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Iron Man"이 명대사가 된 이유

언어철학 : 고유 이름의 의미 (1)

2022.02.27 | 조회 1.94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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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dwig

일주일이 궁금한 철학

"I am Iron Man"

마블 좋아하시나요? 저는 2011년에 <어벤져스>를 통해 마블 시리즈를 처음 접했습니다. 친구들의 권유에 못 이겨 극장까지 따라가긴 했지만, 영화가 시작되기 직전까지도 저는 <어벤져스>에 깊은 회의감을 품고 있었습니다. '다 큰 어른이 유치하게 무슨 슈퍼히어로 영화냐'라는 생각을 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영화를 다 보고 나서는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현대적인 감각(과 헐리우드의 자본)으로 연출한 전대물(?)이 <울트라맨>을 보던 시절부터 내재하던 남성성을 일깨워줬다고나 할까요.

그 날 이후로 저는 그때까지 나왔던 MCU 영화를 역주행하며 전부 챙겨봤는데, 그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은 단연 <아이언맨>이었습니다. <아이언맨>은 현재까지도 <캡틴 아메리카 2: 윈터 솔져>와 함께 마블 시리즈 최고의 수작으로 꼽히는 것 같습니다. <아이언맨>이 수작인 이유야 여러 가지를 나열할 수 있겠습니다만, 자신이 아이언맨임을 밝히는 토니 스타크의 마지막 대사("I am Iron Man")가 꽤나 큰 몫을 차지했을 겁니다. 강렬한 인상을 남긴 이 대사는 아이언맨의 시그니쳐 대사가 되었고, 아이언맨이 <엔드게임>을 통해 퇴장하는 그 순간까지도 여러 차례 변주되었죠. (심지어, "I am Iron Man"이라는 제목의 나무위키 항목까지 있습니다.)

이름들의 의미

'토니 스타크'와 '아이언맨'은 이름(name)입니다. 철학자들은 이런 이름들을 '고유 이름(proper name)'이라고 부르곤 합니다만, 여기서는 간단하게 이름이라고만 하겠습니다. 20세기 이후 철학자들은 언어의 의미, 그리고 언어가 세계와 관계를 맺는 방식을 집중적으로 탐구했는데, 철학의 이러한 분과를 언어철학(philosophy of language)이라고 합니다. 언어표현의 여러 유형 중에서도 이름은 여러 측면에서 독특한 언어표현이었기 때문에 많은 언어철학자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이름의 특징을 몇 가지만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우선 이름은 일반적인 단어와는 달리 그 의미를 직관적으로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일반명사, 예컨대 '어머니'와 같은 단어를 생각해 봅시다. '어머니'의 의미는 꽤나 직관적입니다. '하나 이상의 자식을 둔 여성'쯤이 되겠지요. 그런데 이름은 이런 방식으로 정의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전을 찾아도 나오지 않지요. 구독자님의 이름의 의미가 무엇인지 한 번 자문해 보세요. '어머니'를 정의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이름을 정의할 수 있으신가요?

물론 한국인은 대부분 한자로 이름을 짓고, 한자는 표의문자이기 때문에, 한자어를 풀이함으로써 이름의 의미를 제시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 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 설명은 어딘가 어색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이름을 예로 들어 봅시다. '재인'은 '있을 재'자에 '범 인'자를 쓰고, 뜻을 풀이하면 '호랑이 같은 기운을 가진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문재인'이라는 이름을 말할 때 그 이름 '호랑이 같은 기운을 가진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우리는 '문재인'의 한자어를 전혀 모르더라도 '문재인'이라는 이름을 문제없이 사용할 수 있지요(저도 이 글을 쓰기 위하여 찾아보기 전까지는 몰랐습니다). 무엇보다, 표의문자로 지어지지 않은 이름, 예컨대 '루드윅'이나 '토니 스타크'에게는 이런 설명을 적용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름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지칭 이론"

이름은 세계 속에서 단 하나의 대상만을 고유하게 가리킨다는 점에서도 독특합니다. '의자'는 세계 속에 있는 의자 하나하나를 전부 가리키지요. (물론, 영어 정관사 'the'로 '의자'를 속박하는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라지겠지요. 차차 보게 되겠지만, 언어철학자들은 'the'를 둘러싸고 여러 측면에서 풍부한 논의를 전개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의 이름은 다릅니다. 구독자님의 이름은 오로지 구독자님 한 사람만을 가리킵니다.

