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쓴다는 것

나는 왜 글을 쓰고 싶을까 by 고래

2021.02.01 | 조회 7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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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사생활

지극히 사적인 공간 속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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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스스로와도 그리고 다른 누군가와도 거리를 좁히지 못 하는 사람이었어요. 늘 웃는 얼굴로 사람들과 두루두루 지냈지만 마음 한 켠으로는 ‘자신의 이야기 밖에 할 줄 모르는 사람이 내 이야기에 무슨 관심이 있겠어’ 라며 단정 짓고 담을 쌓기도 했어요. 글쓰기에 관심이 없던 제가 그동안 적었던 글이라고는 몇 달 간격으로 이따금 쓰던 일기나, 짧은 푸념 가득한 낙서들 뿐이었어요. 꺼내 읽지도 않을 글들을 쓰레기통으로 보내기엔 왠지 아쉬워서 차곡차곡 모아두고만 있었죠. 제 자신이 봐도 알아보기 힘든 글일지라도 내 일부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랬던 저에게 ‘글쓰기’ 라는 문이 보인 건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의 에세이를 읽는다거나, 제 이야기를 적어 본 적이 없던 저에게 나타난 그 문이 스스로와의 거리를, 그리고 타인과의 거리 또한 좁힐 수 있는 통로가 되리란걸 써보기 전까지는 절대 몰랐습니다.

처음으로 읽게 된 에세이는 고수리 작가님의 ‘우리는 이렇게 사랑하고야 만다’ 였어요. 상처난 마음의 조각들을 하나 하나 붙여가며 ‘이것 또한 나의 소중한 고유함’ 이라 말씀하시는 작가님의 글에서 많은 위로를 느꼈어요. 그 후 연이어 읽게 된 에세이들을 통해서도 지극히 개인적인 부족함과 연약함을 공유하며 사람들은 서로 위로를, 그리고 감사를 나누고 있다는걸 느꼈어요. 동시에 저는 궁금해졌어요. ‘자신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용기는 어떻게 생기는 걸까, 나도 내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공감이나 위로가 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던 무렵에 연기 워크샵 과제로 '내가 말하고 싶은, 나의 독백'을 적어 갈 일이 생겼어요. 막상 펜을 드니 내가 말하고 싶은게 무엇 인지,뭘 써내려가야 할지를 모르겠더라구요. ‘나는 내가 가장 말하고 싶은 사람에 대해 써봐야겠다' 하고 처음으로 길게 나의 이야기를 써내려갔어요. 저를 키워주신 할머니와의 추억에 대한 이야기를요. 독백을 발표할 때 그 독백을 외운 다음 연기를 해야 될수 있어서 정말 짧게 쓸려 했는데, 쓰다 보니 어느새 A4 용지 두 장의 글을 쓰게 됐어요. 글을 쓰는 동안 할머니가 그립고 후회들이 생각나 마음이 아프기도 했지만, 동시에 해방감과 위로감이 든다는게 신기했어요. 추억들이 글에 묻어나는게 참 좋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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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야기가 낯선 사람들에게 읽혀지던 그 순간엔, 글을 쓰는 동안 내가 느꼈던 슬픔과 그리움을 사람들이 함께 느끼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됐어요. 서로에 대한 어떤 설명 없이도 단 두 장의 글로 우리는 같은 아픔으로 연결되어 있었다는 걸, 나의 아픔을 사람들도 소중히 대해 준다는 걸 경험하게 되었어요. 덕분에 저는 ‘글을 또 써보면, 나도 흩어져 있는 마음의 조각들을 찾고 소중히 여길 수 있을지도…’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내 이야기를 써보자. 라는 낯선 다짐은 신이 제게 삶을 다시 살아갈 기회를 준 듯한 기분까지 들게 했어요.

하지만 꽁꽁 숨어있는 기억을 꺼내 글로 표현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기억의 부재보다 오히려 두려웠던 건,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들 때문이었어요. 덮어두고 싶은 기억들을 솔직하게 마주 하는게 두려워서 쓰기를 거듭 미루는 제 모습을 통해, 오래 들여다보기 힘든 이야기가 제 속에 너무 많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됐습니다. 그러던 중 오랫동안 외면해온 사실을 마주 하게 됐어요.

