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강나리

[강나리와 김해경] 아자아자, 하나

불안한 느낌을 저는 빵꾸라고 표현하거든요

2024.05.21 | 조회 1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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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성과 해체

에세이 프로젝트 : 글을 매개로 맺어질 수 있는 삶과 사람, 사랑

1 디자인 김해경, 로고 디자인 이지오
1 디자인 김해경, 로고 디자인 이지오

[빵꾸]_강나리

  쓰는 사람의 하루도 별반 다르지 않다. 벙벙한 속에 양배추 즙을 털어 넣으며 출근길에 나서면 2호선을 반으로 뚝 자른 어느 역마다 내가 있다. 출근길 사람들의 몸짓과 얼굴 표정에는 어떤 규칙이 있어서, 손끝을 조금 더 까딱거리거나 조금 더 입꼬리를 올렸다간 무거운 피로로 점철된 아침의 비장함을 거스르게 될 지도 모르니, 최대한 섞여보기로 한다. 지하철에서 버스로, 정확히 대칭 구조를 이루는 퇴근길에 오르는 저녁까지 하루는 틈의 연속이다. 틈에서 틈으로, 틈이라 함은 입자와 입자의 여백에서, 짓이겨지지 않고 생성되어 부풀어 오르는 과정 속에 있다. 동그랗게, 더 동그랗게. 나를 둘러싸는 것들. 왜 둘러싸지? 나는 입자인데. 둘러싸는 것으로 모자라 아예 나를 구성하려 하는 것들이 있다. 이를 테면 우리가 처음 속한 가족이라는 세계처럼. 그러나 주객이 전도될 순 없지. 둘러싸기 전에 내가 먼저 “있다”. 이러다간 입자는커녕 꼼짝 없이 짓눌려 소멸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봤다면 당신은 시작한 것이다. 멋진 입자가 되는 과정을.

  유독 꽃과 나무가 많은 해방촌의 봄비는 푸스스 부산하다. 5월의 따사로움에 꾸물꾸물 붐비던 땅에 비해 하늘은 얼마나 참을성 있게 침묵을 지켜주었는가. 비로소 내리는 비는 불규칙적이고 불연속적인 그 쏟아짐만으로 “해소” 그 자체였다. 내리는 비를 보며 우리가 ‘시원하다’고 느꼈던 건, 기온이 낮아져서도 있지만 본능적으로 이 해소를 느꼈던 거야. 떨어져 부딪힘에 연연하지 않고 온 하늘에서 사정없이 강하하는 빗방울에서 엄마를 찾는다거나 엉엉 운다거나 하는 어린 아이들을 보았다. 빗방울 하나하나에 대고 그래, 그래. 했다. 비 오는 날마다 꺼내 신는 흰 레인 부츠 앞코를 부러 웅덩이에 찰박댔다.

 

[첫 제목부터 빵꾸라니]_김해경

  글을 쓰기도 전에 비밀부터 털어놓고 보는 사람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 사람의 글을 읽을 때마다 알맹이가 없다고 느꼈다. 또 어떤 사람은 매번 아무 말도 않다가 글을 통해 다 털어놓으려 했다. 그래서 나는 그 사람의 글을 읽기가 무서워 자주 전화를 걸었다. 최근에 만난 사람은 글도 안 쓰고 비밀도 없어 보이는데 계속 우는 중이라고 했다. 무엇이 그렇게 속상하냐고 물으니 조용히 고개만 저었다. 어쩔 도리가 없어서, 우는 그 사람을 그 자리에 두고 나왔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떤 모습으로 쓰고 있을까?

  곰곰, 눈을 감고 글을 쓸 때 나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나는 아무래도 절치부심 중독자가 아닐까. 불안에 떨다가 그 불안으로 글을 쓴다는 느낌이 잦다. 최근에 다시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다. 학생들을 가르치고 선생님들에게 배우는 이 어중간함. 그리고 밀려드는 불안. 그래서 오늘 하루 가장 사소한 일 하나를 해치우고도 뿌듯한 마음이 들어 술 잔을 들어올리고 싶은데. 이렇게 살아선 안 되지. 다시 마음을 다잡고 시작해보자. 그러고는 또 어디론가 전화를 걸어보는 사이. 그의 글이 도착했다.

