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박건

[박건] 사선에서, 다섯

누군가의 가장이고 누군가의 오빠였을 조선인 노무자들

2024.05.29 | 조회 2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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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성과 해체

에세이 프로젝트 : 글을 매개로 맺어질 수 있는 삶과 사람, 사랑

5 디자인 김해경 로고 디자인 이지오
5 디자인 김해경 로고 디자인 이지오

[잊힌 사람들]_박건 

  개화기 조선에는 지금껏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건축 재료 벽돌이 도입되며 붉은 벽돌 건축물들이 도시의 풍경을 바꾸어 놓았다. 도시민들은 처음 보는 양식의 건물들을 올려다보며 세상이 변하고 있음을 실감했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기 서구에서는 철근 콘크리트라는 최신 공법이 보편화되어 있었다. 조선의 백성들이 신기해 하며 올려다봤을 벽돌 건물은 기껏해야 2,3층 높이가 고작이었으나, 미국에서는 철근 콘크리트를 이용하여 100층이 넘은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지었으니 그야말로 천지가 개벽할 수준의 신기술이었다. 신공법은 태평양을 건너 일본으로, 또 현해탄을 넘어 조선으로 전해졌다. 2, 30년대가 되면 조선에도 철근 콘크리트로 지어진 5, 6층 짜리 고층 빌딩이 들어서기 시작한다. 회사의 사옥, 백화점, 극장 같은 대형 건축물들이 하루가 다르게 조선의 스카이라인을 바꾸어 놓았다. 저마다의 건물은 준공될 때 마다 전 조선에서 제일가는 모-던 빌딩이라며 장안의 화제를 모았다.

  조선시대 이전부터 수천 년 간 애용되어 오던 전통적인 건축 재료 목조, 석조에서 벽돌조, 철근 콘크리트조로 변모하기까지 반세기도 채 걸리지 않았다. 개화기 조선은 다양한 주체들에 의해 빠른 속도로 서구화 되었다. 제도와 규범이 근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조선에 이식된 근대는 부작용을 낳았다. 건축 기술의 발전과는 별개로 그 건설 현장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빈약했다. 건설 가능한 층 수가 높아지니 건설 현장도 덩달아 고층화 되었다. 추락사고는 곧 사망사고로 이어졌다. 외벽 공사를 얼기설기 엮어 놓은 대나무들 사이에 나무판자를 엎어놓은 아시바는 언제라도 무너져 내릴 듯 위태로웠다. 현재 공사장에서 상식처럼 여겨지는 안전수칙은 고사하고 안전모조차 착용하지 않았던 위험천만한 현장이었다. 총독부 예하 부처들과 지방 기관들의 업무는 날로 늘어나 새 건물은 필요한데 정부 예산은 늘 부족했다, 총독부는 전국에서 답지하는 청사 신축 요구를 반려하고 축소했다. 어렵게 허가가 떨어진 공사는 시공사의 입찰을 통해 최저가로 시행되었으며 공사 시간은 늘 촉박했다. 건축주는 준공 예정시기보다 더 빨리 시공을 마치면 성과급을 주겠다며 시공사를 채근했다. 더 크고 멋진 건물을 더 신속하게 짓기 위해 애쓰느라 안전은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공사현장에서는 폭약 폭발, 토사 붕괴, 추락사고 등 안전사고들이 빈번하게 터졌다.

건설중인 경성부청(現 서울도서관) (출처  『조선과 건축』 )
건설중인 경성부청(現 서울도서관) (출처 『조선과 건축』 )

  일제강점기 건축과 관련된 신문기사 중 매우 자주 보이는 것이 바로 인부들의 사망 기사이다. 짤막한 신문기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피해자의 이름, 나이, 거주지 정도로 이들 절대다수가 조선인, 그중에서도 20~30대의 젊은이들이었다. 최신 건축물들의 화려함 속에 우리 조상들의 피땀이 묻어있다는 것은 대부분이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다. 어떤 건물의 역사적 가치, 건축적 가치를 논할 때에 이들의 이야기는 큰 가치가 없는 정보들이다. 건물을 조사할 때 중요한 정보는 건물의 기공 및 준공 시기, 설계자와 시공자, 건립 배경과 내부 실 구성, 외형적 특징 같은 것들이다. 인부 한 둘이 죽어나갔다고 해서 건물의 특징이 바뀌거나 설계에 영향을 미치진 않기 때문이다. 건설현장에 있어서 조선인 인부는 망가지면 교체되는 톱니바퀴같은 존재들이었다.

