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이 더 악화될 것을 알면서도 미루는 이유

지연 행동의 심리적 원인

2024.06.03 | 조회 4.64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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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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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기는 심리학 용어로 지연 행동, 영어로 프로크래스터네이션(procrastination)이라고 합니다. 어원을 따져보면 프로(pro-)는 어디론가 보낸다는 뜻이고, 크래스(cras)는 "내일"이라는 뜻입니다. 즉, "내일 하지 뭐"하고 미뤄버린다는 말입니다.심리학 용어로서 지연 행동은 단순히 미루는 것을 넘어 "상황이 더 악화될 것을 알면서도 일을 시작하지 못하거나 아니면 마무리를 못하는 것"을 말합니다. 즉, 시간을 두고 천천히 생각할 필요가 있어서 미루거나, 또는 언제 해도 상관없어서 미루는 것은 여기에 속하지 않습니다. 당장 할 필요가 없는 것을 당장 하지 않는 것은 지연행동이 아니라 시간관리라고 할 수 있겠죠.

지연 행동은 대단히 흔한 문제입니다. 조사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성인의 15-20%는 미루는 습관 때문에 문제를 경험한다고 보고합니다. 심지어 대학생들의 경우에는 80-95%가 미루는 습관이 있다고 합니다. 대학생들의 일상 활동 중에 3분의 1이 미루기라는 조사도 있습니다. (출처)

이런 지연 행동의 문제는 단지 일의 시작이나 마무리가 늦어지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지연 행동은 건강, 학업, 업무 성과, 안전 사고 등 광범위한 영역에서 악영향을 가져옵니다.

나는 얼마나 미루는 사람일까

지연 행동의 정도를 측정하는 GPS-9이라는 검사 도구가 있습니다. 아래는 제가 그 내용을 임의로 번안한 것이라 정확하지는 않을 수 있지만 어느 정도 참고는 하실 수 있을 겁니다. 각각의 질문에 대해 전혀 그렇지 않다(1점)에서 매우 그렇다(5점)으로 채점하시면 됩니다.

(R)이라고 쓴 것은 반대로 전혀 그렇지 않다(5점)에서 매우 그렇다(1점)으로 채점하시면 됩니다.

질문이 9개니까 45점 만점입니다.

  • 나는 마감이 있는 일을 하기 전에, 다른 것을 하면서 시간을 낭비할 때가 많다
  • 나는 항상 "내일 하지 뭐"라고 말한다
  • 나는 마감보다 일을 일찍 마치는 편이다(R)
  • 나는 해야 할 일을 시작하기 전에 보통 미루는 편이다
  • 나는 오늘 하겠다고 마음 먹은 일은 다 하는 편이다(R)
  • 나는 할 일을 다 하고 놀거나 쉰다(R)
  • 나는 특별한 노력이나 조건이 필요하지 않은 일도, 며칠 동안 못할 때가 많다
  • 나는 며칠 전에 하려고 했던 일을, 오늘 하고 있을 때가 많다
  • 나는 꼭 필요한 물건도 마지막 순간에 살 때가 많다

정확한 기준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해외의 연구를 참고할 때 27~28점 정도가 평균이고 34~35점이면 상위 10% 수준입니다.

지연 행동을 만드는 일의 성격

지연 행동은 여러 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현상입니다. 여기에는 일의 성격, 개인차, 믿음과 사고 방식, 인간의 심리적 편향 등 다양한 요인이 개입합니다. 이 중에서 먼저 일의 성격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보상이나 처벌이 멀리 떨어져 있을 때 미루게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보상이 바로 주어지지 않는 일, 당장 문제가 생기지 않는 일이라면 지연 행동이 발생할 가능성이 큽니다.

다음으로, 하기 싫은 일은 미루게 됩니다. 일이 하기 싫은 이유에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이것에 따라 미루기의 종류도 달라집니다. 어떤 종류의 일은 결정을 미루고, 어떤 종류의 일은 행동을 미루게 됩니다.

어떤 종류의 일은 머리를 써서 의사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예를 들면, 계획을 짜거나 메일의 제목을 정하는 일이 이런 일입니다. 이렇게 결정이 필요한 일에 다음과 같은 특성이 있으면 일을 미루게 됩니다.