  "쓰는 사람의 하루도 별반 다르지 않다"로 시작하는 글 속엔 회사에 치이고 사람들에 치이고 가족에 치이는 평범한 사람이 있다. 차라리 스스로를 "입자"라고 생각해보지만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왜 사람들은 날 가만히 두지 않을까? 간섭하고 규정하고 복종시키려 드는 것일까? 그런 생각에 문득 정신이 맑아진 듯, "그러나 주객이 전도될 순 없지"라며 입자로서의 자신을 긍정하기 시작한다. 말하자면, 낀 주체. 우리는 사람들의 틈바구니 속에 파묻혀 산다. 그것을 멀리서 본다면 얼음이나 철, 풀이나 나무, 산이나 바다, 지구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사람이었다. 원자처럼 깨지지도 않고 변형되지도 않는 사람. 그렇기 때문에 끼여도 주체인 것이다.

  이 "멋진 입자"는 해방촌에서 봄비를 맞으며 빗방울 하나하나 마음 속으로 호명하며 목례를 건네는 다정한 사람이다. 아무리 정신없고, 아무리 치이고, 아무리 '불안'에 떨어도. 다정을 건넬 줄 아는 사람은 쓰는 사람이 맞다. 글을 읽다 보니 내가 느낀 불안도 어쩌면 이 사람이 건넨 이름 모를 빗방울 하나에 다 씻겨가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불안한 느낌을 저는 빵꾸라고 표현하거든요."

  제목도 없이 글을 보내왔기에 물었더니 대뜸 빵꾸라고 했다. 첫 연재인 만큼 무게를 실을까도 생각했었는데, 빵꾸라니 속절없이 터지고 말았다. 그런데 자꾸만 저 말이 맴돈다.

  불안한 느낌=빵꾸

  그것은 마치 마음에 난 구멍처럼 추상적인 것도 아니고 싱크홀이나 죽음의 호수 같은 범접하기 힘든 디스토피아도 아니고 그저 여름이 다가오고, 가끔 가다 비가 내리고, 그래서 생겨나는, 아스팔트 위의 아주 얕은 웅덩이 같이 상상된다. "비 오는 날마다 꺼내 신는 흰 레인 부츠 앞코를 부러 웅덩이에 찰박"대는 이 사람처럼 불안은 아무리 확인해도 사라지지 않는 나를 바라보는 것 아닐까?


  • 아자아자! 힘낼 때 쓰는 말. 그리고 어떤 말도 떠오르지 않을 때 쓰는 말. 강나리 작가의 글은 때로 침묵보다 더 침묵 같습니다. 그래서 더 마음으로 와닿는 글을 쓰는 사람입니다. 저는 앞으로 강나리 작가의 열혈한 독자가 되어 매번 리뷰를 할 생각입니다. 에세이와 리뷰. 새로운 방식의 글을 읽고 싶으시다면 물성과해체를 찾아주세요. 새로운 연재, <아자아자>였습니다! 김해경 드림.
  • 강나리 : 식물학을 전공했다. 사람은 모두 얽혀 있고, 그 어디에선가 꽃처럼 사랑이 발생한다고 믿는다.
  • 김해경 : 물성과 해체 프로젝트를 만들었다. 산문집 『뼈가 자라는 여름』(결, 2023)을 냈다.

물성과 해체는 글을 매개로 삶과 사람, 그리고 사랑을 잇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한 일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모여 글을 쓰고 있습니다. 오래도록 방황했습니다. 잡으면 물성이 되지만, 놓치거나 놓쳐야만 했던 일들은 사랑을 다- 헤쳐 놓았습니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사랑의 전리품을 줍습니다. 자기만의 방식으로요. 그리고 여전히 방황- 입니다. 그러니 안심하세요. 또 찾아 오겠습니다. 

물성과해체 김해경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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