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구독자님.
혹시 뮤지컬을 보면서 여성 배우가 처한 상황이나
여성 배우의 행동 등에 의해
눈살이 찌푸려지거나 불편했던 적 없으신가요?
현재 한국 뮤지컬 시장을 보면 남성 중심 극이 여성 중심 극보다 많고, 남성 배우가 설자리에 비해 여성 배우가 설자리가 부족한 실정인 것을 알 수 있는데요. 또한, 무대 위에서 표현되는 여성 캐릭터의 모습 또한 무언가 천편일률적인 모습이라는 생각을 쉽사리 지울 수 없는데요. 물론 최근에는 '여성 서사극'이라는 단어 하에 <레드북>, <마리 퀴리> 등의 작품들이 만들어지고 있지만 말이에요.
무대 위에 서는 배우는 대상화될 수밖에 없는 존재인 만큼 남성 배우의 대상화와 여성 배우의 대상화 모두 문제가 돼요. 하지만, 오늘은 여성 배우의 대상화에 대해 살펴보려고 해요.
그렇다면, "대상화(objectification)"은 정확하게 무엇일까요? 쉽게 말하면 대상화는 대상이 아닌 어떤 것을 대상으로 간주하는 거예요. 주체(subject)와 객체(object)를 분리하여 인식하기 시작한 근대철학의 산물인데요. 인간을 대상화한다는 것은 주체인 인간을 객체로 전락시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비인간화(dehumanization)'을 뜻해요. 여성 대상화 문제를 다룬 철학자 중 유명한 마사 누스바움(Martha C. Nussbaum)은 여성 대상화는 여성이 어떤 수단이 되거나 여성의 주체가 부정되거나 도구성이 부각되거나 또는 수동적이 되거나 대체될 수 있거나 침해받을 수 있거나 소유되는 것과 같이 여겨질 경우 발생한다*고 했어요. 그녀는 자신의 논문 "Objectification(1995)"에서 대상으로서 간주되는 최소한의 개념 7개를 제시해요.
뮤지컬 <지킬앤하이드>에서 나타나는 여성 대상화
엠마와 루시는 외모적인 측면부터 전통적인 남성의 시점에 따라 성녀와 창녀로 이분화돼요. 엠마는 흰색, 밝은 색의 단정한 의상을 입고 자애로운 미소를 가지고 부드러운 소프라노 톤으로 노래하죠. 반면 루시는 빨간색을 중심으로 어두운색의 의상을 입고 매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메조소프라노 톤으로 노래해요. 이처럼 두 여성의 극명한 대비가 각각 선과 악으로 대비되는 지킬과 하이드와 연결되고, 각각 지킬과 하이드에 의해 대상화되죠. 엠마는 수동적인 태도를 고수하며 지킬이 자신만을 봐주기를 하염없이 기다려요. 루시의 경우 하이드의 요구에 반항하지 못하고 그대로 따르는 모습을 보이면서 동시에 지킬을 통해 새로운 인생이 가능할 것이라는 희망을 갖죠. 지킬/하이드를 중심으로 나타나는 이러한 엠마와 루시의 태도, 그리고 그녀들을 대하는 남성 주인공의 행동은 외모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 또한 남성 권력의 지배하에 있음을 보여줘요.
뮤지컬 <마타하리>에서 드러나는 여성 대상화
본 작품의 창작진 인터뷰를 살펴보면 마타하리의 '주체성'에 큰 초점을 두고 작품을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하지만 무대 위에 구현된 마타하리는 '사랑밖에 모르는 여성'으로 그려지고 전반적인 줄거리와 의상, 행동 등에 있어 남성적 응시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문제점이 있어요. 라두 대령이라는 전통적인 권력을 상징하는 남성 인물에 의해 그녀의 인생이 결정되는 모습을 통해 무대 위에서 남자 캐릭터에 의해 대상화되고 있어요. 동시에 무대 밖에 있는 관객에 의해서도 대상화되는데요. 대표적으로 마타하리가 이중 스파이 혐의를 받고 재판장에 들어설 때 입는 의상과 사원의 춤을 출 때 입는 의상은 그녀를 무대 위에서 성정 대상화로 전락할 수 있게 하죠. 무대 위 마타하리의 의상은 그녀를 완벽하게 '보여지는 존재'로 만들고 무대 위 등장하는 사람들의 시선뿐 아니라 관객의 시선 또한 집중시켜요. 그래서 그녀 자체보다는 표면적인 것에 먼저 이목이 가죠. 마타하리의 선정적인 춤과 몸짓은 두 명의 남자 주인공인 라두 대령과 아르망이 사랑을 느끼게 하는 장치로 작용하는데요. 남성적 응시 권력에 의해 만들어진 마타하리의 모습은 결국 남성 권력에 의해 파괴되고 그녀는 처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되죠.
