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병원이 오전 7시부터 문을 열어야 하는 이유
대부분의 회사원들이 아직 자고 있을 오전 5시. 수도권의 어느 난임전문병원에 다니는 직장인 A씨는 진료가 예정된 날마다 이른 새벽에 일어나야 합니다. 진료 시작인 아침 7시 반 전에 도착하지 않으면 대기인원이 많아져 회사에 지각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A씨는 난임 치료를 받기 위해 이번 달에만 5~6번을 이른 새벽부터 병원에 가야 했다고 합니다.
병원에는 A씨보다 더 힘들게 오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충북, 세종 등 각 지역에서 수도권까지 진료를 받기 위해 왕복 3시간을 걸쳐 올라오는 사람들입니다. 인구가 적은 지역에는 난임 시술을 전문으로 하는 병원이 적어 사람들이 치료받기 위해 왕복 3~4시간이 걸리더라도 수도권까지 올라옵니다. 2022년 기준 전국의 난임시술병원은 272 곳인데, 130여 곳이 서울과 경기, 인천 등의 수도권에 몰려 있고, 60 곳은 부산∙대구∙광주∙대전∙울산 등 대도시에 쏠려 있습니다. 난임시술병원이 없는 지방에 거주하는 직장인들은 전문적인 치료를 받기 위해 개인적인 연차나 유연근무제를 사용하여 수도권까지 가야 하는 것입니다. 난임 치료를 받는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시간이 턱없이 부족해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호소합니다.
낳고 싶다는데… 정부의 도움이 절실한 직장인 난임부부들
많은 시간과 돈을 써 가면서 아이를 낳고 싶어 하는 난임부부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난임 시술을 통해 태어난 아기는 ▶2018년 8973명(전체 신생아의 2.8%) ▶2019년 2만6362명(8.8%) ▶2020년 2만8699명으로 전체 신생아의 10.6%까지 높아졌습니다. 이제 신생아의 10명 중 1명이 난임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입니다. 난임 시술을 받아 임신에 성공할 확률이 낮음에도 불구하고(정부의 시술비를 지원받아 임신에 성공할 확률은 30% 안팎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들은 많은 돈과 시간을 써가며 아이를 낳고자 하고 있습니다.
특히 직장을 다니면서 아이를 낳는 데에 엄청난 노력을 쏟는 직장인 난임부부들이 있습니다. 시간 부족은 직장인 난임부부들에게 큰 골칫덩이입니다. 진료를 위해 한 달에 7~8번은 이른 아침에 병원을 방문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보통 난임 시술을 받는 산모는 피검사, 초음파 검사, 각종 주사 시술 등을 위해 한 달에 7~8번은 내원해야 합니다(난임 시술을 위해서 동결배아는 3회, 신선배아는 5~6회 치료기관에 방문해야 하며, 위에서 언급한 각종 검사를 위해 추가적인 방문이 필요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개정된 법률안은 난임 치료를 위해 연간 3일(그중에서도 유급은 고작 1일)만을 보장하고 있어 난임부부들이 시간 부족을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부의 시술비 등 비용 지원 부족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현재 정부가 지원하는 난임 시술비를 받기 위해서는 가구 소득이 기준 중위소득의 180% 이하에 해당되어야 합니다. 아이를 가지고 있지 않은 2인 가구의 경우 소득이 620만원 이하여야 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소득기준을 완화하거나 철폐한 소수의 지역은 예외). 다수의 맞벌이 부부가 지원받기 어려운 것입니다. 시험관 시술비만 해도 대략 400만원이 소요되는데, 지원금을 받지 않고 건강보험만 적용해도 200만원에 가까운 금액이 필요합니다. 이외에도 진료를 받는 데에 추가적인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맞벌이 부부에게 난임 시술은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보다 출산율 높은 선진국, 소득 상관없이 비용 전액 지원
우리나라보다 출산율이 높은 스웨덴, 덴마크, 프랑스 등의 선진국조차 가구의 소득 수준에 상관없이 난임 시술의 비용을 전액 지원하고 있습니다. 개방적인 유럽국가들의 경우 비배우자 정자공여 시술을 개방해 미혼여성 및 동성커플에게도 난임시술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출산율이 3.0인 이스라엘조차 소득 수준에 상관없이 둘째까지 시술 지원이 무제한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보다 출산율이 높은 선진국조차 난임부부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데, 우리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요?
저출산 강조하는 정부, 정작 낳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는…
출산율 0.7, 국가 소멸 위기라고 이야기하는 정부는 정작 아이를 낳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큰 관심을 두고 있지 않는 것 같습니다. 대선 당시, 윤석열 후보는 난임 휴가 기간 확대, 시술비 지원 제한 완화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현재까지 시행된 건 거의 없습니다. 신생아의 10명 중 1명이 난임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임에도 불구하고, 난임 치료를 위한 휴가 확대나 소득제한 철폐 등 난임부부가 가장 원하고 있는 목소리는 정책에 반영하지 않고 있습니니다. 현재 국회에는 ▶현행 난임치료 휴가를 연간 3일에서 30일로 10배 늘린 더불어민주당 서영석 의원의 개정안, ▶소득, 연령, 시술 횟수 등의 제한을 완화하고 모든 난임부부에게 난임 치료를 위한 시술비를 지원하는 국민의힘 조명희 의원의 개정안 등 여야를 가리지 않고 난임부부를 위한 법안이 쏟아지고 있으나, 정부는 필요성을 공감한다는 말만 하고 실행하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난임 시술비 지원사업을 현행 지방자치단체사업에서 국가사업으로 전환하고 지원 소득기준을 폐지하는 등의 정책을 보건복지부에 제안했지만, 정부는 다양한 핑계로 이를 미루고 있습니다. 저출산 예산으로 사용된 47조원(2021년 기준) 중 난임 치료에 조금만 더 돈을 투자해도 출산율을 높일 수 있는데도 말입니다.
난임 치료, 이제는 국가가 나서서 보장해야
최근 난임부부들 사이에서는 장난처럼 ‘아이를 낳기 위해서는 퇴사가 답이다’라는 말이 번지고 있습니다. 난임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얻는 스트레스로 인해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가, 퇴사를 하자 시간도 많아지고 정부의 지원금도 받을 수 있어 스트레스가 줄어 아이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정부가 제공하는 짧은 휴가로는 난임을 치료를 하기 위한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2017년 법이 개정된 이후 6년 동안 난임 시술을 받는 여성 직장인들 다수가 퇴사를 선택했습니다(난임 시술을 받는 여성 직장인 중 39.7%는 퇴사를 선택). 난임 치료 도중 시간과 비용 부족으로 아이 낳는 것을 포기하는 사례도 생기고 있다고 합니다. 이제는 이러한 난임부부들이 더 이상 부담을 갖지 않고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국가가 나서서 치료를 보장하는 사회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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