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고란. 탐정이다. 내가 왜 탐정이 됐는지는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 모른다고? 그럼 한 번 더 설명해줄게, 잘 들어. 나는 어릴 때 별명이 고라니였다. 개인적으로 이름 가지고 별명을 만들어 부르는 거 굉장히 유치하다고 생각해. 그 망할 별명 탓에, 친구들은 나만 보면 '꽥- 꽥-' 고라니 소리를 냈어. 어찌나 짜증나던지. 그러다 「명탐정 코난」이라는 만화가 나왔고, 난 그 만화 덕분에 고라니에서 벗어나 명탐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내가 탐정이 되고 싶었던 건 그때부터였지. 나는 피나는 노력 끝에 탐정이 되었고, 드디어 오늘 첫 의뢰를 받게 된 거야.
고란 퍼스트미션: 이 사람의 정체를 밝혀주세요.
나는 탐정이 되면 살인, 강도, 절도 같은 강력범죄의 진상을 파헤쳐내고 싶었다. 그런데 첫 의뢰가 고작 사람의 정체를 밝혀달라는 거라니. 하지만 초등학생과 맞짱을 떠도 절대 봐주지 않는 나니까. 이런 별거 아닌 의뢰에도 프로 탐정답게 최선을 다할 거다.
의뢰인은 그가 나이에 비해 너무 어른스럽고 성숙해 보여 위압감을 느꼈다고 한다. 아마도 자신이 봐 왔던 사람들과는 다른 모습에 혼란스러웠겠지. 그래서 내게 그의 정체를 밝혀 달라고 의뢰한 걸 거야. 이번 미션의 핵심은 그가 왜 어른스러워 보이게 되었는지에 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있지. 그가 적은 아니지만 나의 첫 의뢰를 성공적으로 해내기 위해 그를 알아봐야 한다. 나는 즉시, 의뢰인에게 그와 만남을 주선해 달라고 전했다.
“저기, 고란 탐정님 맞으시죠?”
어디선가 나타난 그가 내 어깨를 툭 치며 말을 걸었다. 아뿔싸, 내가 상대에게 등을 보이고 말다니. 이건 프로 탐정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인데, 나쁜 의도는 없는 것 같지만 심히 불쾌하다. 하지만 표정관리 또한 프로 탐정이 갖춰야 할 기본 자세.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인사했다. 그의 비주얼은 확실히 나이들어 보였다. 99년생이라고 하는데 비주얼은 거의 80년대생과 맞먹는 수준이다. 상대방에 대해 자세히 알려면 친밀감을 쌓는 게 중요하지. 친밀감을 쌓는 데는 또, 같이 밥 먹는 것만큼 좋은 게 없다. 그래서 나는 가까운 돈까스집에 가서 밥부터 먹자고 말했다.
“오! 돈까스 좋죠! 돈까스 싫어하는 남자가 있나요?”
걸려들었군. 의뢰인은 그가 나이에 비해 심하게 어른스러워 보여 정체가 궁금하다고 했었지. 만약 정말로 어른이었다면 돈까스가 아닌 국밥을 먹자고 했을 거다. 그는 그저 돈까스 좋아하는 99년생 어린애일 뿐이야. 시작이 좋군. 다음 작전으로 이어가자.
“사주시는 건가요? 오호 감사해요”
감사하긴 뭘 감사해. 첫 만남에서는 무조건 더치페이인 거 모르나? 말투며 차림새며 나이든 어른인 척 다 해놓고 이럴 때는 꼭 제 나이처럼 말하는군. 뭐 좋다. 돈까스값은 의뢰인한테 청구하면 되니까. 나는 그의 정체를 밝히기 위한 첫번째 질문으로 군대 이야기를 꺼냈다. 대한민국 남자가 성숙함을 쌓는 데 가장 중요한 경험이 바로 군대지. 그가 만약 군대를 나오지 않았다면 어른스러움과 성숙함이 다 컨셉이고 위장이었다고 추리할 수 있다.
“저는 2기갑여단을 나왔습니다. 거기에서 장갑차 조종수였어요.”
군대를 나왔을 줄이야. 이러면 나한테 불리한데. 군대를 나왔다는 말이 거짓일 수 있으니 군대 관련해 이것저것 질문을 해봤다. 하지만 그는 막힘없이 대답했고, 결국 그를 군필자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몇 분의 기다림 끝에 드디어 돈까스가 나왔다. 그는 돈까스가 나오자, 포크와 나이프로 돈까스를 썰며 말했다.
