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레몬색 셔츠를 입고, 라임색 말고, 길을 나가고 싶다. 나무들 사이를 지난다. 얼굴 벌개질 정도로 뜨거운 볕을 뒤통수에 맞으면서 잎들은 잘도 파란 얼굴로 버티며 있다. 나뭇잎 하나 둘 세다 보니 어느새 6월은 끝이다.
여름은 마음이든 음식이든 잘 상한다. 깜빡하고 상에 내어 놓은 잡채가 쉬었다. 기껏 해 놓은 음식 못 먹게 만든 아들에 엄마 속도 상한다. 그 마음 알면서도 여름을 내세워 못된 말을 뱉다가, 서늘해진 날씨에 나는 나에게 혼을 낸다. 변덕과 여름은 친하다.
여름은 냄새로 가득하다. 이마의 땀방울 냄새, 초록의 숨 쉬는 냄새, 모래 섞인 바다와 이끼 묻은 계곡의 비릿한 물 냄새, 빨기도 전에 젖어있는 티셔츠 냄새, 여름엔 투명한 얼음에도 냄새가 밴다. 어둠 속 타고 온 버스에서 맡은 것과 같은 냄새가 난다.
여름은 축축하다. 해질녘 팔뚝은 어느새 축축해져, 무엇이라도 쉽게 꽂힐 것만 같다. 오늘 인류는 분명 80% 이상이 물일 것이다. 하늘도 축축해지다 못해 물을 떨군다. 다들 축축하던 터라 그리 달갑진 않다. 여름에 내리는 물은 유난스럽게도 와서 이름도 있다. 욕하기 위해 이름 지어 놓은 것이 분명하다.
여름엔 손님이 많다. 열기를 식히려는지, 뿜어 내려는지 세상 온갖 날개 있는 것들 날아다니고 다리 많은 것들 기어 다닌다. 체온에 미지근해진 이불을 피해 반대 구석으로 발을 옮기는 것처럼, 마음을 식히려 찾아오는 사람도 있다. 뭐라도 대접해야지. 컵에 얼음을 담는다.
잘그락 거리는 얼음 담긴 컵을 본다. 얼음들 사이의 빈 공간으로 누군가 챙겨줬던 커피를 채운다. 덜 찬 자리엔 챙겨준 사람의 마음이 있다. 여름은 차가운 게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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