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는 더욱더 단단한 사람이 될게요."라고 말한 지 1년이 지났다.
'단단'이라는 말에서 느껴지는 우직함이 좋았다. '우직하다'라는 말은 사전적 의미로 어리석고 고지식하다는 뜻이지만, 실제론 근면하고 성실하다는 의미로 쓰인다. 내가 생각하는 우직함이란, 어리석어 보일지라도 흔들리지 않고 지켜내는 것, 몰두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일과 삶, 어느 하나 안정적이지 못했고 오랜 시간 흔들렸기에, 어리석을지라도 버텨내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점점 어깨가 단단해지는 것이 아닌가.
직업상 큼직한 카메라를 온종일 들고 있는데, 무게 중심이 앞으로 쏠려 어깨가 자연스럽게 움츠러든다. 그런 상태로 10시간씩 일하다 보면 어깨가 단단하다 못해 돌덩이처럼 딴딴해진다. 야근하고 실려 가다시피 버스에 올라도 좋아서 시작한 일이기에 버틸 수 있었다. 아무래도 몸을 쓰는 일이다 보니 고되고, 무리 될 때가 많은데 몸 생각하지 않고 일하다 결국에 몸이 망가져 버렸다. 어깨의 문제라 생각했는데, 카메라의 무게를 고스란히 지탱하고 있던 건 어깨가 아니라 무릎이었다.
여느 날처럼 저녁까지 이어지는 촬영에 양치할 틈 없이 바빴던 하루. 퇴근 시간이 훌쩍 넘어 뒤늦은 양치를 하던 때였다. 칫솔질할 기운도 없어 의무적으로 손을 움직이며 느릿한 양치를 끝내고 칫솔에 물기를 두어 번 털어 내 컵에 꽂으려 돌아서는 순간 “악!” 나도 모르게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갑자기 찌르는 듯한 통증에 주저앉아버렸다. 비명 소리에 놀란 동료들이 뛰어와 부축을 해주기에 괜찮다며 대수롭지 않은 듯 일어서는데 어라, 왜 이러지. 괜찮지 않았다. 제대로 걸어보려 몇 번이고 시도해봤지만, 통증만 더 커질 뿐이었다. 결국, 동료들의 부축을 받고 절뚝거리며 집으로 향해야 했다.
그렇게 큰 병원, 작은 병원 가리지 않고 치료하길 5개월째. 어떤 곳에서도 제대로 된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고, 젊으니 금방 나아질 거란 말만 돌아올 뿐이었다. 조금이라도 컨디션이 나아진 것 같아 카메라를 들면 바로 무릎이 부어올라 통증이 악화돼 카메라를 내려놔야 했다. 우스갯소리로 카메라 알러지 아니냐는 말을 듣곤 쓴웃음을 지었다.
좋다는 마음 하나로 부딪친 일이었다. 어떻게든 사진 찍는 일을 하고 싶어서 스튜디오 청소부터 시작해서, 우여곡절 끝에 원했던 곳에서 일할 수 있게 된 지 채 1년도 되지 않았던 때다. 더 나아지기 위해, 더 발전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노력했다. 삶의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일에 각별했고, 진심이었다. 좋아하는 일을 해서 정말 다행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녔는데, 카메라를 내려놓아야 했을 때 심정은 마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기분이었다. 이대로 가다 일을 못 하는 몸이 될까 무섭고 두려웠다. 몸이 받은 타격만큼 마음마저 고스란히 짓눌린 기분이었다.
둘 중 하나는 멀쩡해야 버틸 수 있을 텐데. 후들거리는 다리와 한껏 단단해진 어깨를 보니 올해는 오로지 정신력으로 버텼구나. 다른 의미로 단단한 사람이 되기는 했으니 반은 성공했다 치자.
