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연(忽然)하다
- 단어를 찾은 곳
이승의 것 같지 않게 홀연하던 소나무들은 철조망 너머로 줄을 맞춰 심겨 있었다. 바다는 관광 엽서 사진처럼 짙푸르고 아름다웠다. 모든 것이 경계 안쪽에서 숨죽이고 있었다. 숨을 참으며 다음 안개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짙게 안개가 낀 새벽, 이 도시의 유령들은 무엇을 할까. 숨죽여 기다렸던 안개 속으로 소리 없이 걸어 나와 산책을 할까. 목소리까지 하얗게 표백해 주는 저 물에 입자를 틈으로, 내가 알지 못하는 그들의 모국어로 인사를 나눌까. 말없이 고개를 흔들거나 끄덕이기만 할까.
한강, 흰, 24쪽
- 나의 단어라면
해쓱하다
파리-하다 「형용사」 몸이 마르고 낯빛이나 살색이 핏기가 전혀 없다. ≒ 초하다.
- 단어를 찾은 곳
어둠 속에서 어떤 사물들은 희어 보인다. 어렴풋한 빛이 어둠 속으로 새어들어올 때, 그리 희지 않던 것들까지도 창백하게 빛을 바란다. 밤이면 불을 끈 거실 한쪽에 소파 침대를 펴고 누워, 잠을 청하는 대신 그 해쓱한 빛 속에서 시간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흰 회벽에 어른거리는 창밖 나무들의 형상을 바라 보았다. 그 사람 -이 도시와 비슷한 어떤 사람- 의 얼굴을 곰곰이 생각했다. 그 윤곽과 표정이 서서히 뚜렷해지길 기다렸다.
한강, 흰, 30쪽
- 나의 단어라면
추신
예문을 쓰려고 고민하다 보면 어떻게 이 단어를 저렇게 사용하셨을까 하는 생각을 정말 많이 합니다. 저 단어가 지금 내 문장에 적합하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참 멋있고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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