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에어팟 시대의 소셜, 클럽하우스

플랫폼 유물론

2021.01.30 | 조회 2.85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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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일 혀

크리에이터 이코노미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요즘 가장 핫한 프로덕트는 누가 뭐래도 클럽하우스(Clubhouse)입니다.

정식 출시한 프로덕트가 아님에도 이미 1조 원이 넘는 기업 가치를 지닐 것으로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초대 기반의 클로즈드 베타가 진행 중이고 아직 iOS 앱만 나와 있어 안드로이드 이용자는 초대장이 있어도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직원 수가 아직 10명이 채 되지 않는 유니콘이 되는 길목에 서 있습니다.

클럽하우스의 태그라인은 Drop-in Audio Chat입니다. 슬쩍 들르는 오디오 채팅방 정도쯤 될까요. 기본적으로 음성으로 이루어진 소셜 미디어입니다. 텍스트가 아닌 목소리로 대화하는 오픈 채팅방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실시간 오디오로 채워진 트위터와도 가깝습니다. 누군가 오디오 채팅방을 열면 슬쩍 들러 대화를 듣거나 직접 참여할 수 있습니다.

↘ 자세한 기능은 여기에서

처음 프로덕트를 출시한 2020년 5월, 시리즈 A 라운드에서 1억 달러의 가치를 인정 받았고 이번달에는 10억 달러 정도의 밸류에이션으로 시리즈 B가 진행 중이란 소식이 들려 왔습니다. 

당연하게도 나오는 얘기는 코로나 특수라는 건데요. 직접 만나서 얘기하는 휴먼 인터랙션에 대한 욕구를 비대면 기술이 대체한다는 얘기일 겁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과열된 관심과 높은 가치 평가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합니다.

🎧 히어러블 소셜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2020 음악산업백서입니다.

음악을 감상할 때 주로 어떤 기기를 사용하는지 물었습니다. 2019년부터 추가된 문항인데, 지난해(2020년) 무선 이어폰/헤드폰 기기 이용이 유선 이어폰/헤드폰 기기 이용을 빠르게 따라잡아 역전했습니다.

Statista 최근 발표한 TWH의 전세계 판매량 전망입니다. 에어팟, 갤럭시 버즈처럼 넥 밴드 없이 좌우 스피커가 완전히 분리된 웨어러블 기기만을 TWH 또는 TWS라고 말합니다. 이 전망에 따르면 이미 매년 수억 대의 히어러블 기기가 이미 추가로 보급되고 있는 셈입니다.

히어러블은 귀에 꽂는 게 아니라 귀에 착용하는 기기(웨어러블)여야 합니다. 하루종일 입고 있어도 편한 옷처럼 장시간 귀에 착용했을 때 불편함을 최소화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장시간 착용할 이유, 즉 '웨어러블'일 필요가 있어야겠죠. 와이어나 넥 밴드가 사라지고 뛰어난 음성 인식(마이크로폰), 노이즈 캔슬링부터 생체 신호 측정 등 다양한 스마트 기능이 추가되는 이유입니다.

히어러블은 어떤 신체적 동작을 최소화하면서 생활에 불편함 없이 들으면서 말할 수 있는 하드웨어입니다. 무언가를 듣기 위해 존재했던 음향 기기의 단계를 넘었습니다. 클럽하우스와 같은 "들으면서 말하는" 소셜 플랫폼에 참여할 여건을 갖춘 잠재 고객이 히어러블의 보급으로 급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회사에 가면서, 공원을 조깅하면서, 반려견을 산책하면서, 시장에서 장을 보면서, 운전하면서 히어러블만 귀에 꽂으면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생활과 단절되지 않으면서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됩니다.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를 보거나 뉴스를 읽거나 채팅을 하는 것들은 다른 행위와 동시에 하는 것이 어렵지만 오디오 채팅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런 특징 덕분에 오히려 사회적 거리두기가 끝나고 외부 활동이 늘어날수록 클럽하우스의 오디오 채팅은 더욱 매력적인 소셜 인터랙션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정리하자면 클럽하우스는 에어팟으로 대표되는 히어러블에 맞게 설계된 소프트웨어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그리고 무엇이든 동시다발적으로 말하면서 들을 수 있는 기술적 환경이 생겨나자 그 욕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해 클럽하우스 같은 오디오 기반의 소셜 미디어가 생겨난 셈입니다. 스마트폰의 보급이 유튜브를 폭발적으로 성장시킨 것과 마찬가지죠.

🙉 클럽하우스 플렉싱

2018년 말 갑자기 에어팟의 비싼 가격을 두고 에어팟 리치(AirPods Rich)나 에어팟 플렉싱(AirPods Flexing)에 관한 밈들이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남들보다 우월함을 보여주기 위해 노래를 듣지도 않으면서 에어팟을 끼고 다닌다"는 식이었죠.

