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끝자락과 여름의 초입이 다정하게 손을 맞잡고 있는 요즘입니다. 계절의 교차점에서 주4일제 체험판, 다들 잘 즐기고 계신가요? 올해 5월은 첫째 주부터 3주 연속으로 평일 중 쉬는 날이 하루씩 껴 있습니다. 법정 휴일인 근로자의 날(5월 1일·수요일), 어린이날 대체공휴일(5월 6일·월요일)에 이어 부처님 오신 날(5월 15일·수요일)까지 눈치껏 찾아와준 덕분입니다. 한주당 출근 일수가 4일로 줄어들면서 직장인들이 잠시나마 주4일 근무제를 경험할 수 있게 됐죠.
주4일제를 ‘찍먹’ 해본 직장인들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입니다. SNS에는 “평일 하루를 쉬니까 몸도, 마음도 훨씬 개운하다” “휴일을 감안해서 일을 하니 오히려 업무 집중도가 높아진다”는 소감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일하는 시간 줄었는데 생산성은 ‘오히려 좋아’
어쩐지 일이 더 잘 되는 것 같다는 직장인들의 말이 근거 없는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일찌감치 주4일 근무제를 실험한 해외에선 근로 시간 단축이 노동자와 기업 모두에 긍정적이라는 사실이 입증됐기 때문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일본지사가 2019년 시행한 ‘워크라이프 초이스 챌린지’ 프로젝트를 살펴볼까요? 이 회사는 매주 금요일을 휴무일로 지정해 직원들이 주당 4일만 일하도록 했습니다. 임금은 그대로 유지했고요.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주4일제 시행 이후 마이크로소프트 일본지사의 생산성(1인당 매출 기준)은 39.9% 증가했습니다. 주4일 근무제를 향한 직원들의 만족도는 92.1% 달했죠.
성공적인 주4일제를 경험한 또다른 사례도 있습니다. 미국 콜로라도주의 도시 볼더 카운티에서는 2021년 1~4월까지 4개월간 6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주4일 근무제를 시범 도입했습니다. 덕분에 볼더 카운티 공무원들은 평일 하루를 육아·가사에 활용하거나 취미생활을 즐기는 데 할애할 수 있었습니다. ‘워라밸’을 위한 여건이 갖춰지자 공무원들의 업무 효율도 높아졌습니다. 주4일제 시행 후 공무원들이 민원에 응대할 수 있는 시간이 훨씬 많아진 것으로 나타났죠.
주4일제, 자칫 ‘일자리 불평등’ 초래할 수도
물론 주4일제가 모든 근로자를 위한 만능 답안은 아닙니다. 주4일 근무제를 둘러싼 우려의 시선도 존재합니다. 미국의 싱크탱크인 맨하탄 정책연구소의 앨리슨 슈래거 선임위원은 “주4일제를 시행할 경우 실제 근무시간은 32시간으로 줄어든다”면서 “노동집약적인 제조업이나 대면 서비스가 필요한 산업은 근무시간 단축으로 오히려 근로자들의 수익이 감소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각 산업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주4일제를 모든 업종에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업종 간 불평등이 심화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고요.
이 때문에 노동계에서는 상대적으로 휴식권을 보장받기 어려운 특수고용직·플랫폼 노동자·프리랜서 등을 두루 고려해 주4일 근무제를 위한 법과 인프라를 정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주4일제가 노동시장의 최상단에 위치한 대기업 근로자를 위한 ‘차별적’ 정책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글로벌 트렌드는 노동시간 단축
그렇다고 주4일 근무제 도입을 차일피일 미뤄둘 수만은 없습니다. 노동시간 단축은 거스를 수 없는 세계적 흐름입니다. 미국, 독일, 호주, 스페인, 핀란드, 포르투갈, 스코틀랜드 등 해외 여러 국가에선 이미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논의를 통해 주4일제를 보편화하기 위한 잰걸음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싱가포르 정부는 주4일 근무제를 본격 시행하기 위한 첫걸음을 뗐습니다. 고용주연맹, 전국노동조합연합회와 협의해 새로운 고용지침을 마련한 건데요. 노동자가 출퇴근과 근무시간·장소·형태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이 골자입니다. 하루 업무 시간을 조정해 일주일에 나흘만 일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만약 고용주가 정당한 이유 없이 노동자의 요청을 거절할 경우, 이들은 정부의 경고 조치를 받고 관련 교육을 이수해야 합니다. 노동자들의 ‘주4일제 선택권’을 보호할 수 있는 장치도 마련해둔 셈이죠.
주4일제 물 들어올 때 정부 ‘노 젓기’ 필요해
국내에도 주4일 근무제를 실험하는 회사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습니다. 올 1월부터 ‘격주 4일제형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운영하고 있는 포스코그룹, 2023년 국내 의료기관 중 최초로 주4일제를 도입한 세브란스병원, 2022년부터 본격적인 주4일 근무에 나선 기업교육 전문 회사 휴넷이 대표적입니다.
정치권도 주4일 근무제 도입을 공론화하기 위한 움직임에 나섰습니다. 노사정이 모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일·생활 균형위원회를 꾸려 장시간 근로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논의하기로 한 것입니다. 다만, 노동시간 유연화를 추진하는 현정부에서 노동시간 단축이란 의제가 얼마나 힘을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앞서 살펴봤듯, 우리 정부가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이 해외 기업들은 각 업종과 개별 사업장의 특수성에 맞춰 다양한 형태의 주4일제 모델을 실험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적당히 일할 수 있는 권리, 대한민국 직장인들에게는 언제쯤 찾아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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