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여수의 한 도서관에서 책 쓰기 반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라디오에서 귀에 익은 시그널 송이 흘러나왔어요. 별밤이잖아! 난데없이 가슴이 뛰었죠.
따란♩, 따란♪, 김이나의, 별이, 빛나는, 밤에.
평소에는 10시가 되기 전 집 앞에 도착해 주차를 마치고 시동을 끄기 때문에 별밤 오프닝을 들은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어제는 몇 학우들의 글을 더 피드백해주고 보니 다른 때보다 출발이 15분 정도 늦었어요. 라디오 좀 들어본 이라면 추억에 젖어 함께 흥얼거릴 만한 그 시그널 송을 듣는 순간, 저는 벌써 다른 시간과 공간 너머로 넘어가 있었죠.
구독자 님의 별밤지기는 누구였나요? 제 별밤지기는 가수 옥주현 님이었어요. 19대 DJ였던 옥주현 님이 2002년 4월 1일부터 2006년 10월 1까지 방송을 맡았다 하니, 제가 중고등학생이던 시절이었네요. 그때 저는 밤마다 책상 앞에 앉아 교환일기며 편지며 친구들에게 띄우는 글을 쓰곤 했으니, 라디오는, 별밤은 십대의 제가 무언가를 쓸 수 있도록 곁을 지켜준 친구였던 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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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월부터 9월까지, 6개월 동안 매주 글 한 편을 써서 여러분께 발송했고, (제풀에 지쳐) 글쓰기를 재정비해 돌아오겠다는 마지막 편지를 띄웠었어요. 그 사이 반년도 넘는 시간이 훌쩍 흘렀어요. 유의미한 결실을 내놓아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그때 거기로부터 단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지요.
별안간 저를 깨운 건 배우 변우석 님의 말 한 마디였어요. 요즘 주목 받는 인물이고 저 또한 그의 행보를 눈여겨보고 있었죠. 한 채널에서 공개된 일화인데요,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가 크게 흥행하자 친한 친구인 배우 혜리 님이 축하 인사를 전했고, 변우석 님이 이렇게 대답했다고 해요.
"혜리야, 8년 걸렸다."
모델 일 말고 배우에 도전한 뒤로 무명에 가깝게 8년을 보냈다는 거예요. 그 8년 동안 연기 스터디를 하고 작은 배역들을 수도 없이 맡으며 계속해서 연기를 해왔대요. 8년 걸렸다. 저는 그 목소리에서 내내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속에는 무수한 질문이 떠다녔죠.
나는 무엇이 되기를 바라면서, 8년이란 시간을 쏟아 노력해본 적이 있나? 나는 계속해보았나? 나는 나를 믿어주었나?
제가 하려던 '재정비'라는 게 도대체 무엇인지는 여전히 알지 못하겠어요. 쓰는 분야를 하나로 특화해 정진하기? 쓰는 주기를 조정해 책 만드는 일에 더 힘쓰기? 쓰는 일로 안정적인 수익을 낼 방법을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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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쿵. 난데없이 뛰는 가슴으로, 저는 십대의 책상 앞으로 돌아가요. 별밤을 벗 삼아 쓰는 글이 친구를 웃게 만들까 울게 만들까 상상하며 종이를 채우고 또 채우던 밤으로요.
나는 나를 믿을게요. 계속해볼게요. 무엇이든 제가 쓸 수 있는 말들로 구독자 님의 곁을 지킬게요. 지지직 지지직, 제 목소리가 들릴 때까지 주파수를 맞춰주세요. 백색소음처럼 깔려도 좋아요, 라디오를 끄지 말고 당신의 시간을 살아주세요. 제 편지가 훗날 당신에게 저 시그널 송처럼 어떤 마음을 불러일으키기를 바라며 다시금 띄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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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ligo
오랜만에 본 메일함에서 반가운 글을 마주하고 기쁜 마음으로 댓글 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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