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겨울,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사망한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 故 김용균씨 기억하고 계시죠? 지난 7일 故 김용균씨 사망 사건에 대한 대법원 선고가 있었습니다. 이날 열린 상고심 재판에서 원청업체 법인과 그 대표의 무죄가 확정되면서 많은 시민들이 분노했어요.
김용균씨 사망 사건, 중대재해법 있었다면 달랐을 텐데
김용균 씨가 사망하기 전에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되었다면 원청 대표는 형사처벌을 피하지 못했을 거라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더 일찍부터 마련되어 안전조치가 제대로 이뤄졌다면 김용균씨가 사망하는 사건이 없었을 수도 있겠죠. ‘제도적 변화가 좀 더 빨리 일어났다면 달랐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들어요. 그런데 이 와중에 정부와 여당은 오히려 중대재해처벌법의 적용을 좀 더 미루려고 하고 있습니다.
하루빨리 서둘러도 모자란 걸 늦춘다고?
지난 10월 말 윤석열 대통령은 민생현장 방문 주요 결과를 발표하면서 50인 미만 사업장의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문제를 언급했어요. 상시 근로자수가 5~49인인 사업장은 내년 1월 27일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의 적용을 받게 되거든요. 대통령의 발언 이후 정부와 여당은 당정협의회에서 50인 미만 사업장에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2년 유예하는 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고, 국민의힘 의원들이 법안을 발의한 상황입니다.
준비할 시간은 이미 3년이나 주어졌다
정부·여당은 소규모 사업장에서 중대재해처벌법에 대처할 시간이 부족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요,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된 지는 3년이나 되었고, 법이 시행된 지도 2년이 다 되어가고 있어요. 법 제정 당시 이미 50인 미만 사업장에 법 적용을 늦춰주었는데, 또 해달라는 거죠. 중대재해처벌법이 통과된 후로부터 3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2년을 더 준다고 해서 달라지는 게 있을 지 의문이에요. 시민들은 법 적용을 또 한번 유예 해주는 게 정부가 중대재해처벌법을 무력화하는 효과만 가져올 것이라 지적합니다.
“준비가 안 돼 있으니 더욱 시행해야 한다”
중대재해처벌법과 산업안전보건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것들은 처벌이 없더라도 경영자가 원래부터 지켰어야 할 아주 당연한 의무들이에요. 사업장을 운영하면서 직원들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대책을 마련하고, 예산을 쓰고, 주기적으로 점검하는 건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잖아요. 너무나 당연한 일을 하지 않아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된 건데, 여전히 의무를 다하지 않겠다고 버티는 걸 보면 노동자의 목숨을 정말 가볍게 여기는 것 같아 화가 납니다.
노동계에서는 ‘버티면 된다’는 인식이 확대되어선 안된다며 “준비가 안 돼 있기 때문에 더욱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해요. 그렇게 해야 노사가 조금이나마 더 산업재해 예방에 관심을 기울이고, 죽음의 행진을 멈출 수 있다는 거예요. 실제로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이후, 법 적용을 받는 회사에선 경영책임자의 산재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아졌다고 해요. ‘지키지 않으면 처벌받을 수 있을 정도로 엄중한 의무’가 되니까 산재 대책을 마련하기 시작한 거죠. 더 이상 법 적용에 예외를 두지 말고 ‘노동자의 목숨보다 다른 것들을 중시할 수 없다’는 원칙을 끝까지 지켜야 중대재해처벌법의 목적을 이룰 수 있어요.
대부분의 산재는 소규모 사업장에서 일어난다
일터에서 일어나는 사고사망의 80%가량이 50인 미만의 소규모 사업장에서 일어납니다. 그런데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될 때 5인 미만 사업장은 아예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었고, 5~49인 사업장은 적용이 2년 유예되었죠. 5~49인 규모의 사업장에서 일어나는 산재사고는 전체 산재의 42.2%에 달하고,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도 전체 사망자의 41.8%를 차지합니다. 산재를 줄이려면 소규모 사업장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알면서 기업도, 정부로 손을 놓고 있다가 이제 와서 법 적용을 피해갈 대책을 주문하고 있습니다.
예방 ‘안 해서’ 생긴 반복성 산업재해가 대부분
우리나라 산재의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는 ‘반복성 재해’ 라는 거예요. 작년에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들의 재해 유형을 보면 ‘떨어짐’, ‘끼임, ‘무너짐’ 등의 구시대형 재해가 75% 이상입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구시대형 반복성 재해를 예방하는 데에 높은 수준의 과학적 시설이나 안전장치가 필요한 게 아니라고 지적해요. 산재예방의 기본 원칙들만 지켜도 상당수의 중대재해들을 예방할 수 있는데, 기본적 안전조치를 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쓰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참사가 반복된다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경영책임자의 의지가 중요한 겁니다. 경영책임자의 의지가 산재예방에 미치는 영향은 소규모 사업장일수록 더욱 크다고 해요.
중대재해처벌법, 무력화 아닌 강화가 필요한 때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한 범죄는 재범률이 다른 형사범죄보다 2배 이상 더 높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이전에 이뤄진 연구에 따르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범재의 재범 비율은 97%, 3범의 비율은 76%로 나타났어요. 3년 동안 전과 9범 이상인 사람도 352명에 달했죠. 실형을 받은 사람의 비율이 3년간 4.4%에 그칠 정도로 솜방망이 처벌이 이뤄지다 보니 또다시 안전에 소홀하고, 산재사고가 반복되는 겁니다. 중대재해를 만들어낸 기업범죄의 처벌을 더 이상 유예해선 안 되는 이유예요.
노동계에 의하면 최근 여러 현장에서 허위로 사업장을 분리하거나, 실질적으로 근로자인 사람을 사업소득자로 계약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해요. 사업장에 고용된 상시 근로자의 수를 적게 만들면 중대재해처벌법 등 여러 규제를 피해갈 수 있기 때문이죠. 또한 실질적 경영책임자가 처벌을 피하기 위해서 바지사장에게 안전보건 업무를 맡기는 일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중대재해처벌법을 약화시키고 있는 각종 꼼수들을 막을 대책이 마련되어야 할 때 입니다.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