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몬색 셔츠

#27. 여름은 차가운 게 마음이다.

2024.07.05 | 조회 1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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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레몬색 셔츠를 입고, 라임색 말고, 길을 나가고 싶다. 나무들 사이를 지난다. 얼굴 벌개질 정도로 뜨거운 볕을 뒤통수에 맞으면서 잎들은 잘도 파란 얼굴로 버티며 있다. 나뭇잎 하나 둘 세다 보니 어느새 6월은 끝이다.

여름은 마음이든 음식이든 잘 상한다. 깜빡하고 상에 내어 놓은 잡채가 쉬었다. 기껏 해 놓은 음식 못 먹게 만든 아들에 엄마 속도 상한다. 그 마음 알면서도 여름을 내세워 못된 말을 뱉다가, 서늘해진 날씨에 나는 나에게 혼을 낸다. 변덕과 여름은 친하다.

여름은 냄새로 가득하다. 이마의 땀방울 냄새, 초록의 숨 쉬는 냄새, 모래 섞인 바다와 이끼 묻은 계곡의 비릿한 물 냄새, 빨기도 전에 젖어있는 티셔츠 냄새, 여름엔 투명한 얼음에도 냄새가 밴다. 어둠 속 타고 온 버스에서 맡은 것과 같은 냄새가 난다. 

여름은 축축하다. 해질녘 팔뚝은 어느새 축축해져, 무엇이라도 쉽게 꽂힐 것만 같다. 오늘 인류는 분명 80% 이상이 물일 것이다. 하늘도 축축해지다 못해 물을 떨군다. 다들 축축하던 터라 그리 달갑진 않다. 여름에 내리는 물은 유난스럽게도 와서 이름도 있다. 욕하기 위해 이름 지어 놓은 것이 분명하다.

여름엔 손님이 많다. 열기를 식히려는지, 뿜어 내려는지 세상 온갖 날개 있는 것들 날아다니고 다리 많은 것들 기어 다닌다. 체온에 미지근해진 이불을 피해 반대 구석으로 발을 옮기는 것처럼, 마음을 식히려 찾아오는 사람도 있다. 뭐라도 대접해야지. 컵에 얼음을 담는다.

잘그락 거리는 얼음 담긴 컵을 본다. 얼음들 사이의 빈 공간으로 누군가 챙겨줬던 커피를 채운다. 덜 찬 자리엔 챙겨준 사람의 마음이 있다. 여름은 차가운 게 마음이다.


추신 / 글

나의 서재도 어느덧 여름을 맞고 한 해의 절반을 넘깁니다. 여름이고 장마고, 꿉꿉하고 덥습니다. 그렇지만 푸르고 열정적이고 뿌듯한 계절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다시 인터뷰가 아닌 제 글입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추신 / 그림

저는 사계절 내내 자전거를 타는데요, 자전거를 탈 때 불어오는 바람이 더 이상 시원하지 않을 때 여름이 왔다고 느낍니다. 여름도 다양한 모습이 있는 것 같은데, 이렇게 계절 별로 다양한 모습을 인식하고 즐기다 보면  년에 지루한 순간이 없는 것 같아요. 곧 장마가 시작 되네요. 이미 시작인가? 무튼. 저는 비가 왕창 쏟아져도 친구와 웃으며 놀고 날씨가 이런데도 재밌게 잘 놀았다며 집에 가는 날을, 비가 온다 했는데 날이 좋아 난 역시 운이 좋아! 하는 날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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