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영감노트_절대 울지 않는 직원

인간의 영역과 능력, 희비. 그 고유함에 대하여.

2023.04.14 | 조회 3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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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는 마음

계속해서 읽고 쓰고 싶은 마음으로 띄우는 편지


눈물도 안 흘려!

저는 자동차를 이용한 출퇴근길에 주로 라디오를 듣습니다. 라디오를 듣다보면 다양한 광고음악을 접하게 마련인데요. 그중 최근 귀에 쏙 들어온 광고가 하나 있었습니다.

서빙을 책임져, 서빙로봇 브이디! 눈물도 안 흘려, 서빙로봇 브이디!”

이 노래를 듣고 기분이 오묘했어요. ‘눈물도 안 흘려라는 대목을 몇 번 곱씹었죠.

로봇이라 눈물을 흘리지 않는구나. 감정이 없는 게 로봇의 장점이구나. 그렇다면 일을 하다 울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인간은 뭘까?

눈물을 흘리는 감정이 의미하는 건, 그가 처해 있는 극한의 노동 환경이거나 그가 마주한 인간들의 태도가 아닐까?

그 눈물이란 제거되거나 무시되어야 하는 대상일까? 내가 고용주라면 절대 울지 않는 직원을 원하게 될까?

그 광고를 들을 때마다* 저는 생각을 덧붙여가며 조금씩 더 절망했습니다. 살아 있는 존재를 자신답게 만드는 마음, 감정, 느낌은 어디에서 올까? 그것을 배제하면 우리는 행복해질까? 최악의 고용주와 손님을 만난 서빙로봇은 정말 아무 감정도 느끼지 않을까? 그들은 괜찮을까? 하고요.

 

덧붙이는 이야기 하나, 글을 쓰기 위해 찾아보니 이 광고음악의 정확한 가사는 “국물도 안 흘려”였습니다. 국물 한 방울 안 흘리다니, 대단해 너란 서빙로봇... 둘, 정세랑 작가의 장편소설 『덧니가 보고 싶어』 중 「해피 마릴린」을 함께 읽으며 로봇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에 관한 생각을 확장해보아도 좋겠어요.

 

땅과 해님, 그리고 인간이 하는 일

일상에서 로봇의 영역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까요?

빨래와 설거지 같은 집안일 혹은 매표, 주문, 서빙을 대신해주고, 인간의 몸을 치료하는 그들은 마침내 우리의 땅과 해님이 하는 일의 영역에 도달했습니다. 빛을 비추고 싹을 틔우는 가전제품이 등장한 것이죠.

지난주 [숏숏픽션]으로 전해드렸던 ‘몸에서 잎을 틔우는 존재’인 ‘영’에 대한 상상은 이 가전에 대한 기사를 읽고 떠올렸습니다. LG전자에서 만든 이 가전제품*에 붙은 이름인 ‘틔운’을 넣은 짧은 이야기를 지어보고 싶었어요.

잉태하는 것은 지구와 태양과 달의 작용이며, 몸에서 생명을 길러 낳아 돌보는 것은 인간이 계속해서 해오던 일이기도 하지요.

그것을 기계가 하기 시작했다는 뉴스를 읽고, 등골이 오싹했습니다. 단지 집 밖에서 수행하던 작업을 집 안으로 옮겨 왔다고 가볍게 여길 수도 있고, 또 기계 따위 그저 코드만 뽑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쉬이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어쨌거나 씨앗과 흙이 담긴 키트를 인간이 기계의 문을 열고 안으로 넣어주어야만 제품이 작동할 수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싹이 자라는 과정이 기계의 몸안으로 들어감으로써 시작될 미래가 저는 두렵습니다.

 

우리의 영역, 우리의 능력, 우리의 희비

챗GPT*의 등장으로 도약한 인공지능(AI) 기술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사유가 이어집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주로 인간의 지적이고 창의적인 능력의 결과물로 여겨졌던 범주의 일들에 AI가 손을 뻗었습니다*. 저 넓은 우주, 그중 지구라는 행성, 그중 인간이라는 생명체가 가진 고유함을 빚어내던 창작의 영역에서 그들은 능력을 뽐냅니다.

미국의 공립학교와 대기업 들이 챗GPT 사용을 금지했다고 하지요. 일 혹은 학습을 보조하고자 만든 기술이 그것들을 현저하게 방해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기계가 대신 사고하고 쓸 수 있는 보고서나 과제라면 사람들은 스스로 쓰고 싶어 하지 않을 테니까요.

사유하고 만들고 나누어 비평하는 인간의 유희는, 그 생산 능력을 잃어버림으로써 서서히 도태할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쌓아온 기쁨과 슬픔, 그 아름다움은 어디로 가게 될까요?

 

🛸

아마 로봇과 AI에 대한 뉴스레터를 한 편 써달라고 요청하면 챗GPT5분 안에 해내겠지만, 저는 일주일 내내 글감을 수집해 고민하고 몇 시간에 걸쳐 글을 써 다듬습니다. 과연 저의 이 시간은 무용한 것일까요?

오늘 편지에는 유독 물음표가 달린 물음이 많았지요. 구독자 님도 계속해서 묻고 답하는 그 시간을 포기하지 말아주세요. 제가 '국물'을 '눈물'로 잘못 듣고 몇 날 며칠을 끙끙댔던 것처럼요. 그것이야말로 구독자 의 가장 고유한 영역일지도 모르니까요.

 

2023.04.14. 순천에서 민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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