  • 자율성이 낮다
  • 의미가 없다
  • 잘했는지 못했는지 피드백이 없다

다른 종류의 일은 행동을 필요로 합니다. 행동이 필요한 일에 다음과 같은 특성이 있으면 일을 미루게 됩니다.

  • 너무 어려워서 좌절스럽다
  • 이 일을 하게 된 것이 원망스럽다
  • 일 자체가 지루하다

일의 성격을 바꾸는 잡 크래프팅

따라서 내가 미루는 일에 이런 성격이 있다면, 일의 성격을 바꿔야 합니다. 똑같은 일이라도, 하는 사람에 따라 일의 성격을 바꿔서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잡 크래프팅(job crafting)이라고 합니다. 자기 일을 다듬고 꾸며서 하기 좋게 만드는 것입니다.

잡 크래프팅을 위해서는 두 가지 질문이 필요합니다. 첫 번째 질문은 "어떤 부분을 바꿀까?"입니다. 여기에는 일의 내용, 능력이나 자원, 인간 관계, 일의 의미 등이 포함됩니다. 두 번째 질문은 "어떻게 바꿀까?"입니다. 여기에는 긍정적인 부분을 늘리는 접근적 방법과 부정적인 부분을 줄이는 회피적 방법이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질문의 답을 조합하면 여러 가지 잡 크래프팅이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서 능력이나 자원에 접근적으로 잡 크래프팅을 한다면, 이 일을 좀 더 쉽고 재미있게 할 수 있도록 자신의 능력을 키우거나 또는 도움이 될만한 수단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또, 인간 관계에 회피적 잡 크래프팅을 사용한다면, 일을 하기 싫게 만들거나 방해하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가능한 줄일 수 있습니다.

잡 크래프팅은 큰 주제이기 때문에 다음에 다시 자세히 다루도록 하고, 여기서는 이 정도로 간단히 소개만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지연 행동의 개인 차

일 자체는 똑같아도 어떤 사람은 좀 덜 미루고 어떤 사람은 더 미룹니다. 여기에는 개인차 변수도 있습니다.

  • 나이: 나이가 들수록 지연 행동은 줄어듭니다.
  • 성차: 남성들이 여성들보다 조금 더 미루는 경향이 있는데, 그 차이는 미세합니다.
  • 성격: 성격은 큰 관련이 있습니다. 성취 욕구가 낮은 사람들, 지루함을 잘 느끼는 사람들,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충동적인 사람들은 많이 미루는 경향이 있습니다

경험에 대한 개방성(O), 성실함(C), 외향성(E), 친화성(A), 신경증(N)으로 구성된 빅5 성격 특성도 지연 행동과 관련이 있습니다.

  • 경험에 대한 개방성(O): 개방성이 높은 사람들은 호기심이 많으니까 잘 미룰 것 같지만, 실제로는 큰 관련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성실성(C): 성실성이 낮으면 미루는 경향이 큽니다. 성실성에도 여러 가지 하위 요소가 있는데, 그 중에서 주의산만, 자기 통제, 정리정돈, 계획성 등이 지연 행동에 영향을 많이 미칩니다.
  • 친화성(A): 친화성이 높으면 미루는 경향이 덜하지만, 관련성이 아주 강하지는 않습니다. 원인은 분명치 않습니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원망스러운 일은 행동을 미루게 되는 특성이 있는데요, 친화성이 높은 사람들은 누가 일을 시켜도 그 사람을 별로 원망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가 추측됩니다.
  • 외향성(E): 외향적인 사람들은 충동적인 성향이 있습니다. 또, 외향적이면 사람들이랑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가만히 앉아서 해야하는 일을 미루게 되는 경향도 있습니다. 다만 관련은 약한 편입니다.
  • 신경증(N): 신경증이 높은 사람들도 예민하고 충동적 경향이 있기 때문에 미루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역시 관련은 약한 편입니다.

그 외의 변수들도 있습니다.

  • 지능: 지능은 미루기와 별로 관련이 없습니다.
  • 심리적 문제: 우울증, ADHD, 불안 장애 등 심리적인 문제도 지연 행동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전문적인 치료나 상담이 필요합니다.

지연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변수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변수가 지연 행동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 중에 한 가지는 왜곡된 사고 방식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다음 뉴스 레터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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