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강나리

[강나리와 김해경] 아자아자, 셋

무위의 따스한 파장으로 나는 먹음직스럽게 구워진다

2024.06.06 | 조회 1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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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성과 해체

에세이 프로젝트 : 글을 매개로 맺어질 수 있는 삶과 사람, 사랑

3 디자인 김해경 로고 디자인 이지오
3 디자인 김해경 로고 디자인 이지오

[세 번째 빵꾸]_강나리

  빵꾸로 길게 늘어뜨려진 세 번째 월요일이다.

  너무나 규칙적이게도 이 글은 “나온다”. “나오게 되어” 있다. 읽는 사람의 시간도, 쓰는 사람의 시간도 정해진 이 글은 그 규칙성만으로 회사인인 내 삶 위에 포개어져 있지만 아무래도 창작이란 규칙성을 지니기가 힘든 노릇이다. 초보 작가인 나에게 발행일이란 다른 날보다 더 무언가 쥐어짜내는 날로 정한 날이다. 달콤한 주말 후 맞는 월요일, 느슨해져 있던 몸과 마음을 다시 꽉 조이는 월요일. 내가 이 날로 발행을 결정한 것은 월요일이 어쩌면 우리에게 사랑이 가장 필요한 요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지친다는 이유로 동굴로 들어가지 마세요, 전부 다. 막막하기만 한 남은 4일을 두려워하지 말고 내 글을 읽어 보세요! 내가 노트북을 막 부둥켜안고 입을 맞추며 쓴 글이랍니다.

  세월이 무색하게도 내 무위 속 나는 같은 모습이다. 간편식으로 즐겨 보는 죽음과도 같은 무위. 무위의 따스한 파장으로 나는 먹음직스럽게 구워진다. 뭉친 덩어리들이 풀어지고, 잘 반죽된 몸에 도달한다. 이 과정은 늘 외롭지 않은 관계 속에서 벌어졌다. 외로운 관계란 ‘홀로’를 뜻함이 아니다. 외로움은 늘 무위에서 멀어지게 하는 어떤 이가 슬그머니 쥐고 왔고, 그것이 풍기는 악취에 나는 코를 틀어막고 방방 뛰다 그만 무위를 잃어버렸다. 아니, 그 사람 탓을 할 수 있을까? 초등학생 때부터 나는, 엄마 나 생각이 너무 많아서 괴로워. 다른 사람들도 이럴까? 했고, 수평선 위로 미끄러지는 구름으로 생애 첫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쉬이 잃는 내 무위에 누군가를 탓하는 건, 이제 그만할 때가 됐다. 나는 내 첫 구름을 가져다준 바다를 기억한다. 단지 그 바다를 닮은 사람을 찾고 있는 것 뿐이다. 한 가운데 던져진 그 공포, 울음조차 사치인 그 사투에서 살아남아 수평선에 포개어지게 된 사람. 바다를 조망만 하며 왈가왈부하는 설익은 인생론에도 냉소를 보내지 않는 사람, 그렇게 누구보다 바다를 사랑하는 방법을 배워가는 사람. 어느 날 메인 코스를 즐기러 떠날 때, 그런 사람과 보냈던 시간들이 떠오른다면 참 좋겠다.

  저녁은 두부 김치를 먹었다. 아빠가 참 좋아하던 음식이다. 김치를 한 입 먹으니 엄마의 몸짓과 체취와 말씨와 농밀 묵직한 모성애가 물결쳤다. 깨진 호르몬 체계로 어김없이 먹으면서도 허기진 끼니를 씹어 넘기는 일은 엄마 김치를 곁들인 아빠 두부김치로 꽤나 풍족해졌다. 아, 잔인한 내 부모들. 이토록 슬픈 사랑을 가르쳐 준 사람들. 느낄 수 있음에 감사하다고 말하기엔 이토록 괴로운 역사여. 함께한 이 없었기에 말 없이 내 식사는 치뤄졌고, 그 모습은 입만 척척 벌렸을 뿐 묵상과 닮아있었던 것도 같다. 그러나 저러나, 고팠던 배는 한바탕 두둑히 채워졌고, 다음 코스로는 잠이 쏟아졌다. 보통의 저녁의 완성이었다.

