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적다 보면 표현이 별로이거나, 문장 자체는 마음에 들지만 맥락이 어긋나 있는 애매한 문장들을 적게 됩니다. 그러면 저는 그 문장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일단 페이지 맨 밑으로 보내 놓습니다. 이어 글을 마저 완성하다 보면, 파일 맨 밑에 애매한 문장들이 낙엽처럼 있습니다. 그 문장들을 다시 읽어보면, 정말 낙엽처럼, 글쎄 하며 치워버려도 되는 문장이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문장들을 뒤로 미루지 않았다면 치뤘을 불필요한 고민을 줄인 것 같아 뿌듯해집니다.
대개 미루는 것은 나쁜 습관으로 취급되지만, 세상 모든 일이 그러하듯 꼭 그렇지마는 않은 일도 있나 싶습니다. 저에겐 보통 앞에서 말한 애매한 문장 같은 일들이 그렇습니다. 좋은지 나쁜지, 나에게 도움일지 방해일지 나아가서 고민과 행동의 가치가 있는지 모를 때에는 우선 조금 나중으로 미룹니다. 그러면 언젠가 지금의 나보다 나아진 내가 미뤄둔 일들을 맡아주곤 합니다.
내가 무언가에 약 올라 있을 때면, 일단 멈추고 나중의 나도 같은 일에 약 오르고 기분 나빠할지 지켜보기로 합니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나의 예민함 때문에, 언젠가는 나의 오해 때문에 생긴 마음의 소용돌이를 확인합니다. 누군가 나의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할 적에도, 그 사람을 미워하는 것을 뒤로 미룹니다. 그러면 때때로 사실 그 사람을 미워하는 것보다 좋아할 구석이 많았다는 것을 발견하곤 합니다. 저는 이번에도 미뤄두길 잘했다고 안도하며 큰일 날 뻔 했다며 괜히 부끄러워합니다.
이따금 맞이해야 하는 마음의 아픔도 이렇게 겪어 냅니다. 다시는, 평생, 영원히 같은 말들 따위에 붙잡혀 끝도 없고 새까만 아득함을 느낄 때, 다시 볼 일도 있겠지 생각하며 '영원' 을 뒤로 미룹니다. 그러면 내 아득함이 외려 아득해집니다. 그리고 그렇게 아팠던 일을 잊습니다. 내 아픔의 처방은 이런 식입니다. 글을 적는 지금도 아픔의 약이 될 시간이 흘러가고 있을걸 압니다.
오늘도 부지런히 미룹니다. 삶에 대해 적어가다 마주하는 애매한 문장들을 솎아내기 위해서, 알 순 없지만 지금은 볼 수 없는 무언가를 볼 줄 아는 미래의 나를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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