오히려 아프기 시작하면서 내면적으로 조금 더 단단한 사람이 됐다. 무너져내릴 때면 곧장 다시 쌓아 올려 단단한 사람인 척하는 편이 더 맞는 것 같지만. 무너지지 않고 살아갈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다시 쌓아 올리는 게 중요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마음이 무너져 내릴 때마다 책을 들었다. 처음엔 현실에서 도망치듯 읽기 시작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긍정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는 걸 깨달았다. 타인의 생각과 상황을 간접 경험하다 보면 깊은 공감과 더불어 내 삶 또한 책 읽듯 관망하게 되는데, 자기 객관화를 통해 파도처럼 밀려오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게 됐다.
무기력할 때면 동기 부여되는 글을 읽으며 더 나은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럴 때 생각만으로 끝내지 않고 어떤 방식이든 액션을 취했다. 행동으로 옮길 때마다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고 그로 인해 부정적인 마음도 조금씩 떨칠 수 있었다. 감정 진압엔 책이 특효다. 기분이 정말 안 좋으면 책 읽을 생각조차 들지 않아 초기 진압이 관건이다. 몇 번의 경험을 통해 습득한 감정 진압법. 이제는 조금이라도 컨디션이 안 좋으면 바로 책을 드는 습관이 생겼다.
책을 읽고 취한 액션 중 하나가 바로 글을 쓰는 것이다. 출근길마다 책을 읽으며 인스타그램에 밑줄 친 문장을 올렸다. 하고 싶은 말이 생기면 덧붙이기도 하면서. 사진 올리려고 시작한 인스타그램인데, 요즘엔 글을 쓰고 싶어서 사진을 올리는 일이 더 많아졌다. 블로그에 글을 쓰자니 거창한 듯하고, 짧은 호흡으로 가볍게 올릴 수 있으면서 무엇보다 놓치기 쉬운 생각을 고스란히 기록할 수 있어 좋았던 것 같다. 쌓여가는 피드를 바라만 보아도 큰 위안을 얻는다. 블로그에 일주일마다 한 편씩 글을 쓰고 싶었는데 매번 늦어진다. 그래도 잊지 않고 이렇게 쓰는 게 어디야. ‘너무 잘하고 있잖아.’ 쫓기듯 치열한 삶 속에서 좀 더 나은 내가 되길 바라며 되뇌고, 되뇌었다.
스물아홉을 몇 시간 앞둔 지금, 비로소 단단한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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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서영
힘들 때 책을 잡고 주기적으로 글을 쓰신다니 멋지네요. 좋은 버릇 들여서 유지하는 게 참 힘들잖아요. 위기에서 불사조처럼 돌파구를 찾아내신 부분도 인상깊었습니다. 앞으로도 단단하고 우직한 글 기대하겠습니다 :)
VANA
불사조라는 단어를 오랜만에 듣는데 그 의미가 와닿네요 :-) 불사조 같은 기세로 글을 써내려가볼게요!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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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사생활
힘들 때 책을 읽고, 또 어떻게든 악착같이 글로 남기려는 모습이 너무 근사하게 보였습니다. 누구나 힘들 때 있게 마련이지만 그 시기를 어떻게 넘기느냐에 따라 그 사람이 어떤 방향으로 성장할 지가 결정된다고 생각해요 전.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가 기대되는 분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글을 통해서도 내적으로 단단단하신 분이 선명히 그려집니다. 잘 읽었습니다.
