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와 엉뚱함

#04. 스미다, 단박

2025.01.28 | 조회 97 |
0
나의 단어의 프로필 이미지

나의 단어

매주 작은 이야기를 전합니다.

스미다

: 물, 기름 따위의 액체가 배어들다.

: 바람 따위의 기체가 흘러들다.

: 마음속 깊이 느껴지다

 

  • 단어를 찾은 곳

입을 다문 채 우리들은 끈질기게 바라 보고있었다. 거대하게 부푼 잿빛 날개 같은 연기가 허공에 스미고 있었다. 사라지고 있었다. 삽시간에 저고리를 태운 불이 치마로 타들어 가는 것을 나는 봤다. 무명 치마의 마지막 밑단이 불꽃 속으로 빨려들어갈 때 당신을 생각했다. 당신, 올 수 있다면 지금 오기를. 연기로 지은 저 옷을 날개옷처럼 걸쳐 주기를. 말 대신 우리 침묵이 저 연기 속으로 스미고 있으니 쓴 약처럼 쓴 차처럼 그걸 마셔 주기를.

한강, 흰, 129쪽

  • 나의 단어라면
글을 쓸 때 나는 누구의 눈치를 보는가. 예쁜 단어들을 모아 예쁜 문장만을 써야할 것 같은 기분. 어느사이 종이 앞에서도 자유로워지지 못함을 느낀다. 수많은 익명의 분노를 읽으며 나는 누군가 나의 글에도 그렇지 않을까 두려워한다. 읽다보면 그들의 분노가 나에게 스미어 나의 글을 혼내고 있다. 무람없게 굴 용기는 어디에서 나오는가.

단박

: 그 자리에서 바로를 이르는 말

 

  • 단어를 찾은 곳

첫 직장을 그만두고 본가에 내려간 스물다섯 살의 여름, 그녀는 이웃집 마당에서 흰 개를 보았다. 그전까지 그 마당에는 사나운 도서관이 살았다. 목을 묶은 줄이 풀리거나 끊어지기만 하면 단박에 달려들어 닥치는 대로 사람을 물어뜯을 것처럼 여석은 목줄이 한껏 팽팽해지도록 앞으로 달려 나와 짖어대곤 했다. 그 살기 질려 묶인 계란은 것을 알면서도 그녀는 최대한 멀찍이 멀어져, 그 대문 앞을 지나곤 했었다.

한강, 흰, 60쪽

  • 나의 단어라면
깜짝 놀라는 단어들을 보면 가끔 깜짝 놀란다. 덥석, 번뜩, 훅 같은 말들. 언어와 사고 중 무엇이 먼저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 말들에 놀라도록 학습된 것 같다. 그 친구의 이름도 그런 느낌이었다. 왜인지 덥석과 비슷한 발음의 이름. 촌스럽지만 나는 단박에 그 친구와 친해질 것을 알았다. 그는 언제나 이름만큼이나 여러 방면에서 나를 깜짝 놀래켰다. 엉뚱한 그와 있다보면 나도 늘 의외의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

추신

단어를 찾으려 책을 이리저리 읽다보면, 어디까지 모르는 단어고 어디까지 아는 단어라고 해야할지 모호해 지는 순간들이 오는 것 같습니다. 이해할 순 있으나 내 입에선 나오지 않을것 같은 말들을 열심히 찾지만, 이런 단어를 모를수가 있나하면서 부끄러워 적지 않는 단어들도 있는듯 합니다.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의견이 있으신가요? 제일 먼저 댓글을 달아보세요 !

다음 뉴스레터

© 2025 나의 단어

매주 작은 이야기를 전합니다.

뉴스레터 문의JH1047.2001@maily.so

메일리 로고

도움말 자주 묻는 질문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뉴스레터 광고 문의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메일리 사업자 정보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 서초구 강남대로53길 8, 8층 11-7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 | 라이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