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 집을 가져간 두꺼비도 실은 좋은 집이 필요했을텐데

[월간 사생활] 01. 나의 사적인 공간, 집

2021.03.18 | 조회 8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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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사생활

지극히 사적인 공간 속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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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도 집이 있는데, 내 집은 어디일까? 작은 아버지의 집에 살던 어린 시절, 난 이런 생각을 자주 했다. 쟤 집으로 돌려보내라니까 작은 아버지는 할머니에게 엄한 목소리로 꾸짖듯 말했다. ‘쟤 집’이라는 말은, 작은아버지 집이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는 뜻 이였다. 내가 돌아가야 할 집이 있었다면 주눅 든 할머니와 무서운 작은아버지를 피해 당장 그 집으로 가고 싶었지만, 그런 곳은 없었다.

가끔 작은아버지는 웃으며 농담하듯 말하셨다. “너네 집으로 언제갈래? 너 집 가서 살아야지 못생긴 꼬맹아!” 밤마다 내가 잠든 줄 알고, 나를 보면 아빠 생각나서 싫다던 할머니를 향한 작은아버지의 푸념을 들어왔기에 그것이 농담이 아니라는 건 어린 나이에도 단숨히 알 수 있었다. 작은 아버지의 핀잔은 나에게 통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못 알아 들은 척, 재밌다는 듯 베시시 웃었다. 내가 웃으면 작은 아버지는 말이 안 통한다는 듯 내게서 등을 돌리셨다. 짓궂은 말도 웃으며 넘기는 법을 자연스레 익혔으니 작은아버지를 통해 배운 사회생활 이었다고 치자. 아무튼 나에게 웃음은 강력한 무기가 되었고, 그 덕에 난 어딜 가든 참 잘 웃는 아이라는 얘기를 들으며 자랐다.

하지만 집 없는 마음은 떨칠 수가 없었다. 밥을 먹다가도 텔레비전을 보다가도,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시다가도, 화장실에서 손을 닦다가도 문득 진지하게 되뇌었다. 내 집은 어디일까? 나를 따뜻하게 품어 주는 곳이 이 세상에 있을까? 7살이었지만 나름대로 진지한 고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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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아버지의 집은 넓었지만 그 안에서 나에게 허락된 공간은 결코 넓지 않았다. 작은아버지의 방은 절대로 들어가선 안될 곳, 사촌 오빠의 방은 잔소리를 듣고 내쫓기는 곳이었다. 집안의 권력은 이 두 남자들이 쥐고 있었고. 나는 거실, 식탁, 마당에서도 그들의 심기를 불편하지 않게 해야 했다. 할머니도 내게 작은아버지 말 잘 들어라, 그래야 고등학교 졸업 할 때 까지 이 집에서 살 수 있어라며 당부하시곤 했다.

공간, 사물, 음식과 같은 물리적인 것뿐만 아니라. 도드라져 보이지 않기 위한 긴장, 나의 분수를 알아야 하는 것, 함부로 웃거나 울지 말 것 등 정서적으로 지켜야할 규칙도 있었다. 그들의 일부와 나의 일부가 함께 공유 될 수 없다는 '보이지 않는 선' 이 명확히 존재했다.

나는 어른들에게 냐고 묻지 못했다. 까닭을 모르는 미움에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몰랐다. 할머니가 가족들에게 꾸중을 듣는 것도 나 때문이고, 내가 이 집에 떠맡겨진 것도 나 때문이고, 내가 못났다는 어른들의 말을 들으며, 어렴풋이 짐작해야 했다. '그래, 나 때문인거구나' 라고. 차라리 나는 나 스스로가 이 모든 것에 무심해지길 바랐다. 하지만 마음이 늘 심심했다. 얘기할 사람이 필요했고 때론 장난을 치고도 싶었으며 어리광도 가끔 피우고 싶었다. 더 잘 웃으면서 미움도, 비난도 잘 넘기면 어른들이 나를 조금은 예뻐해주지 않을까 기대했다그런 기대를 안고 다정함이 필요한 만큼 많이 웃었다.

