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덥지근한 여름, 요리할 엄두가 나지 않는 계절입니다. 에어컨을 켜도 뜨거운 불 앞에 서면 숨이 턱턱 막히죠. 그래서인지 요즘 유난히 ‘급식 시절’이 그리워요. 균형잡힌 친환경 식단을 매일 제 앞에 놓아주는 사람들이 있었잖아요. 그 고마운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이번주 미션100에서 다뤄보려고 합니다.
‘죽음의 일터’로 드러났지만
폐암으로 사망했던 급식 조리 노동자가 산업재해 인정을 받은 지 2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튀김·구이·볶음 등의 조리를 할 때 발생하는 발암물질인 ‘조리흄(cooking fumes)’이 급식실 노동자의 건강을 해친다는 사실이 이제 널리 알려졌죠. 폐암에 걸린 수십명의 급식실 노동자가 산재신청을 했고요, 정부가 학교 급식 업무 종사자를 대상으로 폐 검진을 해본 결과 32.4%가 ‘폐 이상 소견’을, 341명이 '폐암의심 소견'을 받았어요. 학교 급식실이 죽음의 일터로 드러난 이후 현장은 얼마나 바뀌었을까요?
급식실 종사자들은 현실적으로 나아진 게 없다고 지적합니다. 학교 급식실이 ‘산재백화점’이라는 게 알려져서 인력을 구하기가 더 어려워지기만 했대요. 일하는 인원이 줄어들면 노동강도는 더 올라가잖아요. 위험하고 열악한 노동조건이 알려졌지만 이를 적극적으로 개선하는 조치가 취해지지 않다보니 현장의 노동자들은 이전보다 더 고강도·고위험 노동에 시달리게 되었어요.
바뀐 게 없으니… 인력공백만 심화
요새 전국의 학교 급식실에서 정년 퇴임을 맡기 전에 자진 퇴사하는 노동자의 비율이 갈수록 늘고 있어요. 입사 후 반년을 넘기지 못하고 퇴사한 노동자의 수가 전년보다 3배 이상 증가했고요(2022년 기준). 퇴사하는 사람들은 늘어나는데 신규 인원 충원은 더 어려워지고 있어요. 전국의 학교 급식 노동자 신규 채용의 미달률은 22%에 가깝습니다. 강원지역은 미달률이 100%에 이르고요, 서울도 미달률이 49%나 돼요.
산재 위험은 갈수록 더 높아지고 있다
다른 작업장과 마찬가지로, 학교 급식실 또한 인력이 줄어들수록 산재위험이 커져요. 뜨겁고 무거운 것을 자주 옮겨야 하고, 커다랗고 위험한 기구를 이용해 일하잖아요. 시간 맞춰 준비해야 하는 음식의 양은 그대로인데 인력이 줄어들면 다칠 가능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죠. 손이 모자라고, 시간이 부족하다 보면 화상을 입고, 손가락이 절단되고, 인대가 파열되는 등의 산재를 입게 돼요. 적은 인원으로 급식실 위생까지 엄격히 유지해야 하니 독한 약품을 사용해 청소와 설거지를 하는데요, 매일 각종 세척약품들에 고농도로 노출되는 노동자들은 두통과 기침, 피부염 등을 호소하고 있어요. ‘조리흄’만이 문제가 아닌 거죠.
조리사 1명이 190인분 만들어야 하는 학교 급식실
게다가 원래 학교 급식실은 다른 급식실보다 업무강도가 높기로 유명했어요. 노동자 1명이 몇인분의 음식을 만드는지 보여주는 ‘식수인원’의 수가 다른 기관보다 훨씬 높거든요. 서울대병원 등 주요 공공기관 11곳의 평균 식수인원이 66명인데요, 전국 초등학교의 평균 식수인원은 155명이나 돼요. 인천과 대전지역의 경우 1명의 조리사가 책임져야 하는 급식인원이 190명에 이릅니다. 다른 공공기관 급식실보다 학교 급식실이 업무강도가 2~3배 이상 강한데 산재 위험까지 훨씬 높은 거예요.
2년 만에 내놓은 교육부의 대책, 실효성은?
올해 교육부는 학교급식종사자의 건강을 보호하고 안전한 조리실 환경을 만들 대책을 발표했어요. 그러나 현장에선 실효성이 담보되지 않은 채 방향 제시에만 그쳤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교육부가 내세운 튀김·구이 등의 식단을 줄이는 방법과 오븐을 확충하는 정책은 이미 시·도교육청·별로 권고가 시행되었으나, 의무가 아니기 때문에 이행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고 해요. 게다가 오븐 요리는 세척 과정이 중요한데, 인력대책 없이 오븐 요리로 메뉴를 구성하라고 하면 독한 약품을 이용한 설거지와 청소 때문에 노동자들이 또다른 위험에 노출된다는 우려도 나왔고요. 또한 지하·반지하에 위치한 급식실부터 빨리 조리실을 신설해야 하는데 이에 대한 적극적인 대책이 없었고, 환기 설비를 개선하기 위한 예산도 특정되지 않았어요.
‘밥하는 아줌마’를 지켜라
미국의 공립학교에는 급식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서 학생들이 달고 짠 가공식품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어요.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던 학생이 미국 학교에 가면 저품질 급식에 경악한다고 하죠. 반면 한국에선 학생들의 건강과 성장기 영향균형을 모두 고려하고, 친환경 재료로 만든 맛있는 급식을 무상으로 제공해요. 이제 우리에겐 학교급식이 필수적인 복지가 되었고, 선거철만 되면 무상급식 확대 공약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학교 급식실이라는 열악한 일터를 바꿀 정책은 실행되지 않고 있어요.
우리가 ‘밥 짓는 노동’을 경시하는 것이 하나의 원인은 아닐까요? 2017년 한 국회의원은 급식실 노동자를 ‘밥하는 동네 아줌마’라고 칭하며 ‘왜 정규직이 되어야 하냐’는 말을 했다고 알려졌어요. 이렇게 밥 짓는 노동을 무시하고, 적극적인 안전대책과 인력수급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 상황이 계속되면 필수복지인 학교급식이 사라져버릴지도 몰라요. ‘필수노동’에 걸맞은 노동조건이 하루빨리 마련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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