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당신에게
마트에 갔습니다. 치솟은 물가에 한 숨 쉬며 세일하는 공산품만 구매하고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야채와 과일은 여기저기 발품 팔아 그 중에 제일 저렴한 가판대에서 샀습니다.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발버둥 치는 짠내 나는 제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왔어요. 자괴감 섞인 처량한 웃음이 아니라 더 잘 살고 싶어서 노력하는 스스로가 대견한 웃음으로. 우리 평생 같이 살자-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서로 약지에 반지를 끼우고 뭇사람 앞에 선언하던 날, 하얀 드레스 입고 눈 부시던, 이젠 아내가 된 연인 앞에 다짐했습니다. 아, 잘 살아 봐야겠다! 이 사람 행복하게 해주려 노력해야겠다! 잘근잘근 곱씹어 속에 거듭 새겼던 맹세는 절대 변하지 않을 것 같았던 저란 사람을 변하게 합니다.
사랑이란 그런 건가 봐요. 애쓰지 않아도 사랑의 주체와 대상을 묶어버리고 이전과 다른 존재로 거듭나게 하는 건가봐요. 장을 보다 차오른 감격, 그런 깨달음. 지나간 모습이 희미해지고 매일 새로워지는 나를 받아들이게 되는 우리라는 이름의 신비.
당신은, 당신은 어때요? 그런 순간들이 있나요? 생각의 분량, 넘치도록 흐르는 당신의 당신에 대한 마음이 흩뿌려 사량이라 이름 붙일 수밖에 없었던 경험이 있었나요? 사량-사량- 마침내 사랑. 놀랍도록 생소한 음절이, 처음 겪는 나의 모습이, 어느새 익숙해지고 모음 하나 떨어져 나가 사랑이라 이름 불리는 일이 우리의 일상을 변하게 만든 적이 있었나요?
짜장파에서 짬뽕파로 바뀌고. 세탁기에 뒤집혀진 모양으로 넣던 양말이 올바르게 펴진 상태로 변하고. 반쯤 열려있던 시리얼 봉지가 꽉 닫혀 있게 되는. 지극히 사소하고 피식 웃게되는 귀여운 사건들이. 우리가 어느새 변화할 수도 있는 존재임을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절대로 바뀔 수 없을 것 같던 나란 사람을 바꾸는 그런 기적이 있길 바랍니다.
어젠 밀어닥치는 견뎌내야 할 시간 속에 무릎 거꾸러지도록 힘들었어요.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침잠함에 마음 삼키고 그 짙은 공허와 무기력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는데. 우리가 되는 당신과 진솔한 대화 한 번으로 모든 어둠이 걷히고 끝 없는 동굴이 출구 있는 터널이 되어버렸습니다. 빠져나갈 구멍이 존재한다는 사소한 진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걷게됬습니다. 지금 보이지 않아도. 여전히 불완전한 내 모습에 이루말할 수 없이 괴로울 때가 있어도. 다리에 힘 주고 나아가게 됬습니다. 온전히 증명할 수 없어요. 이런 마음을. 그러나 말할 수 있어요. 발품 팔며 장 보다 문득 쓰게 된 이 짠내나는 편지 위에.
아, 이제 집에 갈 시간입니다. 저를 변하게 한 당사자가 애타게 부르고 있어요.(웃음)
또 편지하겠습니다. 매일 갱신되는 우리라는 희망으로. 어느새 변화된 사랑이라 이름 지은 순간들로.
2023.09.19.
사랑 안에 변화되는 모습으로
이광연 드림
김해경과 이광연 작가의 편지, 매주 찾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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