이름이 단 하나의 대상만을 고유하게 가리킨다는 것, 바로 이 사실로부터 이름의 의미에 관한 철학적 이론을 세울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이론은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름의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접하고 가장 먼저 떠올리는 직관적인 이론이기도 합니다. 바로 이름이 어떤 대상을 가리키기 때문에 의미를 갖게 되고, 이름의 의미는 바로 그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이 이론을 이름에 관한 지칭 이론(referential theory)이라고 합시다. 이 이론에 따르면, '문재인'은 문재인을 가리키기 때문에 의미를 갖게 되며, '문재인'의 의미는 문재인입니다. '구독자'의 의미 또한 그 이름이 가리키는 대상, 바로 구독자님이 되겠지요.

지칭 이론의 이러한 설명은 충분히 직관적이고, 또한 그럴듯합니다. 그런데, 이 이론을 가지고 <아이언맨>의 그 명대사로 돌아가자마자 우리는 문제에 맞닥뜨리게 됩니다. 지칭 이론에 따르면 우리는 <아이언맨>의 명대사가 명대사인 이유를 결코 설명할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지칭 이론과 동일성 퍼즐

이쯤에서 아이언맨을 잠시 뒤로하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도록 합시다. 긴긴 세월 동안 철학자들은 별들이 수놓인 밤하늘에 매료되었고, 그로부터 영감을 얻기도 했습니다. 임마누엘 칸트는 “생각하면 할수록 새로워지고 점점 더 커지는 경외감으로 마음을 채우는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내 위에서 반짝이는 별이 가득한 밤하늘이며, 또 하나는 내 마음 속 도덕률이다"라는 유명한 문구를 비석에 새기기도 했지요.

19세기 독일,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이름의 의미를 생각한 또 다른 철학자가 있었습니다. 이 철학자가 제시한 '동일성 퍼즐(identity puzzle)'은, 밤하늘에 빛나는 금성(Venus)에 붙은 이름이 두 개라는 잘 알려진 사실로부터 출발합니다.

금성에 붙은 이름이 두 개라는 사실을 아셨나요? 저녁에 보이는 금성은 '개밥바라기'라고 하고, 새벽에 보이는 금성은 '샛별'이라고 합니다. 금성은 하늘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별이기 때문에 저녁에도 보이고 새벽에도 관측됩니다. 천문학적 지식이 부족했던 고대인들은 두 별이 실은 같은 별임에도 각기 다른 별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제각각 이름을 붙여주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개밥바라기'와 '샛별'이라는 이름은 사실 가리키는 대상이 같습니다. 바로 금성이지요.

여기서 잠깐, 아주 일반적인 (당연한) 원칙 하나를 짚고 갑시다. 만약 두 단어의 의미가 같다면, 그중 하나의 단어가 포함된 문장에서 그 단어를 의미가 같은 다른 단어로 교체하더라도 문장 전체의 의미나 진리값은 변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지요? 쉽게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1) 결혼식 날, 신부는 하얀색 드레스를 입는다.
(2) 혼인식 날, 신부는 백색 드레스를 입는다.

(1)과 (2)의 의미는 같고, 두 문장은 모두 참입니다. '결혼'과 '혼인', '하얀색'과 '백색'의 의미가 같기 때문에, 문장에서 각각의 단어를 동의어로 대체하더라도 문장 전체의 의미는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원칙을 대체 가능성 원칙(substitutivity principle)이라고 부르기로 합시다.

다시 개밥바라기와 샛별로 돌아옵시다. '개밥바라기'와 '샛별'은 동일한 대상인 금성을 가리킵니다. 때문에, 지칭 이론에 따르면 '개밥바라기'와 '샛별'은 그 의미가 같습니다. 기억하시겠지만, 지칭 이론에 따르면 이름의 의미는 그 대상이고, 두 이름이 각각 가리키는 대상이 같으니 의미도 같다는 결론이 따라 나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앞서 살펴본 대체 가능성 원칙에 따라서, '개밥바라기'나 '샛별'이 포함된 문장에서 각각을 다른 단어로 교체하더라도 문장의 의미는 변함이 없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다음의 두 문장은 의미가 같아야 합니다:

(3) 샛별은 샛별이다.
(4) 샛별은 개밥바라기이다.

문제는, (1)과 (2)의 경우와는 달리 (3)과 (4)는 그 의미가 명백히 다르다는 것입니다. (3)은 아무런 정보를 전달하지 않는 단순한 동어반복입니다. (참고로, 이처럼 아무런 정보도 전달하지 않는 진술을 사소한(trivial) 진술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앞으로 루드윅에서 종종 마주치게 될 표현이네요.) 반면, (4)는 동어반복 이상의 어떤 정보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4)는 "'샛별'이 가리키는 그 별은 '개밥바라기'가 가리키는 그 별과 동일한 하나의 별이다"라는 정보, 즉 천문학적 관찰을 통해서만 알아낼 수 있는 경험적인 정보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차이는 '샛별'과 '개밥바라기'를 다음과 같이 이른바 믿음 문맥(belief context) 하의 문장에 집어넣어 보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5) 고대인은 샛별이 샛별이라고 믿었다.
(6) 고대인은 샛별이 개밥바라기라고 믿었다.

