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애매함의 처방은 이런 식으로 이루어집니다.

#2 미루면 복이 와요.

2024.01.12 | 조회 2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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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작은 이야기를 전합니다.

글을 적다 보면 표현이 별로이거나, 문장 자체는 마음에 들지만 맥락이 어긋나 있는 애매한 문장들을 적게 됩니다. 그러면 저는 그 문장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일단 페이지 맨 밑으로 보내 놓습니다. 이어 글을 마저 완성하다 보면, 파일 맨 밑에 애매한 문장들이 낙엽처럼 있습니다. 그 문장들을 다시 읽어보면, 정말 낙엽처럼, 글쎄 하며 치워버려도 되는 문장이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문장들을 뒤로 미루지 않았다면 치뤘을 불필요한 고민을 줄인 것 같아 뿌듯해집니다.

대개 미루는 것은 나쁜 습관으로 취급되지만, 세상 모든 일이 그러하듯 꼭 그렇지마는 않은 일도 있나 싶습니다. 저에겐 보통 앞에서 말한 애매한 문장 같은 일들이 그렇습니다. 좋은지 나쁜지, 나에게 도움일지 방해일지 나아가서 고민과 행동의 가치가 있는지 모를 때에는 우선 조금 나중으로 미룹니다. 그러면 언젠가 지금의 나보다 나아진 내가 미뤄둔 일들을 맡아주곤 합니다. 

내가 무언가에 약 올라 있을 때면, 일단 멈추고 나중의 나도 같은 일에 약 오르고 기분 나빠할지 지켜보기로 합니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나의 예민함 때문에, 언젠가는 나의 오해 때문에 생긴 마음의 소용돌이를 확인합니다. 누군가 나의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할 적에도, 그 사람을 미워하는 것을 뒤로 미룹니다. 그러면 때때로 사실 그 사람을 미워하는 것보다 좋아할 구석이 많았다는 것을 발견하곤 합니다. 저는 이번에도 미뤄두길 잘했다고 안도하며 큰일 날 뻔 했다며 괜히 부끄러워합니다. 

이따금 맞이해야 하는 마음의 아픔도 이렇게 겪어 냅니다. 다시는, 평생, 영원히 같은 말들 따위에 붙잡혀 끝도 없고 새까만 아득함을 느낄 때, 다시 볼 일도 있겠지 생각하며 '영원' 을 뒤로 미룹니다. 그러면 내 아득함이 외려 아득해집니다. 그리고 그렇게 아팠던 일을 잊습니다. 내 아픔의 처방은 이런 식입니다. 글을 적는 지금도 아픔의 약이 될 시간이 흘러가고 있을걸 압니다.

오늘도 부지런히 미룹니다. 삶에 대해 적어가다 마주하는 애매한 문장들을 솎아내기 위해서, 알 순 없지만 지금은 볼 수 없는 무언가를 볼 줄 아는 미래의 나를 믿으며.

 



추신 1

글이 완전히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이 마음도 미루고 얼른 보내기로 합니다. 근무 있습니다.

추신 2

제 지난주의 글은 제가 미움받고 또 누군가를 미워하는 동안 느낀 이야기입니다. 부지런하고 머리 싸매는 그 과정이 미움이나 사랑이나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반대되는 마음인데도 그 둘을 착각하지 않는 일은 마냥 쉽지는 않다고 여깁니다. 제가 사랑을 쓴 것인지 미움을 쓴 것인지 헷갈렸음 좋겠습니다. 그리고, 꼭 연애 이야기는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이걸 또 해명하다니 찌질하기가 짝이 없지만, 사랑은 발견하는 맛이고, 미움을 발명하는 맛이라면, 저는 찌질한 맛인가 봅니다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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