“종종 돈까스를 다 썰어 놓고 먹는 사람이 있는데 그러면 안 돼요. 남들이 뺏어 먹거든요.”
공감되는 말이기는 하지만 얄미운 말을 이렇게 대놓고 할 수 있다니. 그는 냉면도 안 잘라 먹는다고 한다. 음식을 자르는 건 절대 못 참는다고. 그리고 이어서 말했다.
“제가 점심에 라면을 두 봉지 끓여 먹고 왔거든요. 놀라지 마십시오. 짜파게티와 팔도 비빔면을 함께 먹었습니다. 서로 다른 맛을 느끼고 싶어서.”
다행히 두 라면을 섞어 먹지는 않았다고 한다. 짜파게티랑 팔도 비빔면을 섞어 먹으면 변태지. 그나저나 음식에 진심인 모습을 보니 그에 대한 내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 역시도 음식에는 진심이니까. 프로 탐정으로서, 사건을 대할 때는 항상 평정심을 유지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나이에 비해 어른스러워 보이는데, 언제부터 그런 컨셉을 갖게 되었는지에 대해.
“한 중학교 2, 3학년 때부터 어른스럽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전에는 좀 낯을 가렸는데, 중학교 때 처음으로 여러 인간관계를 쌓으면서 남들에게 어른스러워 보이고 싶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초등학교 시절까지는 사고뭉치였습니다. 좀 나대는 친구였어요.”
그는 잘라 놓은 돈가스를 포크로 찍어 입에 넣고는 쩝쩝 씹어 넘기며 말을 이었다.
“그러다 6학년 때 이사를 가는 바람에 중학교 때는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게 됐는데, 중학교 친구들이 저를 싫어했어요. 은근히 따돌리는 느낌? 제가 덩치가 있다 보니까 괴롭힘당하지는 않았다만, 그때 조금 힘든 시기를 겪었죠. 그때를 계기로 변했어요.”
힘든 시기였다던 그의 어릴 적 이야기에 조금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잠깐만, 그렇다면 그는 자신의 의지가 아닌 환경에 의해서 어른스럽고 성숙한 사람으로 점차 진화한 건가. 아직 단정 짓기는 이르다. 나는 그에게 다른 계기는 없었는지 물었다. 그러자 그는 무언가 떠올랐는지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중학교 때 알던 고3 누나가 그랬어요. 너는 어른스러운 게 장점이라고. 그 말이 싫지 않더라고요. 맞아요. 맞아요. 그 누나 예뻤어요. 그러다 문득, 내가 나이를 먹고 진짜 어른 나이가 된다면 내 장점이 없어지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 장점이 없어지는 게 싫어서 쭉 지금까지 어른스러워 보이려고 애쓰며 산 것 같습니다. 지금 이렇게 어른스럽다고 얘기하시니까 제 장점이 없어지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나는 생각했다. 그는 어른스러워지고 싶었던 것보다 어른스럽다고 불리길 더 바랐던 건 아닐까? 근본적으로 자신이 어른이 되길 바랐다면 어린 사람을 만나서 어른답게 행동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그는 자기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그들에게 어른스럽다고 평가되는 걸 즐기고 있다. 그리고 그런 평가가 자신만의 매력 포인트로 작용할 수 있도록 애를 쓰고 있는 것이다. 나의 추리를 듣던 그는 갑자기 무릎을 탁 치며 소리쳤다.
“아! 그래서 내가 연상을 좋아하나보다! 여자친구도 연상이거든요. 제가 그런 페티시가 있었네요. 저도 몰랐던 비밀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대답을 끝으로 그와 만남을 마무리했다. 의뢰인이 걱정했던 것과 다르게 그의 어른스러움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누구에게나 있는 인정욕구랄까. 아마도 그는 자신이 존중하는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큰 사람인 것 같다. 그는 이걸 페티시라고 표현했지만, 이마저도 자신을 낮추는 겸손함에서 나온 것 같아 그의 어른스러움과 성숙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사무실로 돌아와 의뢰인에게 전달할 추리 리포트를 작성했다. 자, 내 추리가 어떤가. 이 정도라면 프로 탐정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겠지? 의뢰하고 싶은 사건이 있다면 언제든지 연락해주기 바란다. 단, 의뢰비는 선불, 활동비는 별도라는 걸 명심해. 이번에 만든 추리 리포트도 의뢰인이 돈까스값 입금해 주면 전달할 계획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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