(5)는 명백히 참입니다. 그러나 (6)은 거짓입니다. (애초에 금성이 두 개의 이름을 갖게 된 계기가 (6)이 거짓이기 때문이었죠.)

구독자님이 타임머신을 타고 고대로 가서 그곳 사람들에게 "그거 알아? 샛별은 샛별이야"라고 말해주는 상황을 상상해 봅시다.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구독자님은 아마 아주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을 것입니다. 하지만 구독자님이 "그거 알아? 샛별은 사실 개밥바라기야"라고 말해준다면 어떨까요? 고대인들은 아마 무척 놀라워할 것입니다. 그들은 미처 몰랐던 새로운 사실, 즉 줄곧 서로 다른 별인 줄로만 알았던 샛별과 개밥바라기가 실은 같은 별이라는 사실을 구독자님 덕분에 알게 되었다고 생각하겠지요.

이처럼 (5)와 (6)의 진리값이 다르다면, '샛별'과 '개밥바라기'라는 두 이름은 동일한 대상을 가리킴에도 불구하고 그 의미까지 동일하다고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I am Iron Man"이 명대사가 된 이유?

이제 <아이언맨>의 마지막 장면으로 돌아옵시다. 토니 스타크는 기자회견을 열고 보좌진이 미리 준비한 대본을 읽어내려가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그는 충동적으로 대본을 포기하고 "I am Iron Man"이라는 폭탄 선언을 합니다. 기자들은 그 순간 모두 기립하고, 플래시와 질문 세례가 터집니다. 기자들은 토니 스타크가 실은 아이언맨이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합니다. "I am Iron Man"이 명대사가 된 이유는 이러한 '반전'이 주는 짜릿한 쾌감 덕분이었을 겁니다.

눈치채셨겠지만, 기자들이 느낀 놀라움은 샛별이 개밥바라기임을 알게 된 고대인들이 느꼈을 법한 감정과 정확히 같습니다. 문제는 지칭 이론이 기자들의 이러한 반응을 적절히 설명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토니 스타크'와 '아이언맨'은 모두 이름이고, 두 이름은 동일한 대상을 가리킵니다. 지칭 이론에 따르면 이름의 의미는 그것이 가리키는 대상입니다. 그렇다면, '토니 스타크'와 '아이언맨'의 의미는 같다고 해야 하며, 다음의 두 문장은 그 의미가 정확히 같다고 해야 합니다:

(7) 토니 스타크는 토니 스타크이다.
(8) 토니 스타크는 아이언맨이다.

지칭 이론에 의하면, (8)은 (7)과 아무런 의미상의 차이가 없는 동어반복입니다. "I am Iron Man"은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사소한 사실의 반복일 뿐입니다. 명대사는커녕, TMI에 불과한 것이 되지요. 

그렇다면, 이름들의 의미는?

물론, 지칭 이론의 이러한 결론은 매우 불합리합니다. 이로써 우리는 이름의 의미에 관한 지칭 이론의 설명에 어딘가 심각한 결함이 있다는 점을 알게 됩니다. 이름의 의미가 단순히 그것이 가리키는 대상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름의 의미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앞으로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제시된 몇몇 논변들을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더 읽을거리

동일성 퍼즐은 독일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고틀로프 프레게(Gottlob Frege)가 1892년에 출판한 논문 <뜻과 지시체에 관하여 On Sense and Reference>에서 제시된 것입니다. 프레게는 논리학, 수학철학, 언어철학에서 업적을 남겼고, 현대 분석철학의 기틀을 놓은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프레게의 작업은 마찬가지로 위대한 20세기 철학자인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과 (방향은 약간 다르지만)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이 이어받았습니다. 프레게와 러셀의 언어철학적 입장은 '이름의 의미'를 둘러싼 20세기 언어철학 논쟁에서 하나의 큰 축을 형성하게 되었고, 그 유산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집니다.

프레게를 소개하는 입문서로는, 이미 절판되었지만 앤서니 케니의 『프레게』가 거의 유일합니다. 다만 언어철학 일반에 관한 개설서인 콜린 맥긴의 『언어철학』 제1장에서 프레게의 동일성 퍼즐 및 관련된 논점들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병철 교수님의 『표상의 언어에서 추론의 언어로』 또한 국내 저자의 책으로 참고할 만합니다. 스탠포드 철학백과의 항목들 중에서는 「Names」, 「Reference」, 「Descriptions」 등에서 오늘의 문제를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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