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일을 미루는 '핑계'

지연 행동을 만드는 비합리적 사고 방식

2024.06.11 | 조회 9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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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과학

심리학, 뇌과학, 인지과학의 실용적 정보를 소개합니다

돈을 맡기면 1년마다 2배로 만들어주는 은행이 있다고 생각해봅시다. 올해 100만원을 입금하면, 1년 후에는 200만원, 2년 후에는 400만원, 3년 후에는 800만원으로 2배씩 늘어날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무언가를 하면 100만원이 바로 입금되는 일이 있고, 1년 뒤에 199만원을 들어오는 일이 있다면 굳이 뒤의 것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 100만원을 받아서 은행에 넣어두기만 하면 1년 뒤에 200만원이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1년 뒤의 180만원은 현재의 100만원보다 가치가 낮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미래의 보상은 표면적으로는 현재의 보상보다 크기가 크더라도 시점 간의 차이 때문에 가치가 더 낮게 됩니다. 그래서 미래 가치를 현재 가치로 환산할 때는 할인(discount)을 하게 됩니다. 돈을 매년 2배로 만들어주는 은행이 있다면, 1년 뒤의 돈 가치는 현재의 반 밖에 안되는 셈이죠(1년 뒤 200만원 = 현재 100만원)

돈이 매년 2배씩 늘어난다면 할인도 매년 반씩 해주면 됩니다. 따라서 할인은 1, 1/2, 1/4, 1/8, ...과 같이 하게 됩니다. 이것을 지수형 할인이라고 합니다.

지수형 할인의 한 가지 특징은 시점에 따라 가치의 상대적 크기가 바뀌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현재의 100만원은 1년 뒤의 180만원(=현재의 90만원)보다 가치가 크고, 1년 뒤의 100만원(=현재의 50만원)은 2년 뒤의 180만원(=현재의 45만원)보다 가치가 큽니다. 

시점에 따라 상대적 가치가 달라지는 쌍곡형 할인

그런데 사람들의 심리적 할인은 이러한 지수형 할인과 달리 1, 1/2, 1/3, 1/4, ...로 나간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이것을 쌍곡형 할인이라고 합니다.

쌍곡형 할인은 지수형 할인과 달리 시점에 따라 가치의 상대적 크기가 달라집니다. 현재의 100만원은 1년 뒤의 180만원(=현재의 90만원)보다 가치가 크지만, 1년 뒤의 100만원(=현재의 50만원)은 2년 뒤의 180만원(=현재의 60만원)보다 가치가 작습니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쌍곡형 할인은 가까운 시점에는 할인을 많이 하고, 먼 시점에는 할인을 적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사람들이 할 일을 미루는 이유일 수 있습니다. 유튜브를 보면 지금 즐겁고,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면 나중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두 가지 모두를 먼 시점에서 보면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는 것이 더 가치가 커보입니다. 그런데 당장의 유튜브와 먼 미래의 자격증은 좀 다르게 됩니다. 유튜브의 가치는 아직 할인이 많이 되지 않은 반면, 자격증은 이미 할인이 많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내 탓이 아니야"

이렇게 시점에 따라 상대적 가치가 달라지는 것은 지연 행동, 즉 미루기에 좀 더 복잡한 방식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실패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싶어 합니다. 이것은 두 가지 방향의 시도로 나타납니다. 하나는 잘 준비하고 노력해서 성공할 확률을 높이는 것입니다. 누구나 알지만 쉽지 않은 방법입니다.

두 번째는 실패의 명분을 쌓는 것입니다. 실패를 하더라도 그것이 내 탓이 아니면, 괜찮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많은 사람들은 실패를 한 후가 아니라, 실패를 하기도 전부터 구실을 만듭니다. 이것을 자기 구실 만들기(self-handicapping)라고 합니다.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 숙제가 있다고 해봅시다. 만약 내가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숙제를 했는데도 낮은 점수를 받는다면,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자신의 무능력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숙제를 미뤄버립니다. 그러면 점수가 낮아도 단지 게을렀을 뿐이라는 명분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완벽주의와 지연 행동이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여기에도 자기 구실 만들기가 개입합니다. 어떤 사람은 완벽주의가 있기 때문에 빨리 시작해서 시간을 많이 투자합니다. 하지만 미루는 성향의 사람들이 완벽주의가 있으면 다르게 행동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노력을 해봤자 완벽하게 못할 것 같으면 그냥 미뤄버립니다. 못할 구실을 만드는 것이죠.

이러한 자기 구실 만들기는 당장의 자기 기분은 지킬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비합리적인 선택입니다. 나아지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평가가 중요할 수록 더 미룬다

심리학자 조셉 페라리(Joseph Ferrari)와 다이앤 티스(Dianne Tice)는 88명의 대학생을 모집해서 실험실로 불러왔습니다(출처). 이들은 먼저 여러 가지 심리검사를 받았습니다. 이 검사들 중에는 평소에 미루는 습관을 묻는 내용도 포함이 되어 있었습니다.