아빠라고 부르기도, 그를 생각하는 것도 어색했던 어린 시절을 보낸 저는 그와 재회한 어느날에 투박한 검정색 노트 한권을 발견했어요. 노트 사이에 달려있는 빨간색 실의 꼬랑지를 당겨 펼쳐보니 메모장 겸 일기장 인듯 했어요.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사람일까' 궁금해져 몰래 읽었어요. 반듯하게 그어진 줄 칸을 무시하며 휘갈겨진 글씨는 그의 난폭하고도 날카로운 성격을 닮아 보였어요. ‘글씨가 곧 인격이라더니' 생각을 하며 한장 두 장 넘기다가 오래 읽지 못하고 금새 노트를 덮어 버렸습니다. 내용은 여느 일기처럼 반성의 내용이 많았어요. 자기 자신에 대한 자책과, 자신의 '없음'에 대한 원망 섞인 마음이 많이 보였어요. 그런데 제가 덮어버릴 수 밖에 없던 이유는 저와 할머니에 대한 미안함과 후회가 적혀있는 부분을 발견했기 때문이었어요.

저는 그가 쓴 글이 거짓말이라고 생각했어요. 당시에 제게 익숙했던 그의 모습이라고는, 항상 저를 부정하며 단 한번도 미안함을 내비친 적이 없었기에 이런 마음을 가질 리가 없다 생각했죠. 내가 그를 미워해야 할 이유 하나를 강제로 뺏긴 마음에 울컥했어요. 그래서 그가 후회하고 뉘우치고 있다는 사실을 못 본걸로 하기로 했어요. 어릴때 부터 봐왔던, 익숙한 그의 모습으로 기억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야 앞으로도 제가 어색하게 그를 대하며 미워할 수 있었기에, 그의 슬픔 따위는 영원히 외면하기로 했죠.

20년이 지난 지금에야 그때의 내가 덮어 버린건 단지 노트 뿐만은 아니었구나, 나는 노트에 적혔던 이야기들처럼 마주하기 싫은 이야기와 허용하기 싫은 진실들이 나를 휩쓰는게 두려워서 외면이라는 선택을 계속 해왔구나. 막다른 골목에서 저는 과거의 겁 많던 저 스스로와 결국 마주하게 됐습니다. 글쓰기를 통해 마음을 정직하게 적어내려가다보니, 나를 위한 선택은 외면하는 것 뿐만이 아님을 알아가게 되었어요. 두렵다고 말해버리면 괜찮아질 수 있다고, 조금 덜 떳떳한것이 떳떳한 척 하는 것 보다는 좋을 것이라는 마음을 갖게 되었어요. 그리고 겁많고 나약했던 저에게 조금씩 다가가보기로 용기를 갖고 싶어졌어요.

결국 제가 글을 쓰려는 가장 큰 이유는 '나를 위해서' 라고 대답함이 가장 솔직한 것 같아요.글을 쓰며 상처를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기르고 싶고, 조금 더 나를 허용하고 싶어요. 그럼에도 아직 저의 글과 말은 스스로와 타인에게 다가가기를 주저 할 때가 많아요. 글을 써내려갈 동안 커서가 당차게 오른쪽으로 밀려나가기보다는 한 곳에서 오래 깜빡입니다. 잠시 움직였다가도, 이내 다시 돌아가기를 반복 합니다. 허나 쉽고 짧게 쓰며 덮어버렸던 글만큼이나 내 마음을 길게 마주하지 못했던 모습은 반복하지 않으려 합니다. 이글이 저를 소개한 글인지 반성문인지 멋진 자기소개는 못되었지만, 오랫동안 제 마음을 들여다보게 해준 글이었음은 확실한 것 같아요. 글을 통해 스스로와도, 타인과도 나누는 것들이 이제는 점점 더 많아지길 바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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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8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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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영📓의 프로필 이미지

    서영📓

    0
    over 4 years 전

    작가님의 글 속에는 오래 묵혀둔 마음을 꺼낸 용기, 자세하게 적지는 않으셨지만 행간 속에도 그 마음과 용기가 담겨 있네요. 글쓰기가 매번 용기인 저에게도 큰 동기부여를 준 글이었습니다. 앞으로 작가님의 글 잘 읽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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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서영의 프로필 이미지