[우리의 원대한 계획]_김해경

  드라마 <삼식이 삼촌>에서 이런 대사가 나온다. “배가 불러야 마음이 열립니다.“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해 생각한다는 건 중요한 일이다. 먹고 살 수 있어야 꿈을 꾸고, 먹고 살 수 있어야 계획을 차근차근 현실의 영역으로 들여올 수 있다. 그러나 글을 쓰고 그 글을 어딘가에 발표하고, 누군가가 그 글을 읽게 되는 과정. 이 속에서 배불리 먹고 보통의 저녁이 완성되기란 참 어려운 일. 그래도 조급한 마음을 숨겼다. 고 발설했을 때. 숨겨진 것은 드러나고 이미 드러난 것들과 뒤섞이고. 우울했다.

  빨리 빠져나와야지. 어서 다음 생각을 해. 다음 생각이 나지 않으면 눈을 감아. 그리고 잠들어버려. 꿈 꾸지 않는 잠을. 일주일 동안 무당 나오는 꿈을 꿨다. 그것이 내게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엄마한테도 전화하지 않았다. 무당은 굿판을 벌이고 있었다. 나무로 조각한 칼 위를 걷고 있었다. 피가 나지 않는데 나는 여기가 꿈속이란 걸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믿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는데.

  누군가는 쉼 없이 문제를 제기한다. 문제를 제기하지 않으면 두드러기가 나는 병에 걸린 걸까. 또 누군가는 쉼 없이 슬퍼한다. 그는 나와 닮았다. 병원을 찾은 사람은 후자다. 나는 아직. 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글 쓰는 사람들을 옛날엔 많이 만났다. 지금은 만나지 않아도 글 쓰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안다. 다들 일리가 있는 글을 쓰고 있다고도 믿는다. 문제는 내가 쓰는 글이다. 나는 무얼 쓰고 있는 걸까. 형식도 내용도 없는 중얼거림이다. 스치듯 깨달으니 고쳐지지 않는 관성으로 쓰는, 이 알 수 없는 축축함.

  그만두자는 말은 내일 다시 생각하자는 말. 그렇게 여기까지 왔나 봐. 스물아홉. 아주 젊은 나이. 그러나 나에겐 회의적인 숫자. 서른 마흔 쉰 같은 숫자들이 아득해서는 아니었는데. 덜, 이란 말이 알맞게 느껴지는 요즘. 덜 살았고 덜 썼다. 근데 힘은 더 안 나는. 웃어버릴 수도 없는 일. 우리에겐 원대한 계획도 없는데, 쓴다는 희망만 빵처럼 부푼다.


  • 아자아자! 힘낼 때 쓰는 말. 그리고 어떤 말도 떠오르지 않을 때 쓰는 말. 강나리 작가의 글은 때로 침묵보다 더 침묵 같습니다. 그래서 더 마음으로 와닿는 글을 쓰는 사람입니다. 저는 앞으로 강나리 작가의 열혈한 독자가 되어 매번 리뷰를 할 생각입니다. 에세이와 리뷰. 새로운 방식의 글을 읽고 싶으시다면 물성과 해체를 찾아주세요. 새로운 연재, <아자아자>였습니다.
  • 강나리 : 식물학을 전공했다. 사람은 모두 얽혀 있고, 그 어디에선가 꽃처럼 사랑이 발생한다고 믿는다.
  • 김해경 : 물성과 해체 프로젝트를 만들었다. 산문집 『뼈가 자라는 여름』(결, 2023)을 냈다.

물성과 해체는 글을 매개로 삶과 사람, 그리고 사랑을 잇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한 일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모여 글을 쓰고 있습니다. 오래도록 방황했습니다. 잡으면 물성이 되지만, 놓치거나 놓쳐야만 했던 일들은 사랑을 다- 헤쳐 놓았습니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사랑의 전리품을 줍습니다. 자기만의 방식으로요. 그리고 여전히 방황- 입니다. 그러니 안심하세요. 또 찾아 오겠습니다. 

물성과해체 김해경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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