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산문_ 엉망진창 타래를 풀어드립니다

엉망진창 INFP가 해결사가 되는 순간

2023.04.21 | 조회 4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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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s in my bag ⓒ민채
whats in my bag ⓒ민채

 

이상한 특기 선발 대회 같은 게 존재한다면 나는 ‘타래 풀기 전문가’로 도전장을 내밀겠다. 그는 엉망진창으로 꼬여버린 타래를 풀어주는 사람이다. 꼼짝도 않고 앉아 눈에 힘을 준 채 도무지 풀리지 않을 것 같은 목걸이의 꼬임 같은 걸 풀어내는 사람. 누구도 풀지 못했던 문제를 푸는 해결사다!

MBTI INFP인 나는 ‘내일은 모르겠고, 오늘은 될 대로 되라지!’ 성향이 짙다. 온갖 상상을 바탕으로 가능성을 열면서도 책임은 내일의 나에게 전가해버리는 무계획적이고 즉흥적인 INFP 기질은, 평소 들고 다니는 가방만 보아도 금세 들통이 난다. 

일단 크기가 작은 가방은 메고 다닐 수조차 없다. 구체적인 하루 계획이 없으니 큼지막한 가방에 오늘 갑자기 쓰고 싶어질 수도 있을 것 같은 물건들을 대충 쓸어 담는다. 책도 서너 권씩 막 넣는다. 늘 벽돌 같은 무거운 가방과 보조가방을 이고 다닌다. 놀라운 건 거기에서 실제로 꺼내어 쓰는 물건이 단 하나도 없는 날도 왕왕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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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 안은 카오스다. 질서 없이 뒤섞인 혼돈의 세계. 그런 가방 안에서 이따금 골칫거리처럼 보이는 물건을 꼽는다면, 이어폰이나 목걸이같이 타래가 될 가능성이 있는 물건이다. 길고 가느다란 물건들은 제멋대로 가방 속을 굴러다니다가 얼기설기 엉키어버린다.

(S+J 성향의 독자분이라면 도대체 저 큰 가방 안에서 왜 목걸이가 굴러다니다 엉키는지 기겁하시겠죠. 고통을 드려 죄송합니다.)

선이 있는 이어폰을 쓰던 시절, 내 이어폰 줄은 늘 엉켜 있었다. [나중에 쓸 때 이게 어떤 상태가 되고 어떻게 조치해둬야 편할지]까지는 생각의 알고리즘이 전혀 작동하지 않는 탓에, 슥 움켜쥐어 가방 속 아무 데나 밀어 넣는다. 작은 파우치에라도 넣으면 도움이 될 텐데, 파우치 속 내용물도 결국 전부 밖으로 나오기 때문에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이어폰 줄감개 같은 정리 도구도 없다. 솔직히 말하자면 타래를 발견하면 반갑다. 타래가 생겨 엉키면 도전 정신이 들어 호전적으로 풀고 앉아 있다. 정리와 계획을 못하는 대신 내가 쌓아둔 문제를 천천히 풀어나가는 인내심을 얻었다. 무거운 가방을 메고 걷는 법을 배워왔다. 엉망진창 INFP에게도 자구책은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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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얼굴로 대회에 출전이 가능하다면 ‘MBTI 예찬론자로 무대에 서리라. 혹자는 겨우 16가지 기준으로 어떻게 사람을 다 설명하느냐 비판하지만, 16가지가 어디인가! 나는 인상이나 직업, 나이, 취미 등 너덧 개의 지표로 가늠하기 어려웠던 사람들을 16가지나 되는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쁘고 즐겁다.

MBTI가 크게 유행한 최근 몇 년 사이, 나는 더욱 폭넓게 다른 사람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무심코 저지르는 행동으로 인해 나와 성질이 정반대인 다른 사람이 엄청난 고민과 스트레스에 빠질 수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보통의 나는 내일 만나서 괜찮아 보이는 식당 아무 데나 들어가자!”고 약속하는 P이지만, J를 만날 땐 전날 저녁에 함께 가게를 검색하거나 먹고 싶은 메뉴라도 정확히 말해두는 성의를 보이는 식이다. 왜냐하면 나의 내일’, ‘아무 데나가 그 사람을 답답하게 만들고, 혼자서 관계의 모든 짐을 지고 있다는 느낌에 빠지게 할지도 모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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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에게도 관대해졌다. 내 단점과 한계점에 괴로워하는 대신 다른 장점을 즐겁게 누린다. 아무래도 잘되지 않는 일은 타고난 기질 탓이 분명히 있을 테니, 스스로를 너무 나무라거나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고통 받을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거다.

나는 매사 엉망진창이야. 자주 길을 잃어 늦고, 자꾸 깜빡 잊거나 무언가를 두고 오고. 재밌겠다고 새로운 일을 대책 없이 벌려놓기만 하고, 수습하느라 정신없지. 책상 위도 가방 안도 머릿속도 깨끗하게 만들 수가 없어. 미리미리는 불가. 내일이 없어 이런 자책을 늘어놓는 대신 INFP가 잘하는 일이 뭔지를 떠올리며 흐뭇해하는 것이다.

INFP는 무질서의 해결사야, 왜냐하면 그는 본인이 엉클러 망쳐놓은 일을 끈덕지게 풀어낼 수 있거든… 생각은 금세 샛길로 빠져 어느새 이어폰과 목걸이를 풀던 손 주변으로 무대가 생겨나고, 자질구레하고 이상한 특기를 앞세운 전문가들이 북적이고 있다. 지금 해야 할 일을 잊은 채 끝내 망상만이 날개를 뻗는다. 내일의 내가 어떻게든 잘해내겠지! 이러나저러나 오늘의 우승자는 타래 풀기 전문가 김민채 씨, 우승 상금 1억 원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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