    최서영

    0
    over 4 years 전

    차마 마주하지 못하고 덮어버린 기억과 감정들.. 결국 내 안에서 썩어들어가는 것 같아요. 썩어버리면 더 들여다보기 싫어지죠. 그런 악순환을 과감히 벗어버리려는 작가님의 다짐이 멋져요. 제 글은 아직 수준이 낮아요. 외면하고 싶은 진실은 편집해버리거든요. 작가님의 통찰을 교훈삼아 정말 진실된 글을 쓰고 싶어졌어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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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간 사생활의 프로필 이미지

    월간 사생활

    0
    over 4 years 전

    다른 표현을 고민해봤지만, 그저 좋았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네요. 잠시 열린 창문 틈으로 고래 님의 삶을 언뜻 엿본 느낌이었습니다. 어떤 글을 좋아하느냐에 대한 건, 각자의 취향과 호불호에 따라 나뉘겠지요. 다만, 전 수려한 문장으로 가득찬 글들보다, 투박하지만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고민'이 여실히 담긴 고래 님만의 글이 너무 마음에 들었습니다. 아무리 잘 쓴 글이라 할지라도 무미건조하거나 색깔이 없을 수 있는데, 고래 님의 글은 아주 분명한 채색이 들어간 글 같아서 읽는 내내 너무나도 좋았거든요. 앞으로도 월간 사생활을 통해 계속 읽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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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이의 프로필 이미지

    조이

    0
    over 4 years 전

    안녕하세요:) 저 또한 글을 쓰면서 해방감과 위로감을 느끼고 있어요, 그것이 계속 저를 쓰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많은 부분이 공감되어 너무 좋았습니다:) 앞으로도 글로 적어주신 '나를 위해서' 많은 진솔한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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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R의 프로필 이미지

    JR

    0
    over 4 years 전

    조심스럽지만 분명한 의지와 용기가 느껴져요. 외면하면 모든 게 해결될 것 같지만 결국 커서처럼 또 그 근처로 다시 돌아가기도 하더라고요. 좋은 마음과 좋은 글을 나눠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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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트루의 프로필 이미지

    김트루

    0
    over 4 years 전

    조심스럽지만 담대한 고래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글쓰기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한 번 고민하게 해주네요. 제가 처음 글을 쓸 때가 생각나면서 앞으로 어떤 글을 써야할까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았습니다:) 앞으로도 월간 사생활에서 좋은 글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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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VANA의 프로필 이미지

    VANA

    0
    over 4 years 전

    고래님의 진솔한 글 정말 잘 보았어요..! 드러내고 싶지 않은, 애써 외면하고 싶은 일들이 누구나 하나쯤은 있잖아요. 저 역시 글을 쓰면서 그런 순간을 마주하려니 용기가 나질 않더라구요. 결국 도망쳐버렸어요. 스스로 상처를 드러내기엔 너무 나약한 사람이구나 싶더라구요. 고래님의 솔직하고 용기있는 글의 울림이 마음 속 깊이 전해졌어요. 저도 언젠가 고래님처럼 용기있게 말하고, 홀가분하게 털어버릴 수 있기를! 고래님 글 보고 용기 얻어갑니다! 앞으로 글도 너무 기대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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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은방의 프로필 이미지

    작은방

    0
    over 4 years 전

    마음의 문이 닫힌 요즘이었는데 글을 읽는 동안 잠시나마 마음이 열리는 것 같았어요. 저는 혼잣말처럼 글쓰기를 해왔는데 마음이 열리는 글을, 누군가와 연결되는 글을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래님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용기를 저도 배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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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은방의 프로필 이미지

    작은방

    0
    over 4 years 전

    마음의 문이 닫힌 요즘이었는데 글을 읽는 동안 잠시나마 마음이 열리는 것 같았어요. 저는 혼잣말처럼 글쓰기를 해왔는데 마음이 열리는 글을, 누군가와 연결되는 글을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래님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용기를 저도 배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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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은방의 프로필 이미지

    작은방

    0
    over 4 years 전

    마음의 문이 닫힌 요즘이었는데 글을 읽는 동안 잠시나마 마음이 열리는 것 같았어요. 저는 혼잣말처럼 글쓰기를 해왔는데 마음이 열리는 글을, 누군가와 연결되는 글을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래님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용기를 저도 배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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