VANA
월간 사생활을 통해 제 글을 밖으로 꺼내주셔서, 제 마음속 깊은 이야기를 꺼낼 수 있게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글을 통해 더욱 단단한 사람이 된다는 걸 이번 글을 쓰며 다시 한번 느꼈어요. 앞으로도 열심히 써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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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
글을 통해 한분 한분 만나뵐 때마다 저하고 다른 시선과 그럼에도 비슷한 점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네요. 작가님의 글에서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동기가 비슷하답니다. 특히 힘들 때 저도 책을 들어요. 하다못해 인스타그램에 한줄이라도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진 문장 하나를 찾으면 그때서야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아요. 앞으로 작가님의 글을 만나면서도 그럴 것 같아요. 작가님의 그 마음만으로도 단단하신 분 같급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VANA
앗 저도 그런데! 와닿는 문장을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더라구요. 그럴때 마다 글의 힘이 크다는 걸 다시금 느끼는 것 같아요. 제 글에 공감해 주셔서 감사해요! 서영님 글도 기다려지네요! 잘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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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
저도 스물아홉인데,,! 뭔가 공통점이 있는 분을 보니 너무 반갑네요.. 저 또한 자주 생각하고 스스로 되뇌었던 부분들에 대해서 나 말고 다른 누군가 생각하고 있는 분을 보니 스스로에 대해 작은 위로가 되었습니다. 글을 읽고 내가 생각하는 더 나은 삶, 더 나은 나가 무엇인지 잠시라도 고민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생각할 수 있게 해준 좋은 글을 적어주어 고맙습니다:)
VANA
앗 동갑이네요 :) 반갑습니다! 또래이다보니 더 공감되는 일이 많을 것 같아요! 동시대를 살지만 다른 환경 속에서 어떤 삶을 살아오셨을 지 조이님 글도 무척 궁금해지네요!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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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트루
글에서 단단함과 우직함, 한결같은 마음이 느껴지네요. 제가 꼭 지녀야 할 마음가짐들인데 이 글을 읽고 반성했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려면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피부로 느끼고 있는 요즘, 운동은 물론이고 글을 오래도록 쓰기 위해서 책을 게을리하지 않고 몇 글자라도 끄적여보려는 습관을 길러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VANA
저도 매번 게을러지지만 마음을 다잡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같아요 ..! 꾸준한 자극이 중요한 것 같아서 글쓰기 모임에 들어오길 잘됐다는 생각이 들어요 :) 같이 열심히 써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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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내려놓으실때 정말 힘드셨을 마음이 감히 공감이되어요. 저도 예술계열 일을 해서 언제고 이 일을 그만두게될까봐 두려운 마음이 한구석에있지만, 매번 다시 쌓아가는 힘이 정말 필요하다 느끼고있어요. 또내가 좋아하는 이일만큼 저를 단단하게 하는 일이 없는것 같구요... 일과 책을 각별하게 여기신 님의 글을 읽으며 , 무너져도 쌓아가는게 중요하다는걸 다시 맘에 새깁니다. 버텨오심에 격려를 드리고 싶습니다. 앞으로 더 견고하게 다져가실 삶과 글을 응원할게요🧚🏻
VANA
두려운 마음은 잃고 싶지 않다는 의지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요? 그만큼 마음 써서하고 있다는 것이니까.. 좋아하는 일만큼 자신을 단단하게 만드는 것이 없다는 말이 정말 와닿네요..! 앞으로도 좋아하는 일하며 더욱 단단한 사람이 되기를 바랄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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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R
정말 유용한, 감정진압법의 공유 감사합니다. 무기력함이 나에게 오면 자칫 그대로 빠지기 쉬운데 그것을 인지하고 계속 액션을 취하시면서 더 나은 방향으로 노력하시는 점이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저는 알면서도 의지에 지는 때가 많아 더욱 더 반성하게되네요. 잘 읽었습니다!
VANA
뇌과학 책에서 내 상태가 어떻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영향을 받는다고 하더라구요! 나아가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면 더할나위없이 좋은 진압법이 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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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방
감정 진압법 공감가네요. 저도 요즘은 매일 조금이라도 책을 읽으려고 하는게 그런 이유인 것 같아요. 저도 일을 중심에 놓고 살아서인지 좋아하는 일을 내려놓을 때 무척 힘드셨을 것 같은데 다른 분들 말씀처럼 돌파구를 찾아낸 힘이 있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반갑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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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방
감정 진압법 공감가네요. 저도 요즘은 매일 조금이라도 책을 읽으려고 하는게 그런 이유인 것 같아요. 저도 일을 중심에 놓고 살아서인지 좋아하는 일을 내려놓을 때 무척 힘드셨을 것 같은데 다른 분들 말씀처럼 돌파구를 찾아낸 힘이 있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반갑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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