소공동에 지어진 6층짜리 후지빌딩(출처  『조선과 건축』)
소공동에 지어진 6층짜리 후지빌딩(출처 『조선과 건축』)

  지금껏 일제강점기 건물들은 철저하게 일본인들의 흔적으로 알려졌기 때문에 줄곧 미움받아왔다. 당시 박길룡과 같은 조선인 건축가들도 있었으나 소수에 지나지 않았고, 대부분 일본인건축가의 손으로 설계되었다. 인테리어에는 일본에서 수입해 들여온 자재들을 사용하는 것이 고급스러움의 기준이 되었다. 해방 이후, 식민지배에 대한 인적청산을 올바로 진행하지 못했던 대한민국 사회에는 그 원념이 건물을 향하게 되었고, 조선총독부 철거를 비롯, 전국 각지에서 무수한 양의 근대건축물이 철거됐다. 불과 30년 전의 일이다. 일제의 잔재라서 이 땅에서 지워버려야 한다던 그 건물도 우리 조상들이 쌓아올렸다. 일제의 잔재임과 동시에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사선에서 벽돌을 짊어지고 오르내렸던 조선인들의 노력의 산실인 것이다. 누군가의 가장이고 누군가의 오빠였을 조선인 노무자들은 대를 이어 해방 이후 소위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냈다. 일제강점기 수많은 공사에 동원되었던 조선인들의 노력도 6,70년대 산업 역군으로 불렸던 한국인 노동자들의 노력과 똑같이 평가받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비록 노동을 지시한 주체와 의도는 불순하더라도 조선인 개개인의 노동은 숭고하게 받아들여질 자격이 있다. 남아있는 일제강점기 고층 건물을 바라볼 때 역사에서 잊힌 그들을 한 번쯤 기억해주기를 바란다. 그들의 노력과 희생이 건물의 보존 가치에 더해지길, 그래서 건물과 함께 오래도록 기억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미쓰코시 백화점 추락사고현장 (출처 1929년 5월 7일자  『京城日報』)
미쓰코시 백화점 추락사고현장 (출처 1929년 5월 7일자 『京城日報』)
미쓰코시 백화점(現 신세계 백화점 명품관) / 박종국(朴種國), 추락 부민관 / 방한준(方漢俊/50), 토사붕괴 경성신사 / 임종환(林鐘煥/29), 토사붕괴 가네보 영등포 공장 / 이근묵(李近黙/22) 추락 동덕여자고등보통학교 / 박관서(朴官西/33) 추락 한강철교 / 최학환(崔學煥/31), 기차사고 인천축항 / 박단복(朴旦福/20), 토사붕괴 군산 조선미곡창고주식회사 창고 / 강길봉(姜吉奉/19), 추락 광화문 / 김명식(金明植/30) 추락

  •  박건의 <사선에서>는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사회 속에서 사라져가는 근대건축의 보존을 위해 직접 발로 뛰는 작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가 몰랐던 건축에 대한 지식부터 삶의 터전에 얽힌 애환과 애정까지 경험할 수 있습니다.
  • 박 건 : 근대건축 연구가로 활동하며 근대건축 아카이브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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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성과 해체는 글을 매개로 삶과 사람, 그리고 사랑을 잇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한 일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모여 글을 쓰고 있습니다. 오래도록 방황했습니다. 잡으면 물성이 되지만, 놓치거나 놓쳐야만 했던 일들은 사랑을 다- 헤쳐 놓았습니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사랑의 전리품을 줍습니다. 자기만의 방식으로요. 그리고 여전히 방황- 입니다. 그러니 안심하세요. 또 찾아 오겠습니다. 

물성과해체 김해경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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