연말 시즌에 맞춰 에어팟을 부의 상징으로 만들어버린 밈들 덕분에 세계 곳곳에서는 에어팟이 품절되는 사태가 벌어집니다.

클럽하우스의 지금도 비슷합니다.

요즘 해외 커뮤니티나 포럼을 돌아다니다보면 어딜가나 두 부류의 사람들을 마주치게 됩니다. 클럽하우스 계정을 자랑하는 사람과 클럽하우스 초대장을 구걸하는 사람입니다. 계정을 가진 사람만이 매우 한정된 초대장을 나눠줄 수 있다보니 줄줄이 줄을 서고 보는 겁니다.

심지어 초대장을 판매하는 사이트까지 생겼습니다. 일종의 클럽하우스 초대장으로 플렉스를 하는 기이한 현상인데요. 금단의 앱을 하루 빨리 써보고 싶은 마음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유명인, 인플루언서, 얼리어답터들과 초기에 네트워킹하고 나아가 차세대 소셜 미디어에서 인플루언서의 지위를 선점하려는 경쟁적인 상황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쩌면 지금의 FOMO 심리가 가라앉고 나면 클럽하우스의 가치가 과대평가된 것인지 확인할 수 있을 듯 해요. 부의 상징에서 대중적인 히어러블이 된 에어팟처럼 대중적인 소셜 미디어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아니면 집콕으로 심심한 사람들이 잠깐 한눈을 판 것에 불과할지 말입니다.

🔪 하지만 안전한가요?

이제 시작이지만 풀어나가야 할 숙제가 많습니다. 콘텐츠 안전성(safety) 문제입니다.

클럽하우스 약관상 성인만 이용할 수 있습니다. 아마 미성년을 거름으로서 위험 콘텐츠 유포의 리스크를 줄이는 동시에, 반대로는 어느 정도 문제적일 수 있는 콘텐츠도 표현과 토론의 영역으로 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기 위함일 것입니다.

또 약관상 실명을 사용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자정 능력을 높이는 동시에 익명 채팅이나 데이팅 목적의 앱 사용을 우회 차단하는 셈입니다. 실제로 앱 아이콘부터 클럽하우스 이용자들의 실제 프로필을 섭외해 사용하고 있는데요. 아이콘을 만들 여력이 없다기보다는 실명 기반 소셜임을 강하게 드러내는 요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앱 아이콘과 17+ 연령 제한이 보이시나요?
앱 아이콘과 17+ 연령 제한이 보이시나요?

또 기본적으로 오디오 챗은 녹음이나 재생이 불가한 휘발성 게시물이지만, 방이 열려 있는 동안은 모든 오디오가 시스템상 임시 녹음됩니다. 녹음본은 방이 닫히는 순간 파기됩니다. 방이 열려 있는 동안 신고가 들어오면 관리자가 이 녹음본을 확인하고 규제할 때까지 녹음본을 보관합니다. 저는 이런 임시 녹음 정책이 실제 콘텐츠 사후 규제 효과보다는 심리적인 자기 규제 효과가 더 클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클럽하우스가 오픈 베타를 시작하는 순간 이런 안전성 장치들도 모두 무용지물이 될지 모릅니다. 영어뿐만 아니라 전세계 모든 언어로 수많은 사람들이 떠들기 시작한다면 초기 단계의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가 이를 모두 제어하기란 쉽지 않겠죠. 어쩌면 초대장 체제를 없애고 대중에게 프로덕트를 완전히 공개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일이 걸릴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지금의 초대장 체제는 신뢰와 안전 이슈를 최소화하면서 플랫폼의 방향성을 제어하는 데는 어느 정도 성과는 있나봅니다. (물론 위험성에 대한 지적이 줄을 잇지만) 나름대로 지적 관심사 기반의 대화를 나누기가 어렵지 않다고 하니까요.

사실 클럽하우스의 어뷰징 문제는 이미 많은 글들이 다루고 있기 때문에 이 정도로 마무리하죠. 아마 제가 뉴스레터를 계속 이어간다면 오디오 콘텐츠 또는 동시성・휘발성 콘텐츠의 안전성을 따로 얘기할 일이 있을 것 같아요🙏

갑자기 길어진 뉴스레터를 요약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첫째. 클럽하우스는 에어팟과 같은 히어러블의 폭발적인 성장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둘째. 에어팟의 높은 가격이 역설적으로 이용자들을 불러모으는 특전(perk)처럼 작용했듯이 클럽하우스의 초대장 체제가 잠재 고객을 끌어모으고 있습니다. 셋째. 안전성을 위한 기술적・정책적 조치가 완전히 갖추어질 때까지는 초대장이라는 울타리를 내리기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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