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프랜차이즈 브랜드가 가장 많은 국가라고 합니다. 약 1만여개의 브랜드가 있는데요, 우리보다 국토가 훨씬 큰 미국엔 3000여개의 프랜차이즈가 있고 ‘식도락의 나라’라는 일본도 1300여개의 프랜차이즈가 있는 걸 보면 한국이 ‘프랜차이즈 왕국’이라 불리는 게 이해가 됩니다. 프랜차이즈 브랜드 수가 빠르게 증가하면서 자연스럽게 가맹점 수도 늘고 있어요. 2021년 말 기준으로 전국의 가맹점 수는 33만개가 넘습니다.
한국이 프랜차이즈 ‘왕국’인 이유
왕국은 군주가 권력을 갖고 다스리는 나라를 뜻하잖아요. 한국에서 프랜차이즈 산업이 매우 발달했는데도 ‘프랜차이즈 선진국’으로 불리지 못하는 이유가 그야말로 ‘왕국 체제’라서가 아닐까 싶어요. 해마다 프랜차이즈 업계에선 갑질, 불공정 거래 등의 이슈가 떠오르지만 잠깐 시끄러워질 뿐 크게 바뀌지 않죠. 갑질 논란이 있었던 브랜드에서 비슷한 문제가 반복되고, 가맹점에게 횡포를 부리는 브랜드로 악명이 높아졌는데도 본사의 영업이익에는 타격이 전혀 없는 일이 이어지고 있어요. 이런 일들을 지켜보면서 무력감이 들 뿐만 아니라 ‘프랜차이즈 산업구조 자체가 착취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건가’하는 회의감이 들어요. 대체 뭐가 문제인 걸까요?
프랜차이즈 산업에 여러가지 문제가 있지만, 미션100은 그중에서도 ‘필수품목’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요. 필수품목이란 가맹점이 꼭 본사에서 구매해야만 하는 원·부자재를 가리키는 말이에요. 프랜차이즈 산업의 가장 큰 특징은 소비자가 어떤 매장을 방문하든 균일한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할 수 있다는 거잖아요. 동일한 상품인데 지점마다 편차가 크면 같은 브랜드라고 할 수 없겠죠. 여러분도 프랜차이즈 음식점을 방문했을 때 ‘이 매장은 유독 맛이 없다’ 싶었던 경험이 있으시죠? 가맹점이 브랜드의 동일성을 유지하지 못할 때마다 프랜차이즈 브랜드의 가치가 떨어질 것이기 때문에 본사가 필수품목을 구매하도록 강제하는 건 합리적으로 보여요.
5,800원에 사들인 커피를 34,000원에 판매
그런데 브랜드 가치를 형성하고 유지하기 위한 ‘필수품목’을 본사가 폭리를 취하는 수단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아 문제입니다.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공산품을 필수품목으로 지정해 구입을 강제하는데, 시중 가격보다 훨씬 비싸게 판매해 물류마진을 남기는 것이 대표적이죠. 모 카페브랜드의 경우 외부에서 사들인 커피의 가격을 6배 가까이 부풀려 판매했다고 전해졌어요. 본사는 발주량과 판매량을 비교할 수 있기 때문에 더 싼 곳에서 물품을 구매해 대체하기가 어렵고요, 필수품목을 다른 곳에서 구매하는 게 적발되면 본사로부터 계약해지 등의 불이익을 받을 수 있어요.
고깃집에서 머리 끈이 필수품목?
최근에는 ‘이게 필수 품목인가?’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무분별하게 필수품목의 종류를 확대하는 경우도 등장했어요. 한 외식업 브랜드의 경우 매장 운영과 무관한 머리 끈·거울·가방고리를 필수품목에 추가해 강매하면서 논란이 됐습니다. 이 브랜드는 회사 로고가 새겨진 냅킨·물티슈 등을 판매할 때도 시중 가격의 2배에 이르는 값에 판매했다고 하죠.
비싼 값에 ‘상하기 직전’ 닭 판매, 환불도 거절
필수품목으로 지정해 꼭 본사에서만 구입하라고 해놓고 품질이 떨어지는 원재료를 공급하기도 해요. 최근에는 모 치킨브랜드 본사가 상하기 직전의 생닭을 가맹점에 떠넘기고 있다며 점주들이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본사는 ‘신선육’이라고 했지만 닭에서 불쾌한 냄새가 나서 도저히 판매하지 못한 채 버리게 되거나, 소비자로부터 ‘닭 상태가 안좋다’는 컴플레인이 들어와 영업에 지장을 받는다고 해요. 몇몇 점주들이 본사에 닭의 신선도를 문제 삼았지만 교환·반품을 거절당했습니다.
‘영업이익 왕’의 비결은 물류마진 폭리
이 치킨 브랜드는 수년 전부터 가맹점 횡포 문제가 여러 번 논란이 됐는데도 여전히 승승장구하고 있어요. 영업이익률이 동종 업계 평균보다 3배나 높습니다. 한 언론사는 ‘경쟁사에 비해 물류마진을 두 배 가까이 높게 책정한 것’이 이 치킨 브랜드의 영업비결이라고 지적했어요.
로열티까지 따로 내는데… 물류마진은 점점 늘어나는 추세
가맹점이 본사에 지급하는 브랜드 로열티를 제외하고, 필수품목에 마진을 붙여 팔아 얻게되는 돈을 ‘차액가맹금’이라고 하는데요, 이 차액가맹금의 비율이 업계 전반에서 늘어나고 있어요. 치킨 업종은 매출액 대비 차액가맹금 비율이 2020년 5.7%에서 2021년 7%로 늘었고, 분식 업종은 4.5%에서 5.9%로 늘었죠. 본사가 물류마진으로 취하는 이익이 높아질수록 가맹점은 이윤이 줄어들게 됩니다.
필수품목의 종류를 최소화하면 될까?
이런 문제를 바로 잡고자 공정거래위원회는 올해 프랜차이즈 본사의 필수품목 지정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규제를 만들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공정위는 가맹점 운영과 관련성이 떨어지는 물품까지 필수품목으로 지정하는 행태를 막아 가맹점주의 수익을 확대하고 소비자 가격도 안정시키겠다고 해요. 그러나 필수품목의 범위를 최소화한다고 해도 마진율을 규제하지 못한다면 본사가 차액가맹금으로 이익을 확대하고 있는 지금의 문제를 바로잡을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본사가 독점적으로 공급하는 소스류 등에서 마진을 대폭 늘린다면 바뀌는 게 별로 없을 수 있다는 얘기죠.
프랜차이즈 도입 40년, 이제는 선진화돼야 할 때
우리나라에 프랜차이즈 산업은 1997년에 처음 도입됐고,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퇴직자들이 소규모 창업에 관심을 가지면서 폭발적으로 성장했어요. 경제위기로 직장을 잃은 사람들에게 프랜차이즈가 재기의 희망을 심어주었죠. 퇴직자들이 프랜차이즈 가맹점 개업을 고려하는 건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프랜차이즈가 이러한 사람들의 희망을 착취하는 사업이 아니라, 본사와 가맹점 모두 이익을 볼 수 있는 사업이 되려면 불공정한 거래를 막을 수 있는 제도가 하루빨리 마련돼야 합니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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