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당신에게
당신께 편지 쓰는 날을 기다렸습니다. 살아내야 하는 존재를 배려하지 않고 무작정 흘러가는 삶에 치였던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슴에 손 대고 덩그러니 놓인 마음을 토닥여봅니다. 성실히 읽어 줄 당신이라는 존재를 빌미로 잠시 숨 돌리려구요.
들이쉬고 – 내쉬고 –
들끊는 정신을 가라앉히고 우리 속을 지나는 공기의 길을 되짚어봐요. 들여오는 산소만큼 내뱉는 이산화탄소가 있어 같은 모양의 생명을 유지할 수 있음을 다시 압니다.
등가교환이에요. 제가 당신께 이 마음을 드릴 수 있다는 건, 누군가로부터 받은 값진 마음이 있기 때문이겠죠. 처음엔 받은 것이 없다 착각했습니다. 텅 비어 있다고 생각해 헛헛한 속을 채우려 긴 시간 헤매었습니다. 그러나 너른 햇빛과 적시는 단비로 더해지는 나이테로 몸이 두꺼워질수록 깨달았어요. 자라나 무언가 줄 수 있는 건 여지껏 받았기 때문이라고. 안타깝습니다. 이제는 정말 아는데, 받은 것이 어디서 왔고 벅차게 감사하다고 말할 수 있는데. 소중한 마음을 전해 받은 존재 중 최초의 한 사람은 사라졌고, 그가 이 세상에 있었음을 알리는 몇 가지 흔적만 남았을 뿐입니다. 더 이상 슬퍼하지는 않겠습니다. 받은 마음을 돌려줘야 할 또 다른 당신들이 있기에. 그런 당신을 내게 보내준 흩어지는 누군가가 있었기에.
쉽게 보이지 않겠죠. 당신이 받았던 셀 수 없이 많은 마음들이. 코끼리 앞에 선 장님처럼 뿌연 세상 속 한참을 더듬거려야 일부분을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형체 없이 실존하는 소중한 마음은 우리가 주고받을 때 희미하게 드러날 겁니다. 끊으려고만 애쓰는 세상 속에 이으려 하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며 우리가 다시 숨쉴 수 있게 할 겁니다.
그래요. 확신합니다. 보잘것 없는 제가 아낌 없는 사랑을 받았다구요. 사랑은 비어있던 존재를 채우고 소리 없이 저를 지켰다구요. 그렇기에 지금 드릴 수 있어요. 오늘 만난 소중한 당신께. 이 마음을 아낌 없이 쓰는 게 아깝지 않음을. 형용할 수 없이 벅찹니다. 우리가 주고받았고, 앞으로 나눌 서로를 아름답게 여길 이야기들이.
다시 들이쉬고 – 내쉬고 –
무성한 여름입니다. 우리의 계절은 매번 화창하지만은 않습니다. 치열한 삶의 열기에 아지랑이 피어 비틀거리기도 하고 무서운 장마에 벼락과 천둥이 치기도 합니다. 어떤 목마름과 폭풍우 속에도 우리 멈추지 말고 숨 쉬어 봅시다. 그렇게 주고받아 살아내 봅시다. 들이치는 빗줄기에 적셔 드러나버린 아끼는 시인의 마음으로. "나의 친애하는 슬픔이여! 당신 곁에 조용히 가서 잠들겠나이다!"라고 기어코 뱉은 고백에 써내려가는 보잘것 없는 답장으로.
우리 그렇게 숨 쉽시다.
주고 받는 값진 마음으로 다시 살아내 봅시다.
2023. 6 .19.
여름의 숨결 속에서
이광연 드림
<비틀거리고 있습니다>는 매주 월요일 친애하는 당신을 찾아갑니다. 광연과 해경이 주고 받는 편지 속 친애하는 당신의 삶에서 부디 안식을 찾을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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