덕분에 성과를 보기도 했다. 삼겹살을 구워먹을 때 작은아버지가 팍팍 먹어라 못난아라고 말씀 해주시기도 했고, 수학문제가 어려워서 연필을 물어뜯고 있을 때 이 돌 머리야 이것도 모르냐하시면서 도움을 주신적도 있다. 고모들도 나를 못난이라고 부르면서도 목욕탕도 데려가 주고, 바닷가, , 백화점에도 나를 데리고 다니셨다. 미운 정도 정이라고 고모들은 말씀하셨다. 나는 잊지 않으려 했다. 이 정도가 딱 나에게 걸맞다는 것을. 외로움을 금세 느끼긴 했어도 나는 그 들 덕분에 집에서 지낼 힘을 얻을 수 있었다. 그래도 나는 집이 있지 않은가, 비바람을 막아주고 밥을 먹고 잠을 편히 잘 수 있는 집이. 다행인 부분들을 생각하려 애썼다. '여기서 주욱 살고 싶다.' 그런 생각이 짙어졌다.

그러나 그 생각이 짙어 지게 된 건 아빠의 집과, 내가 아는 사람들이 없는 곳에 남겨질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술 냄새만 풍기는 곳, 어둡고 꾀죄죄한 꼬마 아이들이 있는 곳, 그런 곳에 버려지지 않기만을 바랬다. 말 잘 듣고, 잘 웃고, 할머니 곁에 꼭 붙어 있으려했다. 밤마다 할머니 손을 꽉 잡고 잤다. 그 손만이 내가 붙잡아야 할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며. 희미하게 느낀 행복들을 내일도 무사히 지키고 싶었다.

할머니는 나의 부모에 대해 언제나 비슷하게 이야기를 해줬다. 솔직하게는, 언제나 욕했다. 할머니의 긴 욕을 요약하자면 '정말 한심한 인간들' 이 요지였다. 나는 그 둘에 대해 그렇게 이해했다. ‘그런 사람들이구나’. 할머니는 나에게 그렇게 아들 욕을 했으면서도 가끔 나를 데리고 그 한심하다는 아들 집에 갔다. 위치는 자주 바뀌었고 어딘지도 몰랐지만 엄청 먼 곳 이었다. 꼬불꼬불 한 길을 올라가는 버스 안에서 토를 무진장했던 몸의 기억만큼은 잊을 수 없다. 그 집에 간다는 걸 생각만 해도 나는 멀미가 났다. 내 몸과 마음이 그 집 가기를 거부하는데 할머니는 나에게 왜 이러는 걸까, 할머니도 그렇게 그를 욕 했으면서’. 불만을 잔뜩 품고, 할머니가 만든 반찬 짐을 잔뜩 들고 그의 집에 가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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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산다는 머나먼 그 집에 관해 기억나는 인상은, ‘무서움, 께름칙한, 이런 곳에 사람이 산다고?’ 이었다. 불빛도 없는 조용한 골목 깊은 곳에 자리한 허름한 집. 작은 아버지의 큰 집과 비교가 됐다. 아빠 얼굴은 울긋불긋했고 몸 에서는 술 냄새가 풍겼다. 그의 옆에는 내 오빠라고 하는 얼굴이 하얀 남자 아이가 있었다. 오빠는 날 귀여워 해줬다. 아빠라는 사람도 날 귀여워하겠다고 술 냄새가 베어 있는 따가운 얼굴을 내게 부볐다. 끔찍했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엄청난 분노를 나와 할머니에게 쏟아내며 오빠와 나를 비난했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그에게 맞았다. 오빠는 덩치가 커서 의자로, 나는 덩치가 작으니까 손바닥이나 재떨이로. 그런 경험들이 쌓여 그 집에 가는게 점점 싫어졌다. 그와 내가 무슨 이유로 같이 살지 못하는지에 대해서는 몰랐지만 이런 사람과 같이 안 사는게 천만다행이라 생각했다. 나는 작은 아버지 집에서 고등학교를 졸업 할 때 까지 꼭 살아야 한다고 다짐 했다. 작은 아버지는 술을 마셔도 나를 때리지 않았고 심한 욕도 안하셨으니까. 집도 넓었고 화장실도 따듯했으니까. 혹시라도 할머니가 그 무서운 집에 나를 두고 갈까봐 두려웠다. 할머니에게 그 집에 가기도 싫다고 울었다. 할머니는 내가 영문도 모르게 맞았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 그 집에 나를 데려갔다. 나는 너무 괴로웠다. 오락가락 하는 아들의 말에 할머니도 속아서 인걸까. 그는 정신 차리고 살아보겠다는 다짐을 할머니에게 줄곧 했지만, 언제나 그는 무너져있었다.

