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SPC 계열 샤니 제빵 공장에서 55세 노동자 고 모 씨가 반죽 기계에 끼여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숨진 고 모 씨는 두 딸을 둔 어머니, 워킹맘으로 아이를 키우기 위해 10년여 동안 하루도 빠짐 없이 공장에 나와 열심히 일을 해왔다고 합니다. 남겨진 유족들은 “가족과 일에 책임감이 컸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두 딸을 남기고 가정에 완전히 날벼락이 친 상황”이라며 울분을 토했습니다. 정부와 기업은 이렇게 안타까운 사고를 막기 위해 법과 제도를 수정하고, 안전에 투자하겠다는 등 재발 방지 약속을 말하고 있는데요. 그러나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고 모 씨처럼, 기계에 끼여 다치거나 사망하는 노동자들이 매달 발생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번주 미션100은 노동자들의 사망사고를 왜 막지 못했던 것인지, 그 근본적인 원인을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1000억원 투자 약속에도 한 달에 한 번 꼴로… 멈출 수 없는 사고
지난해에도 SPC 계열사 공장에서 고 모 씨와 유사한 끼임 사고가 발생한 적이 있습니다. 평택의 SPL 제빵공장에서 20대 여성 노동자가 샌드위치 소스를 만드는 기계에 상반신이 끼어 숨지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었는데요. 해당 사고가 불매운동으로 이어지자 허영인 SPC그룹 회장은 21일 대국민 사과에 나서며 재발방지 방안으로 노동자 안전을 위해 3년간 안전관리시스템에 1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SPC 경영진의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에도, 산재 사고는 끊이지 않았습니다. 지난 4월 SPC의 계열사인 SPL 공장에서 40대 남성 노동자가 2도 화상을 입은 데에 이어, 5월에는 50대 여성 노동자가 기계 체인에 팔이 끼였고, 6월에는 30대 노동자가 기계를 고치다 손가락이 부러지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또한 고 모 씨의 사건이 발생하기 몇 달 전부터 이번 사고가 발생한 샤니 제빵공장에서는 노동자들의 손이 끼이는 사고가 발생해 샤니 측이 충분히 위험을 예측했고 막을 수 있었던 사고가 아니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반복되는 끼임 사고, 누구의 책임인가
올해 SPL 제빵 공장에서 작업 중에 사망한 20대 노동자의 유족 측은 허영인 SPC 그룹 회장과 강동석 SPL 대표이사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고소했습니다. SPL 공장의 안전을 책임지는 SPL 대표이사와 SPC그룹 전체 계열사들의 필요 인력과 예산을 충분히 투자해 안전체계를 갖춰야 할 SPC 그룹 회장 모두가 이번 끼임 사고에 책임이 있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사건을 담당하는 고용노동부 경기지청 측은 허영인 회장이 이번 사고에 직접적인 책임이 없어 송치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유족 측과 정부기관의 의견이 대립하는 상황입니다.
정부기관은 사고 공장이 SPC의 계열사이긴 하지만, 경영과 재무가 독립되어 있고, 경영책임자도 따로 존재해 허영인 SPC 회장이 직접적으로 관여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현행 중대재해처벌법은 처벌 대상을 '사업을 대표하고 총괄하고 있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 및 해당 사업에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경영책임자'라고 규정하고 있는데요. 정부기관은 허영인 회장이 현재 SPL의 사업에 대해 경영을 하지 않고 있어 직접적인 총괄 및 안전보건 책임이 없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그러나 유족 측의 주장은 다릅니다. 허영인 회장이 계열사들의 가장 많을 지분을 가지고 있는 최대주주이며,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경영인이라는 것입니다. 유족 측은 허영인 회장이 세운 지주회사, 파리크라상(허영인 회장이 63%의 지분을 보유)이 SPL의 100% 지분을 보유해 실질적인 지배권을 가지고 있기에 안전 사고를 예방할 인력과 예산을 투자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허영인 회장이 SPC 그룹 계열사들의 안전시스템을 위해 1000억원 투자를 약속했다는 것이 그 증거라고 합니다.
일부 전문가 및 시민단체는 반복되는 끼임 사고를 각각의 현상으로 따로 보지 말고, 구조적으로 봐야 한다고 합니다. 끼임 사고가 “작업자의 단순한 부주의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SPC 계열사들의 안전시스템 부재라는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안전시스템의 부재는 계열사의 대표이사가 아닌 실질적인 투자 권한과 지배력을 가지고 있는 그룹의 회장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주장합니다.
바지사장 만들어 중대재해처벌 피하기?
실질적인 관리∙경영의 책임이 있는 사람을 처벌해 한 사람이라도 많은 노동자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만들어진 중대재해처벌법. 그러나 중대재해처벌법은 법 조문이 모호해 재벌들에게 바지사장을 내세워 책임을 피하게 만들 수 있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법률 안에서 “경영책임자등”이라고 처벌 가능 대상을 정의했지만, 이를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방식을 취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중대재해처벌법에서 말하는 “경영책임자등”이란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 또는 이에 준하여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입니다.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 또는 안전보건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라는 조항이 모호하기 때문에 많은 기업들은 아예 각자 대표이사를 세워 형식상의 회사 경영과 안전보건 업무를 전담시키는 전략을 취하고 있습니다. 진짜사장은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시 바지사장이 회사의 경영과 안전보건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고 주장하며 책임을 회피하기 위함입니다.
실제로 바지사장인 대표이사는 실형을 선고받고, 회사의 대다수 지분을 가지고 있는 진짜 사장은 처벌을 피해갔다고 언급되는 사례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지난해 3월 한국제강의 사내하청 노동자가 작업장 설비 보수 도중 1.2t의 방열판에 깔려 숨지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한국제강은 작업 과정에서 중량물 취급에 대한 작업계획서도 없이 오래된 섬유벨트를 계속 사용하도록 했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검찰은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저버린 한국제강의 대표이사를 구속했고, 지난 4월 징역 1년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러나 창업자 2세이자 한국제강의 또 다른 대표이사는 형사처벌을 피한 것으로 나타나 진짜 사장은 중대재해처벌을 피해 가고 월급사장이 ‘방패막이’가 됐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번에는 달라져야 한다
노동자 ㄱ씨의 딸이 "작년에 큰 사고 있고 나서 달라진 거 있냐"고 물었을 때, ㄱ씨는 ‘달라진 거 없어. 회사가 그렇지 뭐’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작년 SPC에서 일어난 반죽기계 끼임 사고는 30만원짜리 인터록(자동으로 기계가 멈추는 안전센서)이 설치되지 않았던 것이 노동자 사망의 주요한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됐는데요, 이번에도 노동자의 몸이 끼었던 기계에 인터록이 없었습니다. 사람이 반복적으로 죽어도 전혀 달라지는 게 없는 회사, 바뀌게 만드려면 중대재해처벌법이 제기능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안전 조치를 마련할 권한이 있는 진짜 책임자들이 처벌을 피할 수 없도록 만들어야 '이번엔 회사가 달라졌다'는 말이 나오게 될 겁니다.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