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이광연

비틀거리고 있습니다 ep.6

Breathe

2023.06.19 | 조회 562 |
0
|
첨부 이미지

친애하는 당신에게

 

당신께 편지 쓰는 날을 기다렸습니다. 살아내야 하는 존재를 배려하지 않고 무작정 흘러가는 삶에 치였던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슴에 손 대고 덩그러니 놓인 마음을 토닥여봅니다. 성실히 읽어 줄 당신이라는 존재를 빌미로 잠시 숨 돌리려구요.

들이쉬고 – 내쉬고 –

들끊는 정신을 가라앉히고 우리 속을 지나는 공기의 길을 되짚어봐요. 들여오는 산소만큼 내뱉는 이산화탄소가 있어 같은 모양의 생명을 유지할 수 있음을 다시 압니다.

등가교환이에요. 제가 당신께 이 마음을 드릴 수 있다는 건, 누군가로부터 받은 값진 마음이 있기 때문이겠죠. 처음엔 받은 것이 없다 착각했습니다. 텅 비어 있다고 생각해 헛헛한 속을 채우려 긴 시간 헤매었습니다. 그러나 너른 햇빛과 적시는 단비로 더해지는 나이테로 몸이 두꺼워질수록 깨달았어요. 자라나 무언가 줄 수 있는 건 여지껏 받았기 때문이라고. 안타깝습니다. 이제는 정말 아는데, 받은 것이 어디서 왔고 벅차게 감사하다고 말할 수 있는데. 소중한 마음을 전해 받은 존재 중 최초의 한 사람은 사라졌고, 그가 이 세상에 있었음을 알리는 몇 가지 흔적만 남았을 뿐입니다. 더 이상 슬퍼하지는 않겠습니다. 받은 마음을 돌려줘야 할 또 다른 당신들이 있기에. 그런 당신을 내게 보내준 흩어지는 누군가가 있었기에.  

쉽게 보이지 않겠죠. 당신이 받았던 셀 수 없이 많은 마음들이. 코끼리 앞에 선 장님처럼 뿌연 세상 속 한참을 더듬거려야 일부분을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형체 없이 실존하는 소중한 마음은 우리가 주고받을 때 희미하게 드러날 겁니다. 끊으려고만 애쓰는 세상 속에 이으려 하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며 우리가 다시 숨쉴 수 있게 할 겁니다.

그래요. 확신합니다. 보잘것 없는 제가 아낌 없는 사랑을 받았다구요. 사랑은 비어있던 존재를 채우고 소리 없이 저를 지켰다구요. 그렇기에 지금 드릴 수 있어요. 오늘 만난 소중한 당신께. 이 마음을 아낌 없이 쓰는 게 아깝지 않음을. 형용할 수 없이 벅찹니다. 우리가 주고받았고, 앞으로 나눌 서로를 아름답게 여길 이야기들이.

첨부 이미지

다시 들이쉬고 – 내쉬고 –

무성한 여름입니다. 우리의 계절은 매번 화창하지만은 않습니다. 치열한 삶의 열기에 아지랑이 피어 비틀거리기도 하고 무서운 장마에 벼락과 천둥이 치기도 합니다. 어떤 목마름과 폭풍우 속에도 우리 멈추지 말고 숨 쉬어 봅시다. 그렇게 주고받아 살아내 봅시다. 들이치는 빗줄기에 적셔 드러나버린 아끼는 시인의 마음으로. "나의 친애하는 슬픔이여! 당신 곁에 조용히 가서 잠들겠나이다!"라고 기어코 뱉은 고백에 써내려가는 보잘것 없는 답장으로.

우리 그렇게 숨 쉽시다.

주고 받는 값진 마음으로 다시 살아내 봅시다.

 

2023. 6 .19.

여름의 숨결 속에서

이광연 드림


첨부 이미지

<비틀거리고 있습니다>는 매주 월요일 친애하는 당신을 찾아갑니다. 광연과 해경이 주고 받는 편지 속 친애하는 당신의 삶에서 부디 안식을 찾을 수 있길.

 

첨부 이미지

물성과 해체는 글을 매개로 삶과 사람, 그리고 사랑을 잇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한 일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모여 글을 쓰고 있습니다. 오래도록 방황했습니다. 잡으면 물성이 되지만, 놓치거나 놓쳐야만 했던 일들은 사랑을 다- 헤쳐 놓았습니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사랑의 전리품을 줍습니다. 자기만의 방식으로요. 그리고 여전히 방황- 입니다. 그러니 안심하세요. 또 찾아 오겠습니다. 

물성과해체 김해경 올림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

이번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물성과 해체 님에게 ☕️ 커피와 ✉️ 쪽지를 보내보세요!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의견이 있으신가요? 제일 먼저 댓글을 달아보세요 !

다른 뉴스레터

작가 이광연

비틀거리고 있습니다 ep.9

쉬운 안부. 친애하는 당신에게 반가워요.잘 계시나요? 소식 나눈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오늘은 무소식이 희소식이란 말을 믿고 싶습니다. 당신이 어디서 무얼 하는지 알 수 없어도 같은 하늘

2023.07.20·조회 696
작가 강나리 · 멤버십

플레이리스트, 끄적 ep.7 왜 날?

나는 딱딱해진 사람. 내 만남들은 좀처럼 수면 위로 떠오르지 못하고 부글부글 침잠하고 있었다. 식사가 끝나면 체하고 통화가 끝나면 목구멍이 몸살을 앓던 인연의 연속. 더이상 편안할

2024.03.04·조회 512
작가 손자영 · 멤버십

나는 누구, 여긴 어디? ep.1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영상 설치 작품 <섬아연광>, 백종관, 2023,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젊은 모색 2023 : 미술관을 위한 주석'. ‘나는 누구, 여긴 어디?’는 우리가 잘 아는 공간과 장소를 재해석한 영화와 영상 작품을 소개하는 연재 글이다. 여기서 ‘재해석’이란 우리가 잘 ...

2023.08.28·조회 1.18K
작가 김해경

[김해경] 라이팅룸 101호

반지하는 식상한가. 1 맨 처음 글을 쓴 날은 아마도 다섯 살, 잘 기억도 나지 않는 좁은 빌라 마룻바닥에 엎더져 "엄마", "아빠", "자동차" 따위의 단어를 써냈던 날이었을 것이다. 삐뚤빼뚤한 글

2024.06.10·조회 490
작가 김해경

비틀거리고 있습니다 ep.16

마지막입니다. 친애하는 당신에게 쉽게 깨닫고 쉽게 사랑하는 천성을 이제는 버리기로 하자.

2023.09.28·조회 557
작가 강나리 · 멤버십

플레이리스트, 끄적 ep.6 서울의 잠 못 이루는 밤

서울의 밤은 마땅히 잠에 들어야 할 시간에도 어찌나 소란한지! 조명에 소음에 눈 귀 쉴 틈 없는 서울 사람들의 마음은 아이러니하게도 적막하다. 애써 잠에 들려해도 빛이 빛을 비춰

2024.01.15·조회 614
© 2026 물성과 해체

에세이 프로젝트 : 글을 매개로 맺어질 수 있는 삶과 사람, 사랑

뉴스레터 문의mulhae.official@gmail.com

메일리 로고

도움말 자주 묻는 질문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채팅으로 문의하기

메일리 사업자 정보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특별시 송파구 위례광장로 199, 5층 501-8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 | 라이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