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살아온 집에는 상처가 있다. 지워지지 않는 벽지의 얼룩처럼 온갖 기억들이 집 여기저기에 들러붙어 있다. 가족에게 받은 고통, 내가 그들에게 주었거나 그들로부터 들은 뼈아픈 말들은 사라지지 않고 집 구석구석에 묻어있다. 집은 안식의 공간이어야 하지만 상처의 쇼윈도이기도 하다. 김영하 작가님의 여행의 이유의 책 한 구절이다. 이 구절을 보고 너무 공감되어 몇 번이고 되찾아 읽었다.
누군가 본인의 가족을 ‘화목’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소개했다. 반대로 내 가족을 소개해야 할 때 생각난 적 없는 단어이다. 어릴 적 부모님은 많이 싸우셨다. 모든 부부가 싸우며 지내듯 그렇게 지나가는 일이겠지, 머리는 생각하지만 마음은 아니었다.
그럴 때 집에는 늘 술이 있었고, 큰 소리가 오갔다. 누구도 지기 싫어하며 한 발짝도 물러섬 없이 서로의 의견과 생각만을 팽팽하게 주장하며. 서로의 이야기는 듣지 않는다. 난 방에서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서 쓰고 노랫소리를 크게 틀어놓는다. 소리를 줄였다 키우기를 반복하며 밖의 상황을 살피었고, 무사히 잠잠해지길 속으로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어엿한 성인이 된 지금, 시간이 많이 흘렀으니 조금은 상황에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마음이 생겼을 줄 알았다. 그러나 여전히 의연하지 못하며 이리저리 눈치 보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애쓰며 마음졸이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매 순간 집을 떠나고 싶다고 생각을 자주 하며 여행도 자주 갔다. 잠시라도 멀어져 있으므로 내 마음이 조금은 평안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이 있다. 아주 멀리 떠나고 싶다. 몸이 멀어져야 마음을 조금이라도 놓을 수 있기 때문에. 하지만 금세 현실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기에 현실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매일 마주하는 얼룩진 벽지 위에 나를 무너뜨리지 않을 벽지를 새로 붙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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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서영
집을 떠나온 입장에서, 집에서 버틸 수 있는 사람이 더 강하고 심지 굳은 사람인 것 같아요. 마음의 벽지라는 게 아무래도 살점 같은 성질이 있어서 시간 지나면 말끔이 아무는 거 같아요. 그게 언제냐의 문제지.. 응원합니다. 슬슬 벚꽃이 피는데 가까운 곳으로 여행이라도 다녀오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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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
무뎌진 상처를 들여다보는 글이었어요. 화목을 떠올리는 사람의 축에 속하는 저로서는 작가님과 서로 다른 꼴의 가족의 의미를 사석에서 더 이야기해보고 싶었던 글이었네요. 화목을 떠올리는 사람에게도 실은 상처는 있기 마련이거든요. 아주 멀리 떠나고 싶다는 문장을 좀 오래 바라보다가, 가족을 떠난 뒤 비로소 삶이 시작되었다던 허새로미 작가님의 죽으려고 살기를 그만두었다가 생각났어요. 벽지를 새로 붙이겠다던 마지막 문장은 저에게는 삶을 시작하겠다는 문장처럼 힘이 있게 읽혔어요. 시작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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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트루
한 평생 가족과 함께하는 집에서 지금은 조금 다른 의미의 가족과 함께하는 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조금은 다른 상처와 다른 갈등 속에서 온전한 저로 있기 위해 알게모를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었죠. 그런 집에서 조금은 멀리 떨어져 저만의 시간도 가져보려고 합니다. 작가님의 시작 또한 제가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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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NA
현실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는 말이 와닿아요..! 글을 읽다보니 우리집 벽지만 얼룩진 줄 알았는데 얼룩진 벽지를 가진 집이 생각보다 많더라고요. 다들 그렇게 힘겹게 버텨왔구나.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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