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한 편의 글을 쓴다. 그것이 올 한해 내가 나에게 한 약속이다. 내가 쓴 글들이 책이 되지 않아도 된다는 기조로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매번 내게 글을 쓰는 일은 용기가 필요하다. 무언가가 되지 않아도 좋다고 되뇌곤 했지만, 무언가가 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함이 좋은 동기부여가 되었다. 내 삶의 의미들은 금방이라도 날아가 버릴 것처럼 가벼워서, 내가 기록하지 않으면 내 머릿속에서도 사라져 버리고 만다. 그런 이유로 수시로 메모장을 켜야 하고, 설거지하다가도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쓴다.
두려움보다는 기대감이 앞서 쓴 글인데도, 내 글 아래 달린 댓글을 보면 칭찬보다는 위로가 많다는 걸 발견한다. 내 의도와는 다르게 내 문장들이 어두워 보이는 걸까? 글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는 아버지의 조언과 너무 짧게 문단을 끊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어떤 작가님의 말을, 글을 쓸 때마다 유념한다. 자기검열의 시간이 늘어간다. 주저리 쓰다 보니 글이 또 어두워졌는데, 여하튼! 매주 글을 쓰는 이유는 단 하나. 좋아서 쓴다. 다른 이유는 모두 부수적인 것. 오해받을 일도, 위로받을 일도 아니다.
그러니 제목도 필요 없고, 책이 되지 않아도 좋고, 댓글로 어떤 이야기가 나오든 다 괜찮다. 아주 간결하게 내가 글을 쓰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지만, 이것들을 다시 실행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가 스스로 지은 이름에 갇히기도 했고, 타인의 말이 아파서 가던 길을 멈추기도 했다. 무언가 시작했다면 완결지어야만 할 것 같아 억지로 이상한 걸 만들기도 한 것 같다. 그러나 고독한 것은 또 싫어서 이만하면 충분하지 않을까 성급하게 전송 버튼을 누른다.
어떤 때에는 내 글의 유일한 장점은 내가 나라는 이유밖에 없는 것 같다. 그런데 그 유일한 장점이 지독한 단점이기도 하다. 겉과 속이 투명하여 없는 살림 밑천까지 훤히 들여다보인다. 그래서 내 글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나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내 글은 질그릇처럼 예쁘지도 않고 값어치도 없고 투박해 빠진 것이다. 단점을 지적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나올 것이다.
글쓰기를 자꾸 멈추게 하는 것은, 글다운 글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글다운 글. 사람다운 사람. 삶다운 삶. 나는 자꾸 그런 것들을 생각하다가 새로고침 되고 만다. 글은 글일 뿐이고, 사람은 사람일 뿐이고, 삶은 삶일 뿐이다. 질그릇이 얼마나 못났든 그릇은 이미 기능을 다 하고 있어서, 흉내 낼 필요 없는 것이다. 이 단순한 사실이 매번 글을 쓸 수 있게 하는 용기와 동기부여가 된다.
어릴 적 글쓰기 대회를 자주 다녔다. 지방 소도시에서 몇 없는 문인이었던 엄마가 글쓰기 대회 심사위원 중 한 명이었다. 글쓰기 대회는 처음엔 다니고 싶어서 다닌 게 아니었지만, 어느 순간 다니고 싶어서 다니게 되었다. 주로 봄이나 가을, 볕 좋은 주말에 글쓰기 대회가 열렸다. 미술대회도 함께 열릴 때가 많아 글을 빨리 쓰고 아이들의 그림을 구경하는 걸 좋아했다. 돗자리를 펴고 엎드려 종이 위에 시를 썼다. 소풍 같고 미술 같은 글쓰기. 매주 일요일이면 도서관에 갔다. 워킹맘이었던 엄마는 직접 육아를 하지 않았어도 내게 책을 쥐어주곤 했고, 그게 엄마의 제일 큰 자랑이라 했다.
