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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라 드래곤볼

<꿈의 기억>에 대하여, 금요지기 수염왕이 쓰다

2024.04.12 | 조회 2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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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덥수룩한 머리, 피둥피둥 살찐 체구, 땀이 절어 소금 띠가 생긴 검정 티셔츠를 입은 소년이 한 손에 만화책을 들고 물었다.

 “이 만화, 진짜 아저씨가 그렸어요?”

 커다란 안경을 쓴 아저씨는 해맑게 웃어 보이고는 소년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소년은 아저씨의 끄덕임에 신이 났는지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폴짝폴짝 뛰어댔다. 그러다 다시 아저씨를 보며 떠들었다.

 “제가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본 만화가 아저씨 만화예요! 5살 때 누나들 따라서 문방구에 갔었거든요? 내가 만화책 갖고 싶다고 하니깐 누나가 사줬어요. 그때는 글씨도 몰랐었거든요? 그런데 그림만 봐도 너무 재미있고 좋았던 거 있죠!”

 소년의 호들갑에 아저씨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옆에 있던 벤치에 앉았다.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려다 소년을 살짝 보고는 다시 주머니로 돌려놓았다. 소년은 눈치 없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아저씨 만화 비디오로도 봤어요! 그땐 비디오 빌리는 게 비싸서 다 보지는 못했는데, 그래도 한번 빌리면 막 열 번씩 보고 그랬다니깐요? 만화주제가도 다 외웠다고요! 찾아라 드래곤볼! 세상에서 제일 신비로운 비밀!”

 소년은 만화주제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아저씨는 소년의 천진무구함이 보기 좋은지, 미소를 띠며 묵묵히 소년을 쭉 바라봤다. 아저씨가 소년에게 벤치의 옆자리를 가리키며 손짓하자 소년은 노래를 멈추고 의자에 앉았다.

 “저는 꿈이 만화가예요. 원래 가수가 되고 싶었는데, 제가 맨날 만화만 그리니까 친구들도, 선생님도, 우리 누나들이랑 엄마도 제가 만화가가 꿈인 줄 알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만화가가 되기로 마음먹었어요. 그런데 아저씨 어디 아파요?”

 얼굴을 찡그리며 이마에 손을 짚고 있는 아저씨를 향해 소년이 걱정 어린 말투로 물었다. 아저씨는 소년을 의식해, 애써 이마를 짚었던 손을 내리고 다시 소년에게 미소를 지어줬다. 이 모습을 본 소년은 안심하며 다시 말을 이었다.

 “내가 아저씨 만화가 왜 좋냐면요, 일단 아저씨 만화는 너무 재미있어요! 닥터슬럼프에서 찻집 건물이 커피포트 모양인 거랑 담뱃가게 건물이 담배 모양인 것도 너무 웃기고 똥을 나뭇가지에 꼽고 뛰어다니는 것도 너무 웃겼어요. 또 손오공이 에네르기파 쏘는 거 보고 저랑 친구들이 얼마나 따라했는데요! 그리고 맞다, 순간이동! 아침마다 나도 순간이동 해서 학교로 바로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맨날 생각한다니까요? 그리고 또….”

 칭찬 일색으로 떠드는 소년이 기특했는지, 아저씨는 팔을 뻗어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소년은 아저씨의 손길이 닿자 잠시 머뭇머뭇하더니 고개를 떨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 사실, 여태까지 아저씨 만화를 대여점에서 빌려보기만 하고 사서 본 적은 한 번도 없어요. 그리고 처음 봤다고 한 만화책이랑 헌책방에서 샀던 만화책들은 다 가짜 해적판이었더라고요. 해적판은 나쁜 사람들이 아저씨 만화를 몰래 복사해서 만든 거라고 하던데. 저, 그런 건지 진짜 몰랐어요. 미안해요.”

 아저씨는 고개를 숙이고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여전히 깊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제가 나중에 커서 돈 벌면 그땐, 꼭 아저씨 만화 다 사서 볼게요. 그리고 평생 가보로 간직할게요!”

 소년의 두 볼에 눈물방울이 흘러 내리자, 아저씨는 손으로 소년의 눈물 방울을 닦아 주고, 웃으며 소년의 볼을 어루만졌다.

-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꿈이었다는 걸 알게 된 소년은, 어느새 자신이 어른이 된 것을 아쉬워했다. 소년은 꿈에서 나온 아저씨가 누구인지 안다. 어린 시절 가장 좋아했던 만화가 토리아먀 아키라 선생님. 소년은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토리야마 선생님의 만화를 통해 많은 영향과 위로을 받으며 살아왔다. 비록 어릴 적 꿈인 만화가가 되지는 못했지만, 만화를 보고 그리던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은 사진을 찍는다. 사진은 빛으로 그리는 그림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어릴 적 꿈과 크게 벗어나진 않은 거겠지. 꿈에서 소년이 말한 약속대로 그의 방 한쪽 책장에 토리야마 선생님의 만화책들이 잔뜩 줄지어 있다. 소년은 지금도 삶이 지루하거나 지칠 때, 토리야마 선생님의 만화를 읽으며 위안을 얻으며 지낸다. 그러다 지난 4월 1일. 만우절 거짓말처럼 토리야마 선생님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소년은 이제 불혹의 나이가 되어 버렸음에도 꿈에서 나온 어린 시절 모습처럼 두 볼에 눈물방울이 흘러 내렸다. 소년은 또 한 번 아저씨를 만나고 싶은 마음에 다시 눈을 감고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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