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일본의 인사말은 ‘라인시떼루~’ (카톡 해~)
‘한국의 구글’이라는 별명을 가진 IT기업 네이버는 일본에서도 유명한 회사입니다. 네이버의 글로벌 메신저인 ‘라인’을 대부분의 일본인들이 사용하거든요.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을 계기로 네이버는 재난 상황에서도 연락을 할 수 있는 메신저를 개발했고, 라인은 일본인의 비상 연락망 역할을 하며 국민 메신저로 자리잡았습니다. 현재 일본 국민 10명 중 8명이 사용한다고 해요. 2016년 구마모토 지진 당시에는 일본인들이 라인을 통해 구조를 요청하고 서로의 생존을 확인하기도 했죠.
한국인의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이 메신저로 출발해 금융, 오락, 쇼핑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으로 진화했듯이, 네이버 라인도 다양한 생활 서비스로 영역을 확장했어요. 일본인들은 라인을 통해 쇼핑을 하고, 비대면 진료를 이용하며, 공과금을 납부하고, 숏폼 동영상을 시청해요. 각 언론사의 기사를 모아 보는 서비스인 라인뉴스는 일본의 모바일 뉴스 서비스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고요.
일본 현지화 전략의 성공을 바탕으로 네이버 라인은 일본 문화에 친숙한 대만과 태국, 인도네시아 등에도 진출했어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던 네이버는 2019년 손마사요시(손정의) 회장의 소프트뱅크와 손을 잡았어요. 소프트뱅크는 일본 최대 포털서비스인 ‘야후재팬’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당시 간편결제서비스와 배달사업 등에서 네이버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었어요. 소프트뱅크의 손마사요시 회장은 라인을 ‘킬러 앱’으로 눈여겨 보다가 네이버에 합작을 제안했다고 알려졌어요. 결국 구글, 페이스북과 같은 글로벌 기업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회사로 성장하기 위해 야후재팬과 네이버가 합작법인을 만들게 됐죠.
라인과 야후가 힘을 합쳐 세계적인 기업이 되길 바랐던 건 장밋빛 기대였던 걸까요? 라인이 일본기업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소프트뱅크가 라인야후의 중간 지주회사인 에이홀딩스의 주식을 매입하기 위한 협상을 추진하고 있다고 해요. 소프트뱅크가 네이버로부터 주식을 인수해 대주주가 되면 네이버는 라인의 경영권을 잃게 돼요. 이 같은 주식 매각을 일본 정부가 압박하고 있다고 알려졌어요.
개인정보 유출에 '경영권 뺏기'로 대응?
일본 정부가 나서서 라인을 일본 자본이 지배하게 하려는 배경에는 라인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있어요. 작년 11월 네이버 클라우드와 라인의 업무를 위탁하고 있는 회사의 직원이 사이버 공격을 받아 라인야후에서 55만 건의 개인정보 유출 피해가 발생했대요. 다행히 금융정보나, 라인 앱의 메시지와 관련된 정보는 유출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개인 정보 유출 피해가 발생하면 그에 맞는 법적인 제재와 함께 보안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것이 상식적인데요, 일본 정부는 ‘경영권 뺏기’로 대응하려는 모습이에요. 핵심정보가 포함되지 않은 개인정보 유출을 빌미로 정부가 사기업에 지분 매각을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고 합니다.
라인 빼앗아 동남아 금융 플랫폼 장악 노리나
표면적으로는 개인정보 보안을 문제 삼지만, 일본 정부의 속셈이 따로 있다는 지적이 나와요. 신남방 정책에 공을 들이고 있는 일본한테는, 라인이 빼앗고 싶을 만큼 탐나는 기업이라는 거예요. 동남아 국가들의 금융 서비스가 빠르게 디지털화 되고 있어 동남아 시장을 공략하려면 자본력뿐만 아니라 디지털 기술이 필요한데요, 라인은 일본이 보유하지 못한 디지털 기술과 금융 플랫폼 경쟁력을 갖고 있어요. 태국,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국가에서 라인을 많이 이용하고 있기도 하고요. 일본 정부의 압박에 라인을 내어주면 네이버는 당장 일본 뿐만 아니라 오랜 기간 공들여 개척한 동남아 시장까지 송두리째 빼앗기게 됩니다.
‘적대국에나 할 법한 일’
또, 인공지능이 중요해지면서 한일이 합작한 회사에 빅데이터가 쌓여가는 것을 일본이 불안해 한다는 분석도 있어요. 경제안보 차원에서 ‘데이터주권’이 중요하다는 거예요. 중국 기업 틱톡이 다량의 미국인 정보를 갖고 있는 것을 미국이 문제 삼고, 법안을 통과시켜 틱톡을 미국에서 퇴출시키려고 하는 것처럼요. 하지만 미국-중국의 관계와, 한국-일본의 관계는 다릅니다. 한국과 일본은 미국의 동맹국으로 ‘한 편’으로 묶이잖아요. 심지어 미국에서도 틱톡 금지법이 수정헌법 1조에 어긋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틱톡 퇴출을 놓고 법정 공방이 지루하게 이어질 전망인데요, 일본은 법적인 절차를 거치지도 않고 정부 압박을 통해 네이버가 라인에서 손을 떼게 만들려고 해요. 이 같은 행태에 대해 ‘자본주의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폭거’이며, ‘적대국에나 할 법한 일’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예요.
라인 강탈 시도가 계속 논란이 되자, 네이버와 한국 정부는 매각을 고려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표명했어요. 다행히 당장은 매각 위험이 줄어든 듯 보이지만, 또 어떤 이유를 들어 일본 정부가 네이버를 압박할 지 지켜봐야겠어요. 소프트뱅크가 일본 정부와 한 팀에 되었듯이, 한국 정부도 라인을 부당하게 빼앗기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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