간단하게 두 작품만을 살펴보았는데요. 이 작품들을 제외하고도 수많은 작품에서 여성의 대상화가 이루어지고 있어요. 그렇다면 한 가지 의문점이 드는데요. 여성 관객이 절대적인 뮤지컬계에서 어떻게 이것이 용인될 수 있는 것일까요? 더 나아가 대흥행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일까요?
대표적으로 두 가지의 요인이 생각되는데요. 하나는 제4의 벽으로 인한 거리감, 다른 하나는 남성 주인공의 시선과 동일화된 여성 관객의 시선이에요.
1) 제4의 벽으로 인한 거리감
무대와 관객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인 '제4의 벽'이 존재하는데요. 즉, 관객이 무대에서 벌어지는 일에 관여할 수 없어요. 그런 만큼 여성 관객은 무대 위의 여성 캐릭터를 자신과는 다른 존재로 인식하게 되는 것이에요. 무대 위에서 대상화되는 여성 배우에게 연민이나 동정을 느낄 수는 있지만, 적극적으로 그 상황에 개입해서 저항하지는 않는 것이죠.
2) 남성 주인공의 시선과 동일화되는 여성 관객의 시선
여성 관객의 위치는 여성 동성애자적인 시선이라기보다는 여자 히스테리자의 위치와 더 유사하고 여자 히스테리 환자는 자신의 생물학적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남성적 동일화에 근거개 여성을 숭배하는 형식으로 여성과 동일시할 수 있는 위치라는 것이에요. 이처럼 멀비(Laura Mulvey)는 여성 관객은 여성 주인공과 동일시할 수 없는 존재이며 오히려 남성 주인공과 동일화해서 남성 주인공처럼 여성을 대상으로 바라본다고 설명해요.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현상을 해결할 수 있을까요?
가장 먼저, 관객이 수동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능동적인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여성 관객이 그와 여성 주인공 간에 있는 제4의 벽의 경계선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거예요. 여성 관객이 여성 주인공의 위치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면 무대 위 여성의 모습은 바뀌지 않을 거예요. 예시로 뮤지컬 <엑스칼리버>는 '기네비어'의 모습을 관객의 의견을 수용하여 기네비어를 더욱더 적극적인 여성 캐릭터로 수정했었죠. 이처럼 적극적인 관객의 의견 제시는 다양한 작품에서 여성 캐릭터의 위치를 충분히 바꿀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뮤지컬이 상업 예술인 만큼 자본적인 측면도 결코 간과할 수 없다는 것이 사실인데요. 이런 맥락에서 남성 중심 서사극이 흥행을 어느 정도 보장한다는 사고의 틀을 깨는 것도 필요해요. 최근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에서는 작품을 제작할 때 '보편성'에 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해요. 전 세대가 함께 공감하고 즐길 수 있는 소재로 극을 만들어 해피엔딩으로 극을 맺음으로써 관객에게 즐거운 경험과 긍정적인 메시지를 제공하고자 한다는데요. 대표적으로 <킹키부츠>, <하데스타운>, <비틀쥬스> 등이 있어요. 이 작품들 모두 브로드웨이에서 흥행에 성공했을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흥행에 성공했죠. 그만큼 남성 중심 서사극에서 여성이 대상화되지 않아도 충분히 흥행에 성공할 수 있다는 인식이 정착하는 것도 하나의 해결책이라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한 마디하며 오늘의 뉴스레터를 마치려고 해요.
무대 위 여성은 '무엇(누구)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 존재해야 하는 존재자여야 한다.
여성대상화가 이루어진 또 다른 작품은 무엇이 있나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구독자님의 의견을 댓글을 통해 알려주세요~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