글쓰기 없이도 살아지는 날도 많았다. 책을 멀리하던 때도 있었다. 인문학은 정말 쓸 데가 없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그러나 글쓰기를 멀리하고, 책과도 멀어진 지 한참이 지나서야 나는 깨달았다. 내 삶에 글쓰기를 대신할 것이 없구나. 이 공허함을 채울 수 있는 게 글쓰기 말고는 없겠구나.
내게 글은 무엇인가. 힘든 순간일수록 투명한 글을 찾는다. 길을 잃어 어지럽고 포기하고 싶을 때, 생면부지와 같은 글을 끌어안고 삶을 버틴 적도 있다. 길을 헤매는 이와 함께 길을 찾는, 온정을 가진 삶을 원한다. 글을 읽고 쓰는 것은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찾기 위함이다. 그런 마음으로 글을 읽고 글을 쓴다. 그래서 아무것도 아닌 내가 글을 쓴다. 돗자리를 펴고 엎으려 글을 쓴다. 여름이고 겨울 같은 날씨에도 봄과 가을의 마음으로 글을 쓴다.
의견을 남겨주세요
조창현
글쓰기는 엄청난 에너지를 필요로 합니다. 인간의 영역 맨 바깥에 존재할겁니다.
서영📓
조창현님! 구독해주시고 이렇게 제일 먼저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의견을 남겨주세요
VANA
글을 쓰며 공허함을 채운다는 말이 와닿았어요..! 일상적인 대화를 주고받는 일은 많아도 삶에 대해,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 받은 일은 글을 쓸 때 아니면 없더라구요. 글을 씀으로 인해 내면이 더욱 공고해 지고 계심이 느껴져 좋았어요! 앞으로도 글을 통해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대화나눠요!
서영📓
작가님과 함께 글을 쓰게 되어 기뻐요. 글을 통해 앞으로 소통할 날들이 무척 기대가 됩니다. 감사합니다!
의견을 남겨주세요
월간 사생활
투박한 글일지는 모르지만 진정 가득 담긴 글이라는 점에서 서영 님만의 고유한 개성이 엿보입니다. 서영님의 한결같은 글쓰기를 응원합니다. 그 글들에 온정 가득 담기길, 역시 응원할게요. 앞으로 계속 읽고 싶습니다.
서영📓
응원해주시고 함께 하게 되어 좋아요! 감사합니다🙏🏻
의견을 남겨주세요
조이
아무것도 아닌 내가 글을 쓴다. 저 또한 같은 이유에서 글을 씁니다. 쓴 다는 것만으로 스스로에게 위로이고 새로운 용기더라구요. 글이 묵직하지 제 마음에 와닿네요. 고맙습니다:)
서영📓
조이님과 함께 글을 쓰게 되어 기뻐요. 힘이 되는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의견을 남겨주세요
고래
담담하고 간결하신 문체에서 작가님만의 확고함이 느껴져요. 글로 쌓아가시는 삶이,가시고자 하시는 길이 점점 더 뚜렷해 지실것같은 글이었어요. 응원합니다☘️
서영📓
멋진 덕담 감사합니다. 고래님과 함께 글을 쓰게 되어 기쁘고 설레요! 저도 응원드려요❤️
의견을 남겨주세요
JR
글쓰기를 자꾸 멈추는 것이 글다운 글을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말이 계속 맴도네요. 멋진 이야기 고맙습니다!
서영📓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의견을 남겨주세요
최서영
온정을 가진 삶, 질그릇을 닮은 글쓰기! 가슴에 와닿는 표현들이 많네요.. 앞으로도 굳건하고 결연하게 계속 펜을 드시기를 기원합니다.
의견을 남겨주세요
작은방
개성이 느껴지고 공감가는 글이었습니다. 매주 한편의 글쓰기 멋지네요 :) 이상한것을 만들기도 했다는 문장에서 공감이 돼서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제목도 필요없고 책이 되지 않아도~ 공감되고 후련함을 느꼈어요.
의견을 남겨주세요
김트루
글을 쓴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인을 실로 느끼는 요즘입니다. 한결같이 쓴다는 것은 훨씬 더 대단한 일임도 물론이고요. 함께 그 대단한 여정을 해볼 수 있게되어 기쁠 따름입니다^^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