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서 겨울에게

#29. 고슴도치도 다정한 놈이겠거니

2024.07.19 | 조회 122 |
0
나의 서재의 프로필 이미지

나의 서재

매주 작은 이야기를 전합니다.

첨부 이미지

여름 이야기를 쓰다 너가 생각났어. 넌 끈적거리는 건 질색이라며 땀이 맺힌 내 손을 피하곤 했었지. 그때 내 손을 바지에 닦기는 좀 추한 것 같아서, 그냥 바람에 말린 탓에 손등이 다 갈라 졌었어. 그치만 너가 나를 싫어해서 그런 건 아니란 걸 알아. 차갑고 매끈한 손으로 내 갈라진 손으로 감싸주던 따듯함을 알아.

진하고 뾰족하던 눈썹이 생각나. 흰 눈밭에 서 있는 침엽수같은 눈썹을 쓰다듬을 땐, 고슴도치도 분명 다정한 놈이겠거니 생각했어. 그치만 고슴도치가 뾰족한 건 사실이듯이 너도 네가 사랑하지 않는 것들에겐 한없이 차가웠지. 나는 늘 그게 부러웠어. 내 사랑은 오지랖이 넓어서 나를 피해 숨어있는 사람까지 찾아내 덥게 만들었거든. 왜 여름 햇살처럼, 눈부시게 밝고 그림자 밑까지 후덥지근하잖아. 그래서 난 늘 네가 좋아하는 것들에게만 선사되는 다정함이 좋았어. 물론 내가 그 다정함의 수혜자 중 하나라는 점이 가장.

마음은 실가닥같은 가는 마음들이 얽히고 설켜 만들어진다고 생각해. 나는 너에게 사랑한다고 말했지만 그건 여러 감정들을 크게 퉁쳐 말한 것일 뿐이야. 나는 뒤도 안 돌아보는 너의 쌀쌀함에 서운함과 동경을, 좁은 틈새로만 쏟아지는 애정에 안달을, 너에 비해 사랑이 넘치는 스스로에 자부심을, 한편으론 벅참을 느꼈어. 겨울같은 너 앞에선 난 자꾸 여름같은 사람이 되어버렸어. 

땀이 삐질삐질 나는 날이면 시원한 바람이 그립고, 너가 생각나. 너도 이리저리 부는 찬바람에 지쳐 내가 생각날까 궁금해. 내 마음이 너의 차가움에 그슬음을 남겼길 바라. 또 그게 너에게 흉이 아니길 바라.


추신 / 글

여름을 쓰다가 겨울이 생각나고 겨울이 생각나다 겨울 같던 사람이 생각나고, 내가 겨울을 좋아했던지 겨울같던 사람을 좋아했던지 고민하게 됩니다. 26번째 나의 서재를 쓰다 자연스럽게 이어 쓰게 되었어요.

추신 / 그림

저는 항상 저랑 다른 사람한테 끌리는 것 같아요. 내가 없는 모습에 흥미를 느끼는 듯한~ 비슷한 사람은 다 예측 가능하더라구요.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의견이 있으신가요? 제일 먼저 댓글을 달아보세요 !

이전 뉴스레터

다음 뉴스레터

© 2024 나의 서재

매주 작은 이야기를 전합니다.

뉴스레터 문의JH1047.2001@maily.so

메일리 로고

자주 묻는 질문 서비스 소개서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메일리 사업자 정보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 서초구 강남대로53길 8, 8층 11-7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 | 라이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