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말에 사 모은 만화책이 책꽂이에 꽂혀 있어요. 천계영 만화 『언플러그드 보이』(1996~1997)와 『오디션』(1997~2003)은 앞으로도 버리지 못할 예정이죠. 천계영 작가가 천재라는 생각은 당시에도 했지만, 근래엔 유독 『좋아하면 울리는』(2014~2022)을 곱씹으며 “역시 천재라니까”라는 말을 머금고 지내요.
『좋아하면 울리는』에서 보여주는 세계관 설정이 소름 끼칠 만큼 이 시대를 정확하게 내다보아서 그래요. 좋아하는 마음을 스마트폰으로 측정할 수 있는 기술은 ‘시선’이 머무는 정도에서 비롯된다는 설정, 지금에야 익숙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수치화해 셀 수 있다는 설정(하트의 개수 표시), 그 데이터가 몇 달 혹은 몇 년이 쌓이면 꽤 정확한 값 안에서 ‘앞으로 누구를 좋아할지 예견할 수 있다’는 설정(당신이 좋아할 사람 기능) 등.
‘발길’과 ‘눈길’이 머무는 것이 사랑이고, ‘본능적’으로 사로잡혀 함께 울리는 것이 사랑이고, 울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사랑이고, 나이나 성별을 ‘뛰어넘는’ 것도 사랑이고…… 모든 형태의 사랑에 대한 통찰이 담긴 전체적인 스토리 라인도 좋지만, 근래 우리 일상을 잠식한 알고리즘 시대를 먼저 내다보기에, 저는 『좋아하면 울리는』이 만든 세계 안을 자꾸 맴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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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스타그램에 접속하면 ‘00님이 회원님이 좋아할 만한 스레드를 게시했습니다’라는 안내와 게시물이 뜨는 게 역겨워서 스레드 추천 피드를 지우고 또 지워요. 알고리즘이 나의 시선이 오래 머무는 곳을 분석하고, 좋아하는 마음을 모아서 데이터화하고, 결국엔 내가 ‘좋아할 만한 콘텐츠’만 자꾸자꾸 내어놓는 게 버거워요. 인스타 릴스를 보지 않으려, 유튜브에 접속하지 않으려 애써요. 일단 한 번 눈길이 가면 순식간이죠. 마음을 빼앗기면 끝장.
알고리즘이 무서워요. 내가 좋아하는 것 안으로 자꾸 나를 가두는 힘. 좋아하는 것 바깥의 세상으로 눈길을 돌릴 가능성을 차단하는 강력한 작용. 발길 혹은 눈길, 마음이 가는 길로 구축된 추천 메뉴 안에서 하트를 선사하고 말죠. 그들은 수치화된 하트를 받아요. 하트는 분석되고 데이터가 되어 나를 정의해요. 거대 기계가 내어놓은 나의 취향 속으로 나는 빨려 들어가요. 한없이 달콤해서 자꾸 채워 넣고 싶은 맛.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가늠할 수 없는 마비된 감각.
그때의 나는 외로워요. 입이 달아서. 차단된 시공간 안에는 날씨가 없어서. ‘좋아할 만한 것’을 알고리즘의 기대만큼 무언가를 충실히 좋아하지 않아서. 문득 내가 그것들을 좋아하는지 의문이 들어서. 결국 나의 본능과 노력, 뛰어넘음까지 부정하게 되어서. 발걸음을 옮기며 눈길을 주지 못하고, 주저앉은 채 눈길을 빼앗겨서. 마음이 걸어갈 길을 잃어버려서. 충돌하고 싶어서. 로그아웃하고 싶어서. 알지 못하는 것을 알지 못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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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길이 따라가는 건 물론 사랑이어요. 사랑에 빠진 자의 눈길은 저절로 움직일 수밖에 없죠. 의지와 상관없이 스스로 움직이는 근육인 불수의근처럼요.
그러나 눈길이란 어쩌면 그 무엇보다 주체적인 힘을 갖고 있어요. 눈길은 ‘주는’ 것이기도 하죠. 당신도 알잖아요. 그를 만나려고 퇴근하자마자 버스나 열차에 지친 몸을 실을 때. 멀고 긴 여행 도중 영상통화를 걸어 그의 얼굴을 보고야 말 때.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어서 교실 뒷문 유리창 너머로 그 아이의 뒤통수를 찾을 때. 그렇게 바람을 가르며 발걸음을 옮겨 달려갈 때, 사랑은 비로소 작동하지요.
신발을 신고 밖으로 향해요. 의외와 우연의 세계를 향해 가요. 내가 좋아하리라 상상조차 못 했던 이들과 몸을 부딪고 눈을 마주치고 목소리를 나누러. 알지 못하는 것을 영영 알지 못하는 고독을 등지고 발길을 옮겨요. 기억해요, 마음을 빼앗기면 끝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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