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 월엔 글을 많이 쓰지 못했다. 이럴 때면, 작가라는 직업도 여유가 있어야 할 수 있다는 말이 실감난다. 개인적인 사정이라고는 했지만, 사정보다는 감정에 가까운 일들이 복합적으로 일어났다.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난감한 와중에 일상은 쳇바퀴 돌 듯 굴러가야 했다. 이럴 때면, 내가 건강해야 다른 사람들도 챙길 수 있다는 생각에 오롯이 나만 생각하는 이기심을 부리기 일쑤였는데, 이번엔 좀 달랐다. 혼자 있는 시간보다 누군가와 함께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나는 나도 챙기고 누군가도 챙겨야 했다. 서로가 서로를 챙기면서 조금씩 전진해가는, 여름인 듯.
드디어 서울을 떠났다. 마침내라고 해도 되고, 결국에라고 해도 된다. 어쨌든 서울을 떠나 다시 새로운 동네로 이사를 왔다. 오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쌓인 방 안의 기억들을 정리했다. 왠지 섭섭하기 보다는 후련했다. 이 반지하 방을 드디어 떠나는구나. 낡디 낡은 가구들을 드디어 버리는구나. 읽지 않아도 되는 책들을 드디어 찢는구나. 그렇게 밤새도록 이삿짐을 정리하고 쓰레기를 버렸다. 다 치우고 덩그러니 침대 하나만 남았다. 그 위에 걸터앉아 자주 내다보곤 했던 창문을 바라보았다. 저건 아마도 창문이 아니라 액자였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슬픈 그림이 담긴 액자. 한 여름의 희귀한 꼬리가 그려진 숲 같았다. 그 숲을 바라보다가, 그 숲속에서 뛰어놀다가, 숨었다가, 숲이 되기도 했던 시절들이 순식간에 머릿속을 스쳤다. 문득 고마웠다. 너무 슬퍼서 술을 마시고 병신처럼 허우적거려도 언제나 잘 곳이 있었다. 울다가 지쳐 잠들면 조용히 꿈을 틀어주던 곳이 있었다. 연기처럼 희미한 기억들에 킁킁거리다 일어나면 창문으로 흰 빛을 던져넣어 준 곳이 있었다. 여기. 이곳에서 오 년을 살았다.
짐은 많지 않았지만 책 때문에 용달을 두 번 불렀다. 시집 다 버리고 이북으로 다시 사면 된다는 말을 했다가 애인에게 혼쭐이 났다. 책은 무조건 다 챙겨오랬지만, 애인의 눈을 피해 버릴 수 있는 책, 아니 버리고 싶은 책들을 골목에 내놓고 와버렸다. 여름을 전공한 나에게 여름학개론은 필요 없는 것이었다. 나는 이제 여름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여름에 통달했다. 그러니까, 여름이 무척이나 싫다는 말이다. 빨리 여름이 지나갔으면. 그래서 언제까지고 나의 정신을 비릿하게 만드는 이 지나친 햇빛을 덜 마주했으면. 그런 마음으로 버렸던 몇 권의 시집과 잡지들. 버림받은 글들은 한 번은 누군가로부터 지독하게 사랑받았다는 말을 믿는다.
비가 오는 날 밤, 드디어, 마침내, 결국에, 서울을 떠났다. 용달차 보조석에 얹혀 타고 강변을 지나자, 새로운 동네가 눈에 들어왔다. 새로 지은 듯한 아파트들이 줄 지어 서 있고 간판이 어지럽게 얽혀 쌓인 상가들이 골목골목 들어차 있었다. 정장 입은 사람들이 좌판을 펴놓고 과일을 팔고 있는 노인을 지나치고 있다. 오래된 술집의 문이 열리고 취객들이 쏟아져 나왔다. 낡은 풍경 소리가 희미하게 골목을 간질이고 있었다. 이제 나의 동네였다.
_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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