그에게 맞았을 때도, 작은아버지와 사촌오빠가 구박을 받을 때도, 나는 혼자 울었다. 이불을 돌돌 말고 그 안에 구겨져있었다. 말할 사람이라곤 할머니 뿐 이었지만 할머니는 그 상황을 못 본 척 하거나 내게 견디라 했다. 사내들의 권력에 우리 할머니도 짓눌려 있던 것이다. 할머니가 나를 달래는 것과 내가 할머니를 달래는 것만으로는 역부족할 만큼 상처에 취약한 늙은 노인과 어린 여자아이였던 것이다.

돌돌 말린 이불안에서 나는 상상했다. ‘이곳이 뱃속 안이라고 생각하자, 아직 내가 세상에 태어나기 전이야, 이곳은 안전해그 뱃속 집은 고통이 없지 않을까 상상했다. 그 안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 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선 또 엉뚱한 생각을 했다. ‘만약 아기집보다도 먼저 내가 있던 곳이 있다면, 그런 곳이 있다면?’ 나는 그곳으로 가고 싶었다. 내가 있어도 되는 을 나는 간절히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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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7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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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영📓의 프로필 이미지

    서영📓

    0
    over 4 years 전

    첫 문장만 보고 작가님 글인지 알아채고 읽는 내내 침전된 무엇을 보는 것 같았어요. 이번 글을 읽으면서는 제가 아이를 낳고 제 옛날 일들을 회상하며 제 상처를 들여다보던 일이 떠올랐어요. 사실 요즘도 옛날 생각을 많이 해요. 저는 그것이 단순히 그들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것이라고 여기지 않아요. 도리어 자신의 삶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것이지요. 사랑받으려고 억지로 웃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이제 알고, 어두운 골목길에 서있는 아이를 그냥 못 본 척 지나치지 않으리라. 작가님 늘 응원할게요!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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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서영

    0
    over 4 years 전

    사실 저는 전생을 믿거든요.ㅎㅎ 뱃속 태아이기 전에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구약성서의 이야기처럼 어떤 영원한 낙원에서 살다 지상으로 쫓겨난 건 아닌지. 그런 쓸데없는 상상을 한답니다. 참으로 잘 견뎌오셨어요. 앞날에 결국 작가님만의 집을 발견하리라 믿어요.

    ㄴ 답글 (1)
  • 김트루의 프로필 이미지

    김트루

    0
    over 4 years 전

    내가 있어도 되는 '집'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무섭다고 느낄 정도로 순간 지금 제가 있는 이 집이라는 공간이 낯설게 느껴지더군요. 내가 집을 선택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집이 나를 선택할 수 도 있다는 다른 전환의 사고를 가져보았네요. 그러게요. 정말 내가 있어도 되는 '집'을 저는 발견했다고 느끼는데 작가님께서도 외면하는 기억을 마주하셔서 그 '집'을 찾으셨길 바라겠습니다:)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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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R의 프로필 이미지

    JR

    0
    about 4 years 전

    집이라는 게 항상 꼭 따뜻한 보금자리가 되는 건 아니더라고요. 계셔도 되는 집을 찾으셨기를, 조금은 편히 지내고 계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ㄴ 답글
  • VANA의 프로필 이미지

    VANA

    0
    about 4 years 전

    제목부터 와닿는 글이었어요..! 그날의 어린 아이를 꼭 안아주고 싶어지는 글이에요. 저도 이불 속에서 숨죽여 울었던 날이 많아요. 어릴적 트라우마라는 것은 사실 극복되는 게 아니라 그저 무뎌지는 느낌이랄까.. 그런 점에서 위로드리고 싶은 글이었습니다.

    ㄴ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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