는 점이다. 예전이면 디자이너나 개발자, 마케터에게 맡겼을 일을 이제 그는 직접 해결한다. UI 디자인은 Figma MCP와 Claude Code로 직접 뽑고, 마케팅에 쓸 이미지는 Higgsfield 같은 이미지 생성 모델로 만든다. 개발자와 협업하는 방식도 달라졌다. 레포를 직접 받아 개발 현황을 파악하니 소통 비용이 줄고, 개발자도 Figma MCP로 시안을 바로 불러와 개발에 들어간다.

"AI가 없었다면 상상도 못할 일이에요"

넓어진 역할을 감당하는 데는, AI 기술에 그의 체계화 역량이 더해진다. 반복되는 일을 아예 '스킬'로 만들어 자동화하는 것이다. 일례로 최근, 그는 한 편에 두 시간씩 걸리던 릴스 제작을 감당할 리소스가 없자, 그 과정을 통째로 하나의 '스킬'로 만들었다. 해외 인터뷰 영상을 넣으면 다운로드, 전사, 번역, 자막 싱크까지 파이프라인이 알아서 처리하고, 사람은 '어떤 이야기를 다룰지'만 고른다. 손이 제일 많이 가던 자막 싱크는 단어 단위 타임스탬프로 자동 계산하고, 마지막 CapCut 편집도 편집 파일(JSON)을 코드로 생성해 대신한다. 그렇게 두 시간짜리 일이 한 편에 10분으로 줄었다.

릴스 제작을 통째로 '스킬'로 만든 자동화 파이프라인
릴스 제작을 통째로 '스킬'로 만든 자동화 파이프라인

여러 스킬 중에서도 가장 그다운 건 회고 스킬이었다. 퇴근할 때 그날의 업무 일지를 던지면 AI가 인터뷰하듯 질문을 건네고, 그 답으로 회고록이 완성되는 방식이라고 했다. 매일의 기록을 아예 자동화한 셈이다. 인터뷰 당시 18일째 쌓아가는 중이라고 했다.

그가 지금 맡은 일과 앞으로 더 해보고 싶은 일 사이에는 아직 거리가 있다고 했다. 지금은 유저 획득을 맡고 있지만, 언젠가는 AI 서비스 기획이나 직접 만드는 일에 더 깊이 관여하고 싶다는 것이다. 올해 목표를 "개발과 친해지기"로 잡은 것도 그 거리를 좁히려는 시도다. 팀원 아홉 명 중 여섯 명이 개발자이고 구성원 모두가 AI IDE로 일하는 지금의 팀은, 그 목표에 더없이 좋은 환경이자 큰 행운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업무 일지를 던지면 AI가 묻고 정리해주는 회고 스킬. 매일의 기록을 자동화하다.
업무 일지를 던지면 AI가 묻고 정리해주는 회고 스킬. 매일의 기록을 자동화하다.

凝 에디터의 시선

도헌님을 보며 가장 오래 남은 질문은 이거였다. 직함이 사라지는 시대에 무엇이 남는가. 그가 살아가는 방식에서 그 답을 엿볼 수 있었다.

그는 "무엇을 왜 하는지 아는 사람"이다. 어떤 일도 그냥 시작하지 않고, 그 일의 목적을 먼저 생각한 뒤 과정을 기록한다. 그에게 기록은 결과가 아니라,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여는 실마리다.

사진에서 디지털미디어 디자인으로, 다시 AI 서비스 기획으로 자신만의 길을 찾는 동안, 그를 나아가게 한 건 한 우물이 아니라 유연함이었다. 막다른 길 앞에서는 문제를 잘게 쪼개고 또 쪼개, 그렇게 찾은 실마리가 가리키는 대로 거침없이 방향을 틀었다. 하나를 고집하는 대신 단서를 따라 움직인 것, 그게 그의 유연함이었다.

시대의 변화가 직함을 지울 수 있지만, 그가 살아오며 해온 행동은 다르다. 그는 늘 유연한 시도를 통해 자신을 빚어왔다. 어떤 수식어가 그를 규정하기보다, 그가 자신만의 길로 스스로를 만들어온 것이다. 그러니 직함이 사라져도 그는 잃을 게 없다. 직함은 그의 정체성이 아니며, 그가 시도하는 행동이 곧 그의 정체성이다.

그렇게 스스로를 빚어가는 그가 궁극적으로 닿고 싶은 곳은, 사람의 감정을 다루는 일이라고 했다. 로보틱스나 모빌리티 분야에서, 사람과 AI 사이의 감정적 인터랙션을 설계하는 일이다. 아직 그곳에 닿진 못했지만, 돌아보면 그의 프로젝트들은 늘 그 방향을 향해 있었다.

그 방향으로, 그는 매일 한 걸음씩 다가가는 사람이다. 그의 슬로건은 "일신우일신", 오늘이 어제보다 나았는지를 묻는 말이다. 산출물이 사진이든 서비스든 달라져도, 무언가를 만든다는 행동만은 변하지 않았다. 아직 스스로를 완성된 빌더라 부르진 않지만, 어쩌면 그 거리를 인정하는 자리에서 빌더는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10년 후, 사람과 AI 사이의 관계를 만드는 도헌님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凝 ABOUT

첫 번째 시리즈 〈AI 시대, 시장은 어떤 사람을 원하는가〉

일터에서 가장 두꺼운 층을 이루면서도, 가장 적게 불리는 자리가 있습니다. 저 또한 그 자리에 서 있고, 그래서 이 기록은 거기 있는 사람들을 응시합니다. 직업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지금, 여러 분야와 연차의 사람들이 변화 속에서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내려놓는지, 자기 일을 어떻게 다시 부르는지 옮겨 적습니다.


글 / 편집 : 최예원

凝, 004호,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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