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김해경

비틀거리고 있습니다 ep.12

이 미진함, 이 미안함.

2023.08.29 | 조회 2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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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성과 해체

에세이 프로젝트 <물성과 해체>

 

친애하는 당신에게

 

충무로에 갔었습니다. 극장과 인쇄소가 즐비한 큰 거리 뒤에 고즈넉히 자리한 시장에 앉아 술을 마셨습니다. 내 인생에 성질이 났습니다. 행복을 인정하지 않는 내 성질머리에 분노했습니다. 충분히 희망적인 상황에도 비관을 탐닉하는 내 어리석은 욕망에 진절머리 났습니다.

친구들에게 주려고 가방에 담아 온 내 책을 다시 들고 집으로 왔습니다. 부끄러운 문장들. 거짓말 같은 과거들. 불에 타버리다 만 사진 같은 그리움들. 나는 아마도 한동안 내 책을 다시 펼쳐볼 일 없을 듯 싶습니다. 혼미합니다. 건강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가끔은 내 인생에 대해 하염없이 남탓을 하고 싶어요. 하염없이 억울해 하고 싶어요. 내 잘못은 하나도 없는데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이라서 내가 이렇게 된 거라고, 욕을 하고 싶어요. 그러나 나는 금방 정신을 차리고 뉘우칩니다. 내 인생을 무책임하게 다룰 만큼 문학이나 예술이 좋은 건 아닙니다. 문학이나 예술 따위에 내가 절뚝거려야 할 이유도 없거니와, 누군가로부터 존경받거나 시기 당할 이유도 없습니다. 그렇기에 다 제 탓입니다.

제가 부족한 탓에, 인생과 예술 그 어느 하나에도 매진하지 못했습니다. 이 미진함. 이 미안함. 나는 부끄럽습니다. 옳은 작품 하나 만들지도 못하고, 웃기를 바라다니요.

오늘은 저 끝에서부터 비틀거리며 걸어왔습니다.

언제 쓰러질까요. 이 공든 탑. 이 비참한 탑.

죄송합니다.

 

2023.08.29

충무로에서

김해경 드림


<비틀거리고 있습니다>는 매주 친애하는 당신을 찾아갑니다. 광연과 해경이 주고 받는 편지 속 친애하는 당신의 삶에서 부디 안식을 찾을 수 있길.

에세이 프로젝트 『물성과 해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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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프로젝트 『물성과 해체』는 다양한 예술 분야의 사람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어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우리는 그 어떤 장르보다 자유로운 형식을 가진 에세이를 통해서 이야기할 것입니다.


때로는 희망차고 때로는 비참할 이야기. 그러나 아마추어처럼 달려들고 프로처럼 진지할 이야기. 변화가 두렵지만 변화해야 할 때도, 견디는 게 지겹지만 견뎌야 할 때도, 우리는 쓰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네, 우리는 영원히 쓸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히 달라질 것입니다. 견딜 때보다 벗어날 때 더욱 성장하는 가재처럼, 벗어남이 무한하다면 영원히 살 수 있는 것처럼, 영원처럼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예술처럼 영원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만든 이야기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물성과 해체』의 공간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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