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나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당신을 좋아한다고 느낀 적이 있다. 내가 당신이 아니라 '당신이 나를 좋아하지 않음'을 좋아하고 있다는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쉽게 얻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지만, 나는 꼭 당신이 나를 좋아해 준다면 당신이 싫어질 것만 같았다. 나 같은 사람을 좋아하는 당신을, 당신의 그 낮은 기준을 나는 좋아할 수 없다. 자기혐오다.
내가 바라는 사랑의 올바른 경쟁 상대는 소유다. 길가에 꽃이 예쁘면 그것을 꺾어가야 할지, 그저 잘 기억하는 것에서 그칠지 고민하다 소유는 사랑이 아니라며 가던 길을 마저 가는 것이 멋진 사랑의 획득 과정이라 믿는다.
그런데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내 사랑의 라이벌은 혐오가 된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못하면 나는 나를 싫어하는 것을 사랑하게 된다. 내가 쿨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나를 쿨하다고 생각할 일 없기 때문이다. 내 사랑의 객체가 나를 거절해야 성립하는 사랑, 사랑의 부재가 사랑의 근거, 여기에서 내 사랑은 받지 못하는 형태로 엉킨다.
스스로를 사랑할 줄 알아야 남도 사랑할 줄 안다는 발에 치일듯이 흔한 말이 있다. 나는 그 문장을 배고프면 밥을 먹어야 한다 정도 수준의 당연함으로 받아들였다. 스스로를 사랑하며 사랑하는 법을 익혀야, 남도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다만 늘 보던 애인의 얼굴이 유난히 새롭게 아름다운 날처럼, 나는 문장을 다시 생각한다. 스스로에 대한 사랑은 그 방법보다 사랑 그 자체에 의미가 있다. 다시 말해, 자기애는 사랑의 귀납적 증명의 첫 번째 사실이다.
의견을 남겨주세요