다음으로는 학생들을 무작위로 두 집단으로 나누었습니다. '평가 집단'의 학생들에게는 앞으로 앞으로의 인생에서 성공을 예측하는 매우 중요한 지적 능력을 측정할 수학 문제를 풀 것이라고 설명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재미 집단'의 학생들에게는 그냥 재미를 위해 만들어진 문제를 풀 것이라고 설명해주었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15분의 준비 시간을 주면서, 그 동안 연습을 충분히 하면 점수도 높일 수 있고, 그 측정 결과가 더 정확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15분 내내 연습하기 싫으면 놀면서 기다릴 수 있도록 컴퓨터 게임을 준비해두었습니다. 사실은 이것이 이 실험의 진정한 목적이었습니다.

'평가 집단'에서는 평소에 미루는 습관이 강한 학생들일 수록 게임을 하고 놀면서 연습 시작을 미루었습니다. 연습을 시작하고도 금방 연습을 그만두었습니다. '재미 집단'에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학생들이 연습을 시작하는 시간이나 연습량은 평소의 미루는 습관 사이에 아무 관계가 없었습니다.

이 실험은 지연 행동이 자기 구실 만들기에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평가가 중요하면 미루지 않고 빨리 준비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지만, 미루는 습관이 강한 학생들은 자기 구실을 만들 동기가 더 커지기 때문에 비합리적으로 연습을 더 미룹니다.

"지금은 할 기분이 아니야"

사람들이 해야할 일을 미룰 때 많이 하는 말 중에 하나는 "지금 할 기분이 아니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증적으로 보면 기분이 지연 행동에 영향을 준다는 근거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기분이 나빠서 미루지만, 또 어떤 사람들은 나쁜 기분을 잊기 위해 일에 집중합니다. 기분과 지연 행동 사이에는 일관된 패턴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기분이 안 나서 일을 시작 못하겠다는 분들은 왜 그렇게 행동하는 것일까요? 일반적 통념은 기분이 나쁘면, 이성이 흐려져 자기 통제 능력이 떨어지고, 그래서 지연 행동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정반대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미루기는 자기 통제의 실패가 아닌 의도적 선택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 목표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일을 잘하거나 성과를 내는 것도 한 가지 목표이지만, 고통을 줄이고 기분을 좋게 만드는 것도 또다른 목표입니다. 전자를 성과 목표, 후자를 쾌락 목표라고 해보겠습니다. 기분이 나쁠 때는 쾌락 목표의 우선 순위가 높아질 수가 있습니다. 즉, 기분이 나빠서 일을 못하겠다는 사람들은 기분이 나쁜 것을 먼저 해결하기 위해 일을 미룬다는 것입니다.

당장의 기분을 우선시하는 것의 악순환

당장의 기분을 좋게 하는 것을 우선하는 경향은 할 일을 미뤄서 나쁜 결과를 얻었을 때도 반복됩니다. 우리는 나쁜 결과에 대해 두 가지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요, 한 가지는 후회와 반성을 하고 다음에 더 잘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다음에는 미루지 않게 되겠지만, 일시적으로 기분이 나쁩니다. 미루는 습관을 가진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미루는 사람들은 이것보다 더 나빠질 수도 있었는데 이만한 결과라도 얻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면 당장은 기분이 좋겠지만, 다음에도 같은 잘못을 반복하겠죠. (출처)

즉, 미루는 사람들은 당장의 기분이 좋은 것을 우선합니다. 이것은 할 일을 미루게도 하지만, 그 미룬 결과로부터 배우는 것도 방해합니다. 악순환인 것이죠.

미룬다고 기분이 좋아지지도 않는다

게다가 미룬다고 기분이 좋아지지도 않습니다. 미루는 습관을 가진 사람들은 스트레스도 더 많이 받고, 자존감도 낮습니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지연 행동이 강한 학생들은 학기 초에는 스트레스를 덜 받지만 학기 말에 가면 더 스트레스를 받아서 전체적으로도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출처)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일을 미루는 사람들은 퇴근 후에도 업무로 스트레스를 받는 경향이 있습니다. (출처)

할 일을 미루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미루지 않고 빨리 빨리 일을 해치우는 전략들은 다음 뉴스레터에서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의지력 키우기 워크숍

이번 주에는 의지력 키우기 워크숍을 합니다. 유혹을 참고 목표를 추구할 수 있는 힘을 의지력, 자제력, 인내심, 참을성 등으로 부릅니다. 이러한 의지력은 훈련을 통해 키울 수 있을까요? 있다면 그 효과는 얼마나 될까요? 그리고 효과가 검증된 방법들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 일시: 2024년 6월 13일(목) 저녁 7시 30분-